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육아휴직도 절반이 못 쓰는데, 여당은 황당한 저출생 대책만
노동자 중 절반 가까이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노동시장의 약자일수록 마음대로 못 쓰는 비율이 높았다.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5위인 노동환경에서 아이를 낳고 돌보는 데 필요한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인구재앙은 악화일로인데 정부와 여당은 원인 진단부터 헛다리만 짚고 있다.
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26일 공개한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비율이 45.2%에 달했다. 특히 비정규직(58.5%), 5인 미만 사업장(67.1%), 월 임금 150만원 미만(57.8%)인 경우 이 같은 비율이 더 높았다. 출산휴가 또한 자유롭게 못 쓴다는 응답이 39.6%나 됐다. 일·생활 균형을 위해 법적으로 보장한 휴가인데도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불이익을 우려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도박 아니면 모험이다. 저출생 문제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우선 출산휴가·육아휴직만이라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2030년대가 되기 전 6~7년이 저출산 경향을 반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현재 14%인 남성 육아휴직률을 2030년까지 8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휴직 전 임금의 100%를 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한국 정부와 여당은 무엇을 하고 있나. 저출생 원인 중 하나인 장시간 노동을 외려 악화시킬 ‘주 69시간제’를 포기 못하고 밀어붙이는 중이다. 육아휴직도 마음대로 못 쓰는 현실 앞에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다짐은 공허하다. 여당은 저출생을 핑계로 빈익빈부익부를 심화시킬 사실상의 부자 감세를 만지작거린다. 국민의힘은 최근 ‘자녀 수에 따른 증여재산공제 차등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조부모가 부모에게 재산을 증여할 때, 그 부모가 세 자녀를 뒀으면 4억원까지 세금을 면제해준다는 내용이다. 앞서 국민의힘에선 3명 이상 자녀를 낳은 20대 아빠에 대해 병역을 면제하는 안을 검토해 논란을 빚었다. 평범한 20대 남성이 일찍 결혼하거나 자녀를 두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역시 부유층 위주 정책이다.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된 여성을 고려한 성평등 정책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출생아 중 첫째아이 비율(62.7%)이 통계 작성 시작 이후 처음으로 60%를 넘어섰다. 정부가 조만간 윤 대통령 주재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열고 관련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정확한 진단 없이는 또다시 밑 빠진 독에 물붓기로 끝날 것이다. 더 이상 느긋하게 실패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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