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113] 스팸메일
스팸메일
소금에 절여진 혀가 죽음을 핥는다(…)
통조림에 꾸역꾸역 채워 넣은 분홍빛 주검
(...)오키나와에 집중된 통조림 스팸 소비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진절머리 나는 전쟁의 맛(...)
나도 보낼 테다
스팸메일을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불쾌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에게
끝내 이름조차 알지 못할 사람에게
바로 스팸메일을 보내버릴 테다
인간의 어떤 본질이 선명하게 어린 메일을
대량으로 받아 보겠지
진절머리 나는 군용식품의
참을 수 없는 질문 같은 메일을
-사가와 아키(佐川亞紀 1954~)
(한성례 옮김)
스팸 햄을 먹으며 통조림에 채워 넣은 분홍빛 주검을 떠올리고, 전쟁 시의 비상 분쇄육 식품에서 ‘시대의 식도(食道)’를 읽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이 전해준 ‘스팸’이라는 햄의 이름에서 자신을 귀찮게 하는 ‘스팸 메일’로 이어지는 서사가 독특하다. 한국의 ‘부대찌개’라는 이름 속에도 스며든 전쟁의 맛은 우리의 일상을 폭격하는 귀찮은 메일의 이름이 되었다. 소금에 절여진 혀가 죽음을 핥는다는 강렬한 도입부, 무겁게 시상이 전개되다 마지막 연에서 반전을 시도하는 칼날처럼 예리한 문체가 돋보인다.
사가와 아키는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과 재일 한국인 차별 등을 고발하는 시를 써온 사회파 시인이다. 한국어를 배워 한국의 우수한 시들을 많이 번역해 일본에 소개했고, 우리나라에서 창원KC국제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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