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무식, 꽃잎이 떨어지듯 퇴장… 욕망만 좇던 그에게 맞는 최후”

이복진 2023. 3. 2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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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대장정 마친 배우 최민식
권력 정점 올랐다 허망한 죽음
‘화무십일홍’ 잘 표현했다 생각
OTT 무엇이든 표현 가능 장점
그래도 극장 사운드·화면 최고
매니저 없이 직접 운전하며 활동
배우 생활 ‘브레이크’ 거는 요즘
짠하고 힐링되는 멜로 도전 욕심
“권무십일홍이라고 아세요? 아이, 꽃이요, 형님. 열흘 동안 붉을 수가 없다. 벚꽃도 개나리도 열흘 지나면 다 디진다. 그런 뜻이죠.”(양정팔)

“권무가 아니라 화무라고 하는 거야. 화무십일홍. 꽃을 권력에다 비유한 말이야. 인마, 좀 책 좀 봐. 권력이고 인생이고 다 무상하다. 다 허망하다. 부질없다. 이런 뜻이야. 그런데 너 그 이야기를 왜 갑자기 해? 그거 나한테 하는 이야기야?”(차무식)

-‘카지노’ 중

배우 최민식(60)의 드라마 복귀작으로 관심이 집중됐던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가 지난 22일 마지막 회를 공개하며 시즌 1·2 총 16회 대장정을 마쳤다. 시리즈는 필리핀 카지노 대부로 돈과 권력의 최정점에 올랐다가 허망하게 죽임을 당하는 차무식의 이야기다. 최민식은 의리와 정이 있으면서도 때로는 돈을 위해서 협박과 사기, 심지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차무식을 온전히 그려냈다.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카지노’에서 필리핀 카지노 대부 차무식을 연기한 최민식은 “10일 붉은 꽃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은 욕망을 향해 치닫는다”며 “꽃잎이 떨어지듯이 차무식이 퇴장했다”고 말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승승장구하던 차무식은 “돈에 대한 욕심으로 브레이크가 없어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죽이면서” 나락의 길로 떨어진다. 특히 차무식의 죽음은 극도로 허무하다. 작고 허름한 방 안에서 몇 번의 총격전이 있고, 도망쳐 나온 차무식은 총알 한 방에 죽는다. 누아르 장르에 자주 나오는 시가지 총격전은 없었다. 그의 죽음은 화면에 오래 담기지도 않는다. 필리핀에서 왕처럼 살며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졌던 그의 죽음치고 허망하다. 지난 24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민식은 ‘화무십일홍’을 언급했다.

“꽃잎이 떨어지듯이 차무식이 퇴장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누아르적인 정서를 감안하면 나중에 살아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화끈하게 샤따(셔터)를 내리는 게, 그것도 가장 믿었던 사람에 의해 내려지는 게 맞을 거 같았습니다. 10일 붉은 꽃이 없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은 욕망을 향해 치닫죠. 구질구질한 서사, 마무리, 장르적 특성에 맞는 장치보다는 화끈하게 가자고 했습니다.”

특히 ‘화무십일홍’을 표현하기 위해 ‘시든 꽃’이라는 소품을 직접 생각해냈다. 그는 “차무식은 자신이 숨어있는 허름한 집으로 양정팔과 이상구를 불러 준비한 요리를 같이 먹는데, 이들이 오기 전 물병에 꽃을 하나 꽂는 장면이 나온다”며 “스태프에게 요청해 들꽃 아무거나 시들시들한 거를 구해달라고 했다. ‘화무십일홍’을 예감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카지노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제작돼 반영됐다. 하지만 최민식은 여전히 ‘영화인’이었다. “카지노 촬영 전에는 넷플릭스도 잘 안 봤다”는 그는 “역시 극장에서 카지노 마지막 회를 보니까 좋았다. 사운드도 그렇고 큰 화면으로 보니까 디테일한 것도 보이고, 그러니까 ‘극장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OTT만의 장점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OTT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것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르가 어떤 것이든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참 좋다”며 “다만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대중에게 어필했던 그와 비슷한 것들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은 안 된다. 완성도도 높지 않은데 많이 생산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라고 지적했다.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 캐릭터 설정 때문에 최민식은 이번 드라마에서 찰진 영어를 구사해야 했다. 하지만 본인은 “영어 연기를 안 했으면 한다”고 사양했다. “이번에 또 느꼈지만, 언어는 하나의 악기죠. 내 몸이 표현해 내는 하나의 수단 중 하나인데, 내가 쓰지 않았던 말로 의사를 표시하고 감정을 표현하려니까 저 스스로 닭살이 돋았어요.”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에서 우리 배우들과 너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많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게 마음이 편하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일(연기)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이 일은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일로, 죽을 때까지 알차게 지속 가능하게 어떻게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그게 배우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최민식은 최근 스스로에게 ‘브레이크를 거는 중’이다. 죽을 때까지 욕심을 부렸던 차무식과 다른 삶이다. 그는 2021년 계약 만료 후 소속사와 매니저도 없이 홀로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 촬영장까지 직접 운전하고, 배고플 때는 맛집을 검색해 들어간다. 택시를 타기도 하고 가까운 거리는 그냥 걷기도 한다. 이날도 청바지에 검은색 셔츠와 재킷 등 가벼운 차림새로 나왔다. 직접 움직이다 보니 힘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자기 시간이 늘어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단다. 최근 차기작인 영화 ‘파묘’ 촬영을 마쳤다는 그에게 다음에 하고 싶은 연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찌르고 베는 범죄 스릴러보다 쓰다듬고 보듬는 휴먼 드라마가 그립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년의 로맨스를 하고 싶어요. 감히 꽃피울 엄두도 안 나는, 절제하느라 짠하고 아픈, 그러면서도 어른스러운, 절대 강요하지는 않지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요.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회복의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우리(배우)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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