[이성주의 건강편지]뢴트겐, 돈과 명예를 넘어선 과학자의 삶

이성주 2023. 3. 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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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계의 대표적 '미신' 가운데 하나가 대한민국 과학용어는 일본, 영어에서 유래한 외래어 투성이지만 북한에서는 우리말 용어로 순화해서 쓴다는 것이지요.

남북의 외래 용어가 다른 것도 적지 않은데 대표적인 것이 뢴트겐(선)입니다.

일본에선 X레이 대신 '뢴트겐(レントゲン)'이라고, X레이를 찍는 것을 'レントゲンを撮る(뢴트겐을 찍다)'라고 하며 우리나라 옛날 의사들도 그렇게 표현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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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3월 27일ㆍ1566번째 편지



우리나라 학계의 대표적 '미신' 가운데 하나가 대한민국 과학용어는 일본, 영어에서 유래한 외래어 투성이지만 북한에서는 우리말 용어로 순화해서 쓴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실제로 북한 과학용어는 러시아, 일본, 독일 등의 용어가 뒤섞여 쓰이고 있습니다.

남북의 외래 용어가 다른 것도 적지 않은데 대표적인 것이 뢴트겐(선)입니다. 일본에선 X레이 대신 '뢴트겐(レントゲン)'이라고, X레이를 찍는 것을 'レントゲンを撮る(뢴트겐을 찍다)'라고 하며 우리나라 옛날 의사들도 그렇게 표현했지요. 북한 과학자나 의료인은 엑스레이라고 하면 잘 모르고, 뢴트겐이라고 하면 '아하!' 한답니다.

1845년 오늘(3월 27일), 뢴트겐 또는 X레이를 발견한, 독일의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이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렘샤이트에서 태어납니다. 그는 세 살 때 집안이 외가가 있는 네덜란드로 이사 가서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고교를 정상적으로 마치지 못합니다. 급우가 교사를 조롱하는 캐리커쳐를 그렸는데, 뢴트겐은 학교 측의 강요에도 고자질을 거부하다가 퇴학당한 것이지요.

그는 취리히연방공대(ETH)에는 고교 졸업장이 없이도 시험만 통과하면 입학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고, 이곳에 원서를 냅니다. ETH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2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 대학교이죠? 아인슈타인도 고교를 졸업하지 못했지만 대학 학장의 배려로 1년 동안 고교에 더 다니는 조건으로 무시험 합격했고요.

뢴트겐은 50세 때인 1895년 11월 8일 독일 바이에른 뷔르츠부르크대 연구실에서 엑스선을 발견합니다. 실험실 전원을 껐는데도 책상 위에서 희미한 빛이 남아있는 것을 지나치지 않은 덕분이지요. 두꺼운 종이로 감싼 음극선관에서 새어 나온 새로운 형태의 빛이었죠. 그는 음극선관의 차폐막으로 두꺼운 책을 사용했다가, 책갈피로 끼워놓은 열쇠와 자기 손뼈가 투과돼 비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강박적 성격 경향의 뢴트겐은 자신이 혹시 어떤 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 미쳐서 환각을 본 것은 아닌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온갖 방법으로 재연실험을 했습니다. 몇 주 동안 실험실에서 빛의 정체를 파고들어 빛이 종이와 헝겊 등은 통과하는데 뼈와 금속은 통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부인을 불러서 빛을 쪼이고 감광지에 사진으로 담습니다. 첫 엑스레이 사진이 탄생한 것입니다.

뢴트겐은 미지의 선이라는 뜻에서 'X선'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 발견은 언론과 학술지에 소개되며 과학계를 흥분시킵니다. 의료현장에도 재빨리 적용돼 어린이의 목에 걸린 동전을 찾아내고, 전쟁에서 총상을 입은 병사들의 총알 위치를 찾아내기도 합니다. 엑스선의 발견은 수많은 방사선을 발견하는 도화선이 됐고, 뢴트겐은 1901년 노벨 물리학상 초대 수상자가 됩니다.

주위에선 X선의 특허를 신청하라고 권유했고, 한 기업가는 특허권을 거액에 양도하라고 제안했지만 뢴트겐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을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뢴트겐 빛' 또는 '뢴트겐선'이라는 이름도 거북해 했고 'X선'이라고 불리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세상의 정답'으로 보면 뢴트겐의 삶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잣대로 남의 삶을 쉽게 재단하는 속물들의 눈에는 바보가 틀림없습니다.

뢴트겐은 우정의 가치를 아는 지도 모를 친구를 지키려고 눈앞의 미래를 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아마 '퇴학'이라는 주홍글씨 탓에 도태됐을 가능성이 클 겁니다. 또 특허를 받았으면 자손대대로 부유하게 살 수도 있는데, 그 길을 마다하고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말년에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기 직전엔 경제적으로 파산 직전까지 갔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뢴트겐이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삶의 가치와 행복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특정 숫자를 뛰어넘는다고 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말일까요? 우리는 혹시 뢴트겐처럼 '다르지만 뛰어난 사람'의 가치있는 삶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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