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얼룩말 ‘세로’의 슬픈 탈주극

반지하 가구가 밀집한 주택가에 선 배달 노동자, 담벼락 옆 폐지 더미까지 분명 한국 대도시 모습인데, 그곳에 얼룩말이라니. 합성한 이미지일까. 많은 시민들이 이 기묘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진으로 얼룩말 ‘세로’의 동물원 탈출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동아프리카 평원에서 하루 수십㎞를 누비며 살아야 할 이 얼룩말은 어쩌다 2023년 3월 서울 도심에 출현한 걸까.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따르면 얼룩말을 가뒀던 나무 울타리가 너무 약했고, 부모를 잃은 뒤 홀로 생활하며 난폭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로는 2021년 이 동물원에서 태어난 수컷이다. 그가 속한 그랜트얼룩말 품종은 케냐·탄자니아 등에 주로 분포하며, 종마가 이끄는 최대 18마리 무리 속에서 지낸다. 1년 정도 어미 배 속에 있다가 태어나 1년간 젖을 먹고 생후 3~6년이 지나면 다 자란다. 20년 이상 산다고 하니, 세로는 사람으로 치면 10대 초중반 청소년으로 볼 수 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는 얼룩말이 양, 소, 돼지, 말 등과 달리 야생성이 강해 가축화하기 어려운 동물로 소개된다.
세로가 도심을 활보하며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했을지, 두려웠을지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마취총에 맞아 비틀대다 쓰러져 트럭 짐칸으로 옮겨지는 마지막 모습은 처연함을 느끼게 했다. 5년 전 다른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처럼 사살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세로는 한 자동차와 접촉하긴 했지만 인간에게 큰 해를 끼치진 않았다. 오히려 전 세계 언론에 ‘해외 토픽’으로 다뤄지며 눈요깃거리가 됐다. 주말에 많은 시민들이 세로를 보기 위해 동물원에 갔지만 ‘안정을 취하고 있다’는 설명에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동물원은 우리를 철제로 바꾸고, 친구를 붙여주는 식으로 대응할 모양이다.
세로를 자연으로 보내자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동물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동물보호, 품종보존으로 명분을 바꿔도 동물원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 다른 존재를 그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좁은 공간에 가둬 감상하면서 그들도 행복할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로의 ‘무해한’ 탈주극이 슬픈 것은 그게 비단 동물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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