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서 퍼진 '공포 바이러스'… 알프스 넘어 전유럽 은행 전염

김덕식 기자(dskim2k@mk.co.kr) 2023. 3. 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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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은행(SVB)의 초고속 붕괴를 불러온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또다시 문제를 일으켰다. 도이체방크 주가가 폭락한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NS에서 활동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도이체방크를 새로운 타깃으로 정하면서 이 은행에 대한 언급이 최근 며칠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타트야나 그레일 카스트로 뮤지니치앤코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WSJ에 "시장이 벼랑 끝에 몰렸다"며 "다음 타깃을 찾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도이체방크 주가는 장중 14% 이상 떨어졌다. 그러나 SNS에서 나도는 언급에 대해 WSJ는 "단기간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도이체방크 주가도 폭락 후 장중 바로 반등했다"고 강조했다.

도이체방크 주가 폭락은 시장의 불안감이 무차별 확산하며 다음 목표를 찾는 가운데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WSJ는 "크레디트스위스(CS)가 (정부에서) 피인수를 강요받은 지 며칠 만에 독일 주요 은행에 대한 염려가 '전염병'처럼 나타났다"고 전했다.

도이체방크 주가가 흔들린 배경으로는 신용부도스왑(CDS)의 악화가 우선 지목됐다. 이날 블룸버그에 따르면 도이체방크 CDS 5년물 프리미엄은 장중 220bp(1bp=0.01%포인트)까지 올랐다. 지난 10일만 해도 100bp를 밑돌았던 걸 감안하면 2주 사이 2배 이상 급등하면서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UBS가 CS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신종자본증권인 AT1 채권(코코본드)이 휴지 조각이 된 점도 도이체방크에 악재로 작용했다. 채권 전문기관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2014년에 발행된 도이체방크 AT1 채권은 이날 기준 달러당 70센트에 거래됐다. 이달 초 95센트였던 점과 비교하면 뚜렷한 하락세다. 이에 도이체방크는 2028년 만기가 되는 별도의 후순위채를 상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장의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도이체방크는 이미 상당한 양의 AT1 채권을 발행한 점이 문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도이체방크가 발행한 AT1 채권은 약 91억달러 규모다. 이는 핵심 자기자본(CET1) 대비 17.7%로 유럽 평균(약 16%)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문제점이 가뜩이나 불안한 시장에서 또다시 악재가 되고 다른 글로벌 은행을 타깃으로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도이체방크의 경영 상황은 누적된 투자 실패로 손실이 쌓였던 CS와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도이체방크는 2019년 이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재정 상황을 안정화했다.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 대비 160% 증가한 56억6000만유로를 기록했다. 이는 2007년 이후 최대 규모다.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142%다. LCR은 30일간의 잠재적 유동성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현금화가 용이한 고유동성 자산 비율이다. 강력한 자본 버퍼를 구축했다고 WSJ는 분석했다. 오토노머스 리서치 소속 분석가들은 "도이체방크의 유동성은 강력하고 수익성은 견조하다"며 "제2의 CS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 월가 자산운용사 인사는 "갑자기 불거진 도이체방크 위기론은 뚜렷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며 "시장이 막연한 공포를 안고 있고 혼란은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영 상태가 CS와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알 수 없는 공포감으로 도이체방크의 CDS가 급등한 셈이다.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이 1조4484억달러에 달하는 독일 최대 은행이다.

각국은 도이체방크 위기설에 즉각 반응했다. 글로벌 은행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는 예정에 없던 비공개 긴급회의를 열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소집으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게리 겐슬러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 마틴 그룬버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 등이 참석했다.

은행권 공포감은 중소은행 예금 인출로 이어졌다. 블룸버그는 연준 데이터를 인용해 지난 15일 예금 잔액이 17조5000억달러로 일주일 전보다 984억달러 감소했다고 전했다. 소규모 은행의 예금은 1200억달러 감소했고, 상위 25개 은행 예금은 670억달러 늘었다. JP모건에 따르면 최근 2주 동안 5500억달러가 지역 단위의 작은 은행에서 대형 은행과 머니마켓펀드(MMF) 등으로 이동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이날 전했다. 미국 자산운용협회(ICI)는 SVB 붕괴 이후 2주 동안 주로 저위험 증권에 투자하는 뮤추얼 펀드의 일종인 MMF에 거의 2400억달러가 유입됐다고 추산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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