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권번춤의 올곧음과 동시대적 감성이 꽃피운 무대

윤기백 2023. 3.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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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번'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어떤 노스텔지어다.

지난 2월 17일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권번춤 나들이'는 현재 서울교방의 대표주자들은 물론 차세대 춤꾼들이 무대에 올라 서울교방의 미래가 얼마나 진취적이고 탄탄한지를 선언하는 무대였다고 할 만큼 춤의 예법과 미학을 듬뿍 선사했다.

전통을 올곧이 계승하면서도 동시대적 감성을 통해 현재의 춤으로 무대화하는 서울교방의 노력이 꽃을 피운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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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리뷰
서울교방 '권번춤 나들이'
규칙·반복·대칭성 통해 '한국의 미' 되살려
논개 지조 담은 수건살풀이춤 절제미 돋보여
민살풀이춤, 기교 넘은 농익은 여유로움 으뜸
서울교방 ‘권번춤 나들이’(사진=옥상훈 사진작가)
[김명현 춤비평가] ‘권번’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어떤 노스텔지어다. 일제강점기라는 서슬 퍼런 시대에 춤을 배우고 소리를 익히던 기생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번춤’이라고 할 때 우리는 어떤 아련함과 그리움으로 춤을 기다리게 된다. 이런 권번춤을 전승하고 있는 서울교방은 진주권번의 김수악, 남원권번의 조갑녀, 군산(소화)권번의 장금도 선생으로부터 춤을 배운 김경란 선생에 의해 소중한 춤을 오롯이 지켜내며 올곧게 무대에 올리고 있다.

지난 2월 17일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권번춤 나들이’는 현재 서울교방의 대표주자들은 물론 차세대 춤꾼들이 무대에 올라 서울교방의 미래가 얼마나 진취적이고 탄탄한지를 선언하는 무대였다고 할 만큼 춤의 예법과 미학을 듬뿍 선사했다.

서울교방 동인 장인숙이 2020년에 창단한 희원무용단은 김수악류 구음검무와 교방굿거리춤, 논개별곡, 조갑녀에게서 배운 승무와 민살풀이춤, 호남설장고 등을 선보였다. 각각의 무대는 의상과 무대연출 등에서 동시대적 감성을 담아내고자 한 흔적이 역력했다. 전통적인 색의 배색은 유지하면서도 한결 산뜻한 색감과 소재로 의상을 만들었고 규칙성, 반복성, 대칭성에 따른 무대 배치와 동선 구성이 아닌 미묘한 어긋남의 미학으로 한국의 미를 되살렸다.

서울교방 ‘권번춤 나들이’(사진=옥상훈 사진작가)
서울교방 ‘권번춤 나들이’(사진=옥상훈 사진작가)
서울교방 ‘권번춤 나들이’(사진=옥상훈 사진작가)
서울교방 ‘권번춤 나들이’(사진=옥상훈 사진작가)
‘논개별곡’은 협기(俠妓) 논개의 지조를 드러내는 수건살풀이춤으로 절제미가 돋보였다. ‘쌍승무’는 지루할 수 있는 무거운 춤을 북의 이동과 배치, 춤꾼들의 교차를 통해 무대에 역동을 만들고 북가락을 주고받는 등 두 사람의 변칙성(?)이 즐거운 무대를 만들었다. ‘교방굿거리춤’은 4명의 춤꾼을 배치하는 데 대칭성을 일부러 깨뜨리는 연출로 공간에 미묘한 어긋남을 만들었는데 그로 인해 춤꾼들은 돋보였고 춤은 풍성한 표정을 드러냈다. ‘노랫가락 장고춤’은 시간을 밀고 당기는 탁월한 몸놀림으로 춤의 놀이성을 극대화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춤은 ‘민살풀이춤’이었다. 일부러 부풀어 올린 치마 대신에 축축 처지는 치마와 촌스러워 보이는 둥근 배래선을 가진 소복 차림의 춤꾼들이 등장, 오른손으로 치맛자락을 살짝 잡아 뒤로 감으며 몸을 살짝 숙여 인사를 한다. 이에 관객도 화답한다. 그리고 춤꾼들은 이리저리 설렁설렁 몸을 흔들 뿐 이렇다 할 춤사위를 보여주지 않았다. 가득 찬 춤사위와 기교 대신에 농익은 여유로움으로 무겁게 한 번씩 팔을 펼칠 뿐이다. 그런 팔사위에서 춤이 한 자락씩 보인다. 춤이 텅 비어있었는데 어쩌다 한 번 들어 올린 팔과 투박하게 내딛는 발걸음, 매끄럽지 않은 이음새 사이로 춤이 새어 나온다. 관객은 그저 탄식할 뿐이었다.

마지막 춤인 ‘구음검무’는 기생들이 반드시 익혀야 할 법무(法舞)로서 권번춤의 꽃이라 할 것이다. 예술감독 장인숙의 대표 종목이기도 한 구음검무는 의상에 소프트한 감성을 더해 무대의 조형미를 살렸고, 김보라의 현대적 구음과 조화를 이루게 해 마치 봄날 꾀꼬리들이 춤을 추는 듯했다. 춤사위가 가진 콘셉트에 의상과 음악의 조화가 두드러진 무대였다. 전통을 올곧이 계승하면서도 동시대적 감성을 통해 현재의 춤으로 무대화하는 서울교방의 노력이 꽃을 피운 자리였다.

윤기백 (giba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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