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남편에 가장 고통받았냐고?…왕비 6명 ‘나의 노래’ 부르다

정혁준 2023. 3. 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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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콘서트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
헨리 8세의 여섯 왕비 이야기
<식스 더 뮤지컬> 공연 장면. 아이엠컬처 제공

아라곤·불린·시모어·클레페·하워드·파. 이들 이름엔 공통점이 있다. 영국 튜더 왕조 헨리 8세(1491~1547)의 여섯 왕비란 점에서다.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은 이 여섯 왕비를 모티브로 한다. 막이 오르면 한자리에 모인 여섯 왕비가 자신이 가장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누가 남편 헨리한테 가장 고통받았는지를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불러 평가받기로 한다.

실제로 그들의 운명은 기구했다. 이혼당한 사람이 두명, 참수당한 사람이 두명, 아이를 낳다 죽은 사람이 한명이었다. 남편보다 오래 산 사람은 단 한명뿐이었다. 이들은 ‘결혼 스캔들’로 유명한 남편 헨리 8세에게 평가당하고, 당시와 후세 많은 이들에게도 평가당해왔다.

뮤지컬에서 팝스타로 거듭난 이들은 노래를 통해 이런 평가를 뒤집어버린다. 오히려 남편과 헤어지면서 당당히 자기 삶의 주인이 됐다고 노래한다.

<식스 더 뮤지컬> 공연 장면. 아이엠컬처 제공

헨리 8세의 형수로 첫번째 부인이 된 아라곤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실제 이혼당하지만, 뮤지컬에선 당당하게 남편을 향해 ‘말도 안 돼’라는 노래를 부르며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영화 <천일의 앤>으로도 유명한 불린은 실제로 참수당하지만, 뮤지컬에선 자유롭고 반항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초상화와 실물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혼당한 네번째 부인 클레페는 “혼전 계약서에 따라 헤어진 뒤 많은 돈과 커다란 성을 선물받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노래한다. 헨리 8세의 죽음을 유일하게 지켜본 마지막 왕비 파는 “사랑에 연연하지 않고 책과 명상록을 쓰는 작가이자 여성 교육을 위해 싸웠다”고 말한다.

500여년 전 여섯 왕비는 노래를 부르면서 현재의 인기 팝스타로 부활하고,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나’를 위한 노래를 부르는 ‘디바’로 거듭난다. 그러면서 이들은 누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는지 겨루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알아간다.

결국 이들은 여섯 왕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닫고 “너(헨리 8세)의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식스야”라고 외친다.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나 자신을 찾고 서로 연대하자는 의미다. 이렇게 상식을 뒤엎는 반전을 팝 스타일의 노래로 들려준다. 관객도 자연스레 환호성을 내지르게 된다.

뮤지컬에 몰입하다 보면, 여섯 왕비는 현재 활동하는 팝스타와 닮은꼴이란 걸 알 수 있다. 비욘세와 샤키라를 닮은 듯한 아라곤, 아델과 시아를 떠올리게 하는 시모어를 비롯해 애브릴 러빈, 니키 미나즈, 아리아나 그란데, 브리트니 스피어스, 얼리샤 키스 등 인기 팝스타의 노래와 이미지를 여섯 왕비를 통해 느껴볼 수 있다.

여섯 왕비는 록·팝·힙합·발라드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선사하며 스탠딩 코미디처럼 맛깔나는 입담과 언어유희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톡톡 튀는 가사와 익살스러운 유머도 감각적이다. 클레페는 “프사(프로필 사진)와 다르다고 까였다”고 말한다. 엠제트(MZ) 세대에 맞춘 이런 가사는 발칙하고 솔직하게 다가온다.

<식스 더 뮤지컬> 공연 장면. 아이엠컬처 제공

‘팝 콘서트 뮤지컬’을 표방하고 있어 특별한 무대 전환이나 장치 변화는 없지만, 화려한 조명 연출과 라이브 밴드 연주 덕에 지루할 틈이 없다. 기타·베이스·키보드·드럼 등 네명의 라이브 밴드 연주자도 모두 여성이다.

이 뮤지컬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동문인 토비 말로와 루시 모스가 2017년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지난해 토니상 최우수 음악상과 의상·디자인상을 받았다.

내한 공연은 이달 10~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아티움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렸다. 31일부터 6월25일까지는 한국어 공연이 이어진다. 한국어 공연은 전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으로 진행된다. 손승연·이아름솔(아라곤), 김지우·배수정(불린), 박혜나·박가람(시모어), 김지선·최현선(클레페), 김려원·솔지(하워드), 유주혜·홍지희(파)가 무대에 오른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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