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리듬 탄 차준환, 세계선수권 銀 '명중'

이용익 기자(yongik@mk.co.kr) 2023. 3. 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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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륙 金·올림픽 5위 이어
韓남자 피겨 역사상 최초
4회전점프 개선해 가산점
쇼트·프리 개인 최고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 최초로 은메달을 획득한 차준환. EPA연합뉴스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홀로 갈아치우고 있는 '개척자' 차준환(고려대)이 다시 한번 잊지 못할 발자국을 새겼다. 차준환은 지난 25일 일본에서 열린 2023 국제빙상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피겨 이해인(세화여고)도 전날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남녀 동반 입상'이라는 쾌거를 이뤄 기쁨이 더했다.

25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프리 프로그램에서 차준환은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사운드트랙에 맞춰 차분하게 연기를 펼쳤다. 전날 열린 쇼트 프로그램에서 99.64점으로 자신의 최고점을 경신했던 차준환은 프리에서도 기술점수(TES) 105.65점, 예술점수(PCS) 90.74점으로 합계 196.39점을 따냈다. 200점 고지를 넘지는 못했지만 이 역시 자신의 최고점이다.

쇼트프로그램까지만 해도 아슬하게 3위였던 차준환은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을 합친 총점에서 296.03점으로 일리야 말리닌(미국·288.44점)을 제쳤고, 금메달을 따낸 우노 쇼마(일본·301.04점)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우노(196.51점)에게 불과 0.12점 차 뒤진 2위에 오른 덕분이었다.

자연스레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도 새롭게 쓰였다. 이번 대회 이전까지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수확한 한국 선수는 현역 시절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따냈던 '피겨여왕' 김연아(은퇴)가 유일했지만 차준환과 이해인이 나란히 은메달을 따내면서 '연아 키즈'들이 성장하며 불모지라 불렸던 한국 피겨스케이팅도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이로써 차준환은 ISU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세계 랭킹 3위, 이해인은 세계 4위에 당당히 올랐다. 또한 차준환의 은메달 덕분에 내년에 한국은 처음으로 피겨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에 3명의 선수를 내보낼 수 있게 됐다.

특히 차준환은 이번 대회에서 입상이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기에 더욱 짜릿한 결과이기도 하다. 러시아 강자들이 빠지며 경쟁이 덜했던 여자부에 비해 남자부에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은메달리스트이자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였던 우노를 필두로 한 홈팀 일본 선수들은 물론, 피겨 사상 처음으로 쿼드러플(4회전) 악셀을 뛴 말리닌까지 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준환은 흔들리지 않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만 해도 15위였던 차준환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치른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올림픽에서도 총점 282.38점을 받아 5위에 오르며 성장세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올림픽 직후 세계선수권에서 스케이팅 부츠 문제로 기권하며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4회전 점프에서의 개선이 돋보였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모두 합쳐 3개의 4회전 점프(쇼트 1개, 프리 2개)를 뛰는 차준환은 경쟁자들에 비해 점프의 다양성 측면에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당장 무리해서 점프를 늘리기보다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고 이 전략이 성공적으로 통했다.

쇼트프로그램까지 2위(100.38점)였던 말리닌은 프리스케이팅에서 회전수를 지적받으며 점수가 깎인 반면 차준환은 큰 실수가 없었다. 두 개의 쿼드러플 점프를 완벽하게 뛰었고 특히 쿼드러플 살코에서는 무려 수행점수(GOE) 4.16점을 챙기는 등 4회전 점프에서 모두 3점 이상의 가산점을 받을 정도였다. 원래부터 자신의 장점이었던 비점프 요소에서는 모두 최고 등급인 레벨4를 받았고 결국 짜릿한 역전이 이뤄질 수 있었다.

특유의 밝은 미소와 함께 은메달을 목에 건 차준환은 "지난 시즌에 부츠 문제로 기권하는 등 세계선수권에서는 늘 좋은 기억이 없었는데 마침내 좋은 기억을 만들었다"며 "이번 대회에 오기 전에 스케이트를 바꿔 준비했고, 메달을 기대하지 않았다. 메달 이전에 클린 연기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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