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은 잠행, 팀쿡은 시끌벅적...中서 너무 다른 두 CEO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3. 3. 26. 22: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속 중국 방문

25일 오후 ‘중국발전고위층포럼(CDF)’이 열린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 3년 만에 중국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행사장 입구에 도착하자 아침부터 대기하던 기자들이 몰려들어 ‘이번 포럼에 참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등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나 취재진의 질문 공세에도 이 회장은 “날씨가 좋죠” “북경(베이징)의 날씨가 너무 좋지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최근 미국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내 반도체 공장 확장에 제동을 걸고, 중국은 이에 반발하는 등 심각해진 미·중 간 무역 분쟁 상황에서 최대한 말을 아낀 것이다. CDF는 중국이 3년 만에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지한 후, 그리고 ‘시진핑 3연임 확정’ 이후 개최한 첫 오프라인 국제 행사다. 이 회장을 비롯한 팀쿡 애플 CEO(최고경영자)와 퀄컴, 지멘스, 코닝,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기업의 최고위급 100여 명이 참석했다.

3년 만에 중국 출장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4일 중국 톈진에 있는 삼성전기 공장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왼쪽 사진). 전날 베이징에 도착한 이 회장은 가급적 자신의 동선을 공개하지 않는 로키(low-key) 행보를 보였다. 반면 팀 쿡 애플 CEO는 지난 24일 베이징시 번화가 싼리툰에 있는 애플 매장을 찾아 현지 고객들과 셀카를 찍고 이를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올리는 등 같은 기간 중국을 방문한 두 사람이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연합뉴스· 웨이보

◇삼성 이재용 3년 만에 조용한 중국 나들이

이 회장은 지난 23일 오후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지만 동선을 공개하지 않았다. 24일에는 시안과 쑤저우의 반도체 공장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톈진의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했다. 여기엔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보유한 삼성의 곤혹스러움이 묻어 있다.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회사인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공장은 낸드 플래시 생산량의 40%를 맡고 있다. 미·중 기술 패권 갈등의 핵심인 반도체 공장을 피하면서도 ‘3년 만의 방중’ 기회는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4일 톈진 삼성전기 사업장 방문 이후 천민얼 톈진시 서기와 면담했다. 천민얼 서기는 시진핑 중국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최측근이다. “미국 눈치를 봐야 하는 반도체 이슈를 일단 피해가면서 중국과도 대화 창구를 열어놓겠다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방중 내내 스포트라이트 한 몸에 받는 팀쿡 애플 CEO

이 행사에 참여한 ‘한국 대표 기업’의 이재용 회장이 시종일관 신중 모드를 이어간 데 비해 미국 대표 기업 애플의 팀 쿡 CEO는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중국에 우호적인 발언을 공개 석상에서 쏟아내고 현지 애플 매장도 깜짝 방문했다.

그는 지난 24일 오후 베이징시 번화가인 싼리툰의 애플 매장에 짙은 파란색의 칼라티와 얇은 봄 점퍼, 검은색 운동화 차림으로 등장했다. 매장 내 수백 명의 시민이 그의 중국 이름인 “쿠커(庫克)”를 연신 외치자 고개를 들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2층짜리 단독 매장 내부는 삽시간에 환호성으로 뒤덮여 팀쿡 팬미팅 현장을 방불케 했다. 팀쿡은 25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열린 CDF에서도 연사로 나서 “중국과 애플은 지난 30여 년간 함께 성장해온 공생 관계”라고 했다. 애플은 농촌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1억위안(189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팀쿡의 친중 행보는 지속적으로 워싱턴 정계와 미 현지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번에도 이어졌다. 앞서 외신들에 공개된 애플 내부 문서에 따르면 팀쿡은 2016년 중국 정부와 2750억달러(약 370조원) 규모의 투자 계약을 체결했고, 중국산 부품·소프트웨어 적극 도입을 약속했다. 또 애플은 중국 1위 낸드플래시 업체 YMTC의 부족한 기술력을 자사 기술을 이용해 보완해주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한 애플의 ‘중국에 대한 구애’는 아이폰·맥북 등 애플 주요 제품의 공급망에 있어 95%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는 등 현실적인 한계를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애플의 협력사 폭스콘의 정저우 공장은 아이폰 14의 80% 이상을 제조하고 중국 노동자 150만명이 애플 제품 생산에 관여돼 있다. 지난 회계 연도 애플의 중국 매출은 750억달러(97조5000억원)에 달했다.

삼성과 애플 모두 중국에 설비와 생산 시설을 두고 있지만, 미국의 대중 규제로 삼성만 유독 직격탄을 맞는 상황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 내 생산 시설 가동과 미국 보조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삼성은 샌드위치 신세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며 “제약 없이 중국 공장에서 위탁 생산(OEM)하는 애플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