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늘리려 포괄임금제 폐지?…“바꿔치기 대상 아니다”

방준호 2023. 3. 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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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9시간]정부, 노동시간 개편 반발에 포괄임금 폐지 추진
“전문가 포괄임금은 고질적 문제…주고받기 안돼”
<한겨레> 자료

“포괄임금제로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평일 초과근무를 강요하면 제가 거절할 수 없는 건가요? 수당을 안 받겠다고 해도 문제일까요?” (금융업체 노동자)

지난해 9월 직장갑질119에 전달된 ‘흔한’ 질문은, 노동 시간과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을 벗어난 현실의 노동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담고 있다. 연장근로 수당 등을 미리 정한 액수만큼만 지급하는 포괄임금약정은 법에 없는 계약 방식임에도 40% 가까운 사업체가 쓸 정도로 만연하다. 제도와 현실의 간극을 벌려 장시간 노동을 낳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돼 온 이유다.

애초 포괄임금 오·남용에 대해 근로감독을 강화해 해결하겠다던 정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에 대한 시민의 반발 속에 법으로 포괄임금을 제한하는 방안까지 고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필요성과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단지 연장근로를 유연화하기 위한 ‘달래기용’에 그쳐선 안 된다고 짚었다.

<한겨레> 취재를 26일 종합하면, 정부는 현재 주 최대 12시간인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하는 연장근로 유연화를 전제로 이런 포괄임금약정을 제한하는 입법과 노동 시간 기록 의무화를 검토하고 있다.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근로시간개편 논란으로) 포괄임금을 법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볼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문재인 정권에서 폐지 못한 포괄임금제를 윤석열 정부에서는 폐지하는 것이냐”는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그런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다만 “주 상한 12시간을 규제함으로써 편법 노동, 공짜 노동이 빈발하고 근로시간 기록관리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포괄임금을 주 최대 52시간제의 탓으로 돌리며 두 사안을 ‘주고받는’ 문제로 설명한 셈이다.

포괄임금 약정은 근로기준법에 없는 계약 형태다. 다만 판례로 인정됐다. 법원은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거나 △근로기준법에 견줘 노동자에게 불이익하지 않을 경우 등에만 포괄임금약정에 따른 임금 지급이 정당하다고 인정한다. 현실에는 법원 판례에 비춰봐도 정당하지 않은 포괄임금 약정이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의 ‘2020 포괄임금제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는 10인 이상 사업장 2522곳 가운데 포괄임금약정을 체결한 사업체가 37.7%에 이르며, 사무·관리직의 경우 이 비중이 79.6%에 달한다고 조사한 바 있다. 법정 노동시간, 연장근로와 각종 유연근무제도의 제한 장치 등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는 포괄임금 약정이 특히 사무직을 중심으로 표준적인 노동 형태가 된 셈이다.

포괄임금은 근로시간 기록을 외면하는 문화와도 연결된다. 포괄임금 약정에서는 근로시간을 기록할 필요가 없는 데다, 근로 기록이 없을수록 포괄임금의 정당성(근로시간 산정의 어려움)이 인정되는 만큼 근로시간 자체를 남기지 않는 왜곡된 문화를 낳았다.

심지어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사무직 근로시간 실태와 포괄임금제 개선방안> 조사에서 대부분 사용자(인사 담당자)는 직종·업무 내용에 따라 연장근로 시간제한을 풀어주는 사용자 친화형 유연근무제도인 ‘기획업무형 재량근로제’(84%)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85%)조차 ‘도입 의사가 없다’고 응답했다. 연구진은 그 이유로 “아무런 제약 없는 포괄임금제를 쓸 수 있는 상황에서 새 유연 근로제도가 (사용자에게) 어떠한 매력적인 요소도 없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법과 원칙’을 현실에 구현하는 포괄임금제 금지,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가 개혁적인 조처로 여겨지는 이유다.

다만 이를 정부 설명처럼 연장근로 유연화와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포괄임금 금지는 이미 확립된 법 원칙을 지키는 문제로, 이를 새로운 제도인 연장 근로 유연화와 주고받는 대상처럼 설명하는 것은 이상하다”며 “포괄임금제는 주 최대 52시간제 이전에도 만연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사업체 패널조사 기초분석보고서를 보면, 사무직 근로자가 평일 연장근무를 고정적으로 하는 경우 포괄임금 형태로 임금이 지급된 사업체는 주 최대 52시간제 시행(2018년) 전인 2015년 42.8%, 2017년 48.3%로 이미 가장 흔한 계약 형태였다.

포괄임금 약정이 워낙 만연한 탓에 정부 대책이 선언적인 ‘달래기’ 수준에 그칠 우려도 있다. 박성우 노무사(직장갑질119)는 “포괄임금 금지나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는 중요한 과제인데, 이미 포괄임금에 포함된 수당을 당연한 임금으로 생각하는 현장도 있고 근로시간 측정이 엄격해지는 면도 있어 달래기용으로 개편방안에 어설프게 끼워 넣다 보면 부작용 논란만 일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애초 정부는 3월 중 근로시간 기록·관리 강화, 포괄임금·고정수당 오남용 근절에 대한 종합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개편방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 이후 미뤄졌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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