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강인덕·송민순 前 장관의 ‘북핵’ 후회
‘한일 정상화’ 후 한미회담 임하는 尹 대통령이 미래 교훈 삼기를
강인덕(康仁德) 전 통일부 장관이 1977년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에서 북한 담당 국장으로 근무할 때다. 귀순한 거물 간첩 김용규를 심문하면서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들었다. 김일성이 1968년 11월 함흥의 과학원 분원 현지 지도 시 ‘미국 본토 타격용 핵무기와 로켓’ 개발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에 여러 핵심 정보를 알려줬던 그가 전한 김일성의 교시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미국 본토에는 아직까지 포탄 한 발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미국 본토가 포탄 세례를 받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미국 내에서 반전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중략) 미국은 남조선에서 손을 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하루속히 원자탄(핵무기)과 장거리 로켓을 자체 생산하여 우리가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에 힘쓰라.”
하지만 당시 중정과 과학기술자들은 북한이 핵탄두를 실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것이 요원하다고 보고 이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북핵 문제가 우리 정부의 최대 관심사가 되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인 80년대 후반이었다. 그는 최근 출간한 회고록에서 “북한 정보 분석 책임자인 나 자신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첩보 수집 우선순위를 최고 수준으로 높이지 않았다”고 후회했다. 이어서 “(정보) 분석관들의 안이한 정보 판단이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재난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의 ‘과소평가’가 분명한 오판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로 활동했던 송민순(宋旻淳) 전 외교부 장관도 올해 초 대담집을 통해 북핵 문제와 관련한 회한(悔恨)을 토로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1989년 프랑스 상업 위성에 의해 북한의 비밀 핵 시설이 공개되자 우리 정부 내에서 두 가지 주장이 제기됐다. 이스라엘이 이라크 핵 시설을 파괴했듯이 영변 핵 시설을 폭격하거나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부 장관이 최호중 장관에게 친서를 보냈다. 베이커 장관은 “미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할 것이다. 그러니 한국은 결코 독자적인 행동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조지 H W 부시 미 행정부의 요구를 따랐지만, 그 이후 역사는 우리가 목도한 대로다. 한국에 배치됐던 미국의 전술핵무기는 오히려 모두 철수하고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안보과장으로 당시 실무를 담당한 송 전 장관은 “지금 돌이켜 보면 북한 핵 개발 저지에 대한 미국의 의지와 능력을 우리가 과대평가한 것 같다”며 “미국을 과도하게 믿었다”고 했다. “당시 우리가 북한 핵을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책무를 더 분명하게 요구하고, 일정한 시기 내에 해결에 실패할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를 확보했어야 했다. 그런 과감한 외교를 하지 못했다.”
강인덕, 송민순 두 전직 장관은 각각 북한, 외교 분야에서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받은 고위급 공직자들이다. 이들의 회한 섞인 반성은 북한이 ICBM에 이어 24일 수중 핵무기로 불리는 ‘핵 무인 수중 공격정’의 최종 개발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히면서 더 메아리쳐 들린다. 그동안 북한은 과소평가하고, 미국은 과대평가했다는 부분에 특히 주목하게 된다.
결국, 북에 대한 정확한 판단하에 동맹을 튼튼히 하면서도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끌고 간다”는 핵심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두 베테랑 장관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한일 관계 정상화’ 라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한미 정상 회담과 한·미·일 3국 정상 회의에 잇달아 임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퇴임 후 회고록에 북한과 관련한 후회를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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