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성장과 행복의 아름다운 동행

2023. 3. 2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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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에도 행복지수 낮은 한국
정치가 제 역할을 안 하니
항시적 분열·마찰 상태
양당 독과점 정치 못 끝내면
갈등공화국 오명 못 벗어

대한민국 성장 스토리는 한 편의 드라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된 수많은 국가 중에서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모두 일궈내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1953년 67달러에서 2021년 3만5168달러로 무려 524배나 증가했다. 국가 국내총생산(GDP) 규모로는 세계 10위권이다. 최근 미국 뉴스앤드월드리포트(USNWR)는 한국을 '2022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6위에 선정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에서 미군이 던져준 초콜릿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은 기적에 가깝다. 그것도 맨몸 하나로 근면, 근성, 도전정신만으로 이루어낸 것이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자본주의 250년의 역사를 70여 년 만에 따라잡다 보니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속은 질병 주머니를 차고 사는 환자와 같다. 압축성장에만 매달려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사회 양극화 심화, 취약한 사회안전망, 계층 이동이 어려운 사회 구조, 모든 것을 돈으로만 평가하는 물신주의,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 등 공정과 정의가 무너져내렸다. 가치관 혼돈, 인성교육 실종, 역사의식 부재로 정신적 피폐 속에 인간성과 도덕성마저 잃어 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치유해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이를 확대재생산하면서 사회적 갈등과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3월 20일 우리나라 행복지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위로 발표했다. 지난달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36위다. 한국보다 낮은 곳은 콜롬비아와 튀르키예뿐이다.

우리 사회의 건강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들은 더욱 참담하다. 자살률은 2003년부터 줄곧 OECD 1위이다. 미래 희망을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8명으로 OECD 평균(1.59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가정을 파괴하는 높은 이혼율, 날로 흉포해지는 사회범죄 증가 등 화려한 경제 성적표에 반해 사회적 갈등지표는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겉포장만 선진국인 셈이다. 도를 넘는 사회적 분열과 마찰이 일상화되면서 제조 강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경제성장 엔진도 동력을 잃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성장 중심의 경제지수와 삶의 질을 나타내는 행복지수가 동행하는 명실상부한 선진 한국의 해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국가 발전의 틀'을 물질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대전환해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이중 구조를 완화해야 한다. 양극화는 초연결사회와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유능하고 유연해야 한다. 케인스식 수요 확대와 슘페터식 공급 혁신의 양자택일이나, 낙수효과냐 분수효과냐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적 독특한 상황과 환경 변화에 맞춤형 융·복합 정책으로 기민하게 대처함으로써 양극화 성장에서 동반 성장으로, 고용 없는 성장에서 고용 창출형 성장으로 성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를 양분시키고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양당 독과점 진영 정치를 개혁해 갈등공화국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독과점 체제하에서 정치인들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치 본래의 기능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수 정당 간에 치열한 경쟁과 정치연합의 시대가 열리면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국가 발전과 민생 살리기 경쟁을 하게 되고 협치의 정치가 실현될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이 절실한 이유다.

시간이 없다. 창조적 파괴를 통해 포용적 경제 시스템과 통합정치 생태계를 구축해 정의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국민은 가난보다 고르지 못한 것에 더 분노한다는 교훈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용섭 전 건설교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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