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공부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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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남지역 한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두번째 시간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각 직업의 평균임금을 보여준 뒤에 이 임금체계가 타당한지 부당한지를 두고 토론했다.
한 학생은 대학교수는 다른 직업에 비해서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노력과 비용에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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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명인(命人) |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얼마 전 전남지역 한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첫번째 시간엔 여섯가지 직업을 제시했다. 각 직업의 노동시간이 같다고 가정하고 일의 강도, 위험도, 사회적 기여도, 요구되는 책임성, 보람의 정도를 1부터 10까지 숫자로 평가해보고 토론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각 직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찾아보면서 노동강도와 위험도를 따졌고, 만일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그 일을 하다가 실수하면 어떤 책임이 따를까, 그게 나의 일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며 일할까 등을 상상하며 토론했다.
토론 결과, 청소가 가장 힘들지만 사회적 기여도 보람도 가장 클 것 같다, 대학교수가 사회적 기여도 보람도 크지만 노동강도와 위험도는 가장 낮을 것 같다, 버스기사가 일도 힘들고 위험하며 요구되는 책임성이 가장 크기 때문에 노동의 가치가 제일 크다, 나름의 이유로 모든 노동의 가치는 똑같다 등 다양한 의견이 발표됐다. 자동차부품 제조노동자들의 경우, 기후위기 시대에 자동차는 앞으로 줄어들어야 하기 때문에 가장 가치가 낮은 노동이라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두번째 시간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각 직업의 평균임금을 보여준 뒤에 이 임금체계가 타당한지 부당한지를 두고 토론했다. 스물한명 중 세명 학생이 대학교수와 다른 직업의 임금 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 것은 타당하다고 발표했다. 한 학생은 대학교수는 다른 직업에 비해서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노력과 비용에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그만큼 돈으로 인정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랬더니 “공부를 많이 하고도 저렇게 큰 임금 차이에서 불평등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건 공부를 헛한 거”라는 반박이 나왔다. 교실에 박수가 터졌다. 지지발언이 쏟아졌다. 자칫 이 의견이 다른 학생에 대한 다수 학생의 비난으로 번지지 않을까 내심 조마조마했는데, 갑자기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쌤, 대체 공부를 잘한다는 기준이 뭐예요?”
내가 대답할 새도 없이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자연스레 토론 주제가 바뀌었다. 그리고 끝내 공부란 무엇인가로 토론이 이어졌다. 내가 나누려던 피피티는 펼쳐보지도 못했지만 굳이 펼칠 필요가 없었다.
시험을 잘 보면 공부를 잘하는 것인가? 왜 모든 사람이 똑같은 공부를 해야 하나? 국영수를 잘하면 좋은 의사나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농사 같은 건 왜 수능시험 과목에 없나? 상담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노력하고 평가받아야 할 것은 국영수가 아니라 경청능력과 공감능력이 아닌가? 앞 시간에 따져본 대로 다각도로 노동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적성이 다른 모든 사람이 대학에 가려고 기를 쓸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 학생들의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결국 학생들의 토론은 공부의 가치를 다시 따져야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면서 종이 쳐서 수업이 끝났다.
전태일은 대학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대학생 친구가 한명만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고 한다. 그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면서 자기 몸을 불사른 지 5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학진학률은 70%가 넘는다. 대학진학률이 20%일 때나 70%일 때나, 사회학자 소로킨의 표현을 빌자면 학교는 “사람들을 시험이란 체에 걸러서 소수에게 특권을 부여하고 그밖의 사람들을 배제”한다. 그러나 특권을 독점하는 한정된 노동만으론 당연히 이 사회가 굴러갈 수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까? 온통 노오~력을 강요하는 사회에 이 학생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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