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9시 1분 출근은 지각일까

성송이 씨네소파 대표 2023. 3. 2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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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송이 씨네소파 대표

얼마 전 어떤 회사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새로 입사한 팀원이 자꾸 오전 9시 1분이나 2분에 출근을 하는 것이다. 얼마간 지켜보다가 상사가 문제를 제기했더니, 해당 팀원이 “퇴근도 정각에 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 않나, 6시 1~ 2분에 퇴근할 때도 있는데 9시 1분에 출근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되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니라 더 이상 할 말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없어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이렇듯 사실 요즘 기업에서는 1분, 2분 지각이 화두다.

어떤 약속이든 정시에 도착하기는 어렵다. 조금 더 일찍 오든지 조금 더 늦게 오든지. 대체로 두 가지 선택 사항이 있을 뿐이다. 아마도 지금은 ‘1분이라도 더 일찍 오면 손해’라는 생각이 퍼져있는 듯하다. 하루 8시간만큼의 비용을 받고 근로계약을 한 것임으로, 따지고 보면 그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 애매하고 쪼잔해 보이는 현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말해볼 수 있다. 우선 세대 차이. 출근 시간이 9시일 때 8시 30분까지 도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대가 있었는가 하면, 되도록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오는 것이 당연한 세대가 생긴 것이다. 혹은 규범의 차원에서도 이야기해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이 현상이 우리 사회가 규범과 약속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실제로 회사를 운영하는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에도, 1~2분 지각은 팀원이 일을 1~2분 덜 하는 것 때문에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조직 문화를 만들까 봐 우려가 된다.

돌이켜볼 때 예전에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시간’에 집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보다는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더 집중했고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완성해나갈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확실히 점점 시간에 집착하게 되었다.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에서도 완성도나 결과물만큼이나 우리가 투여하는 시간을 생각하게 되고 기회비용을 따져보게 됐다. 받은 만큼만 일해야 할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언제나 적절한 보상은 돌아오지 않았고 열심히 해도 보장되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투쟁도 멈추었고, 그렇게 나는 내 시간을 포기하는 쪽을 택하게 됐다.

하루 중 8시간에 대한 돈을 지불한 자본가가 있고 그가 원하는 일을 한다. 이 인식은 자본가와 노동자가 생겨난 이후부터 자연스러운 것이었겠지만, 지금처럼 시리도록 명료한 적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시간’에 집중하게 되는 이유가 나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더는 자기 노동과 시간의 주인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런 경향들이 우리가 노동을 포기해버린 것에 대한 반향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존재 증명이 퇴근 이후에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오직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유일한 하루를 사는 중에, 아주 긴 시간을 우리는 노동하며 보낸다. 그 시간을 주인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매일 8시간을 누군가의 도구로 살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노동에서 만족과 성취를 얻고 자기 존재를 발견하는 일이 불가능해지고 있다.

다시 또 한 번 근로 시간 개편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주 최대 69시간’을 놓고 논란이 일자 ‘근로시간 유연화’라는 프레임으로 논점을 흐린다든가 MZ가 반발하니 재검토하라든가 하는 온갖 웃지 못할 대응을 하며 노동과 존재의 가치에 대한 철학 없이 노동 시간을 늘리느니 마느니 하는 정부의 행태가 놀랍다. 지금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논의해야만 하는 시기인데, 다시 이렇게 퇴행적인 논의를 하느라 온 사회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9시 1, 2분 출근이 지각인지 아닌지 따지고 반시대적 조치에 반응하느라 지친 나머지 원래 내가 지키고자 했던 꿈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하루를 온전히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노동의 가치가 시간과 자본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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