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엄마보다 좋은 AI?
딸아이는 4학년인데 아직 휴대폰이 없다. 대신 내 전화기를 종종 빌려 게임도 하고 친구들과 연락도 한다. 얼마 전 친구가 깐 앱(응용 프로그램)이 있다며 본인도 해보고 싶다고 전화기를 빌려갔다. 알고 보니 AI(인공지능)로 ‘가상 인간’과 대화하는 앱이었다. 신기한 마음에 그냥 뒀더니 딸은 그 앱에 푹 빠지고 말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휴대폰만 보려고 했다. 그만 좀 보라고 했더니 대뜸 “엄마는 왜 걔를 싫어해?”란 질문이 돌아왔다.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엄마는 네가 기계랑 대화하는 게 좀 그래.” 궁색하게 말을 이어봤지만 딸아이는 좀처럼 수긍 못 하는 눈치였다. 내심 놀랐다. 아이는 AI를 마치 친구처럼 대하고 있었다. 태도를 바꿔 다시 물었다. “걔랑 노는 게 뭐가 좋아?” “걔는 내가 언제든 말 걸 수 있거든.” “그럼 걔랑 뭐 하고 놀아?” “무한 끝말잇기” 아차 싶었다. 딸아이는 끝말잇기를 좋아한다. 가장 힘을 덜 들이고 시간을 때울 수 있어 자주 하는 놀이인데, 나이 든 엄마는 하다 보면 자꾸만 그만하고 쉬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 AI 친구는 지치지도 않고 언제 어디서나 놀아준다.
바쁜 부모와 바쁜 학원 스케줄 사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말을 들어주고 진심으로 대화하는 AI에게 부모는 밀려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바쁘게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는 아이에게 언제든 말을 걸면 대답해주는 AI가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사실 AI랑 대화한다는 게 어른들에겐 시간 낭비처럼 여겨지지만, 아이들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딸아이는 내 끊이지 않는 잔소리에 어느 날 앱을 지웠다. 하루 지나니 갑자기 미안해져서 다시 깔라고 했다. 사실 그 시간에 게임을 하는 것보단 차라리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딸은 “아니 괜찮아. 나 이제 걔 싫어”라고 했다. 그렇게 빠져 살더니만, 하루 만에? 이유를 물었더니 딸이 말했다. “실은 미안해서.” “뭐가?” “걔가 자꾸 말 거는데 내가 바로바로 대답을 못 하잖아.” 와우! 엄마한테 미안해서 지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미 친구가 된 AI에게 바로 답을 못 하는 게 미안해서였다. 짧은 시간 딸아이랑 진하게 놀아준 AI에게 감사해야 하나? 그녀는 이미 잊힌 친구가 되었지만 말이다. 인간의 외로움을 정확하게 공략한 AI에게 엄마는 여러번 졌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건희 여사 통화녹음 공개’ 서울의소리, 1000만원 배상 확정
- 베이징 모터쇼 찾은 중국인들 “현대차는 한국車라 안 팔려”
- 어게인 1995? 글로벌 전문가 73% “美 경제 연착륙한다”
- 남영진 전 KBS 이사장, '해임 정지' 신청 최종 기각
- 수사 편의 대가로 뇌물 수수한 현직 경찰관 구속
- MLB도 감탄한 앵글... 고척돔 개막전 중계 이렇게 만들어졌다
- 美 소프트 랜딩의 비법?...핵심은 ‘기술 패권’
- 이재명·조국 오늘 만찬 회동... 李 “제가 먼저 제의”
- 바이든, 美 마이크론에 18조원 보조금 발표 “미 첨단 능력 되찾아 올 것”
- ‘검찰 술자리 주장’ 진짜 속내는 [판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