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철 “DJ, 집권후 5번 전두환·노태우 불러 경험들어... 극단대결, 난 옳다서 시작”
민주당 출신 정대철 신임 헌정회장
전두환, 생전 DJ 존경한다고 말해”
정대철 전 더불어민주당 고문은 최근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대한민국 헌정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다. 헌정 회장 선출이 직접투표 방식으로 바뀐 2009년 이후 민주당 계열 인사가 당선된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헌정회에 국민의힘 계통의 전직 국회의원이 많다는 뜻이다. 정 회장은 당선 배경을 “여야 정치인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낸 세월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DJ(김대중 전 대통령)계로 불리지만 “DJ가 대통령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반기를 두 번이나 들었고,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이 뒷목을 잡았다는 후일담은 유명하다. 정 회장은 “그때는 정치에 ‘화해와 용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이라며 “지금은 정치가 아닌 전쟁만 있다.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너는 틀렸고 나만 옳다’만 하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든 야든 서로 반 발짝만 물러서 배려했으면 한다”고 했다.
DJ가 살아있었다면 헌정회장 당선을 뭐라고 했을까.
“DJ는 특이한 사람이다. 자신과 가까웠던 사람에게 제대로 된 자리를 준 적이 없다. 정치적으로 주변 사람이 크는 걸 못 견딘 거 같다. 한번은 내가 서울시장 선거를 나간다고 하니 ‘나가지 말라’고 해서 포기한 적도 있다. 아직도 왜 그랬는지 이해를 못 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헌정회장 된 건 아마 잘했다며 기뻐하실 것 같다.(웃음)”
직접 투표 이후 첫 민주당계 헌정회장이 됐다.
“헌정회 구성을 보면 국민의힘, 민주당 계통 정치인들 비율이 6.5대3.5 정도 된다. 그래서 ‘이거 당선되겠냐’는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헌정회도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변화해야 한다는 내부 요구가 있었다. 주변에서 출마를 강권했고 용기 내서 나왔다. 한마디로 한쪽의 장기 집권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었겠나. 이제 좀 나눠 가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바람도 있었다. 나는 헌정회도 위기라고 생각했다. 전직 국회의원들 집단인데 영향력, 발언권도 없고 위상도 없었다. 존재감이 없다. 이런 표현은 그렇지만, 늙은이들의 안방, 친목 단체 같은 느낌도 있었다. 결국 개혁과 혁신을 외친 회원들의 집단 지성이 나를 만든 거다.”
정치가 극단으로 가고 있다.
“지금 하는 건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다. 여야의 극한 대결은 정말 아쉽다.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왜냐하면 어떤 결과든 최고 통수권자인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왔으면 한다. 정치는 ‘나와 너는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은 ‘너는 틀렸고 나는 옳다’에서 끝나 있다. 그래서 대화가 안 되는 것이다. 참 걱정이다. 여든 야든 모든 걸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저쪽은 ‘까불어? 그럼 사정 권력, 거부권으로 혼내겠다’고 하고, 이쪽은 ‘까불어? 그럼 국회 다수석으로 밀어붙여’라고 하는 형국이다. 민주당은 공수처 설립, 검수완박 법안 처리 과정에서 180석이란 다수석을 가지고 폭주했다. 행정부에 대한 정당한 견제를 넘어선 지나친 횡포는 내년 총선에서 독이 될 수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힘에 의존하는 정치가 상습화되고 있다. 그런데 정치 지도자들은 묵인하는 중이다.”
방법이 있을까.
“한 발짝, 아니 반 발짝이라도 물러서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를 취하길 바란다. 안 먹는다고 해도 ‘막걸리 한잔하자’고 해서 끌고 나가서 대화하면 그 자리에서 반은 풀리는 것이 또 정치다. DJ는 집권 후에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불러서 집권 경험 듣겠다고 5번이나 밥을 먹었다. (별세 전) 전 전 대통령을 호텔 앞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나와는 인연이 별로 없었는데 나를 보더니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 내가 싫어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밥을 몇 번이나 사더라’고 하더라. 이게 화해와 포용의 정치다. 민주당의 586 운동권 정치인들도 앞으로는 균형 있는 감각으로 세상을 내려다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력을 했고, 잘살게 된 건 박정희 전 대통령 덕분이다. 양면성을 다 인정해야 한다.”
정치권에 ‘어른이 없다’ ‘원로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원로들이 쓴소리도 물론 해야겠지만 충고 정도 하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을 당선 후 만났을 때 ‘원로들 불러서 경험도 듣고 충언도 들어서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가끔 여야 원로들 불러 다양한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과거 민주당을 탈당할 때 문파(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자)에게 문자 폭탄 공격을 많이 받았다. 개딸(이재명 대표 지지자)한테도 받고 있나.
“욕을 먹으니 기분은 안 좋았지만 처음엔 직접 민주주의의 확대라고 좋게 보려고 했다. 근데 지금은 이게 잘못 빗나가 있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칭찬, 배려 같은 건 없고 비난, 독설만 있다. 읽을 수가 없을 정도다. 정신 건강상 안 보는 게 좋다. 개딸들은 작당 모의해서 감정적으로라도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집단 의식으로 가고 있다. 이들을 동원하는 그룹도 있는 것 같다.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 직접민주주의의 폐해다. 이재명 대표 이름만 말해도 증폭, 과장해서 ‘왜 그러냐’는 전화가 온다. 문파들보다 더 하다. 이성적으로 안 굴러가서 걱정이다. 이런 식이면 옛날만도 못하다. 댓글 실명제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도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5월이면 집권 1년 차에 접어드는데 평가를 해달라.
“일본과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진전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아주 높게 살 만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여전히 마음이 아픈 위안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잘 설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나라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대승적 측면에서 매우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해해달라는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설득하면 어땠을까. 그런 부분이 좀 부족했다. 이번에 서해수호의날 행사에서 윤 대통령이 55명 용사들을 부르며 울컥하지 않았나. 나는 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진심으로 일본 피해자들에게도 다가가면 된다. 대통령 참모들이라도 나서야 한다.”
이재명 대표는 서해수호의날 행사에 불참했다.
“민주당의 큰 문제다. 안보 문제에 있어서 포기하는 집단으로 보인다. 옹졸한 거다. 민주당이 앞으로 책임 있는 정당, 집권할 수 있는 정당이라는 걸 보여주려면 대승적인 견지에서 대처해야 한다.”
현 정부에서의 남북 문제는 어떻게 보나.
“기본적으로 한·미·일 동맹이 땅땅하게(단단하게) 있어야 한다. 이걸 바탕으로 북한에 대한 대화의 문은 열어 놓고 적극성을 표현해야 한다. 지금은 북한과 적극 대결 구도다. 저쪽(북한)이 매일 미사일 쏘고 핵실험하고 잘못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경제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나. 여유를 갖고 어려운 사람들을 포용하고 화해하는 자세를 취해서 대화나 교류를 넓혀야 한다. 미·북도 대화를 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인해 민주당이 계속 시끄럽다.
“이 대표가 이해는 간다. 잡아서 감옥에 넣으려고 한다고 생각하니 대선 패배 직후에 국회의원도, 당대표도 된 거다. 정치를 오래한 입장에서 봤을 때는 좋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야당 당수로 탄압, 핍박받고 있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로 인해 국민이 동정해서 민주당 지지율이 올라간다면 좋겠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는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얼핏 느끼기에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 대표가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두려운 예측이지만 민주당이 총선에서 참패하면 이 대표 본인이 ‘옴팡’ 다 뒤집어쓴다. 대통령 후보까지 한 사람은 크게 놀아야 한다.”
절친한 이낙연 전 대표가 6월쯤 미국에서 1년 만에 돌아온다. 이 전 대표의 역할이 있을까.
“헌정회장 당선 축하 전화가 왔더라. 그런데 정치 얘기는 안 했다. 개딸로 가득 차 있는 민주당에 돌아와서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전 대표도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헌정회 일각에서 내년 총선 때 비례대표 추천하자는 목소리도 있다고 들었다. 내년 총선 때 역할을 할 건가.
“나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 내년 총선에서 헌정회의 역할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공정 선거에 대한 충고나 할까 한다.”
☞정대철
1944년생. 서울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 정일형씨와 대한민국 최초 여성 변호사 이태영씨의 아들이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30대부터 아버지를 따라 민주당계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DJ를 정치적 스승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DJ가 은퇴 선언 후 1995년 정계 복귀하자 반기를 드는 등 소신 정치를 펼쳤다. 9·10·13·14·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당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그만두라”고 쓴소리를 하면서 친문과도 갈등을 빚었다. 이후 안철수 전 대표를 따라 처음으로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2022년 1월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복당했고 최근 헌정회장 선거 출마로 다시 탈당했다. 헌정회장 임기는 2년으로,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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