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이어 獨 도이체방크도 흔들…계속되는 SVB발 금융불안
장기간 구조조정 겪으며 체질 개선…"자본·유동성 강력" 평가도
美 중소은행 위주 뱅크런 계속…일주일새 127조원 빠져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박종화 기자] 은행권 위기설이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로 번졌다. 크레디트스위스(CS)의 신종자본증권(AT1) 전액 상각 후폭풍으로 AT1 발행량이 많은 도이체방크가 유탄을 맞은 것이다. 독일 당국과 유럽중앙은행(ECB)은 시장 불안감이 실제 위기로 번지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
CNBC 등에 따르면 도이체방크의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4일(현지시간) 장중 222bp(1bp=0.01%포인트)까지 올랐다. 한 달도 안 돼 두 배 넘게 뛰었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기업·국가가 부도났을 때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파생상품이다. CDS 프리미엄이 높을수록 시장이 부도 위험성을 높게 본다는 걸 의미한다.
도이체방크 위기설은 CS 사태에서 비롯됐다. UBS는 유동성 위기에 빠진 CS를 인수하며 170억달러(약 22조원) 신종자본증권(AT1)을 전액 상각 처리했다. AT1은 코코본드(조건부전환사채)의 일종으로 금융기관 건전성 확보에 문제가 생기면 투자자 동의 없이 상각 처리될 수 있다. 채권이 한순간에 휴짓조각이 되면서 다른 은행 채권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다.
문제는 도이체방크 역시 상당한 양의 AT1을 발행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도이체방크가 발행한 AT1 채권은 약 91억달러(약 12조원) 규모, CET1(보통주 자본·보통주,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 등 핵심 자본) 대비 17.7%로 유럽 평균(약 16%)보다 높은 수준이다. 채권 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이달 초 95센트에 거래되던 도이체방크 AT1 채권(액면가 1달러 기준) 24일 70센트까지 값이 내려갔다.
숄츠 “도이체방크 수익성 아주 높아” 시장 달래기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말 기준 자산이 1조4000억달러(약 1820조원)에 이르는 독일 최대 은행이다. 주요 20개국(G20) 산하 금융안정위원회(FSB)가 ‘글로벌 시스템에 중요한 은행’(G-SIB)으로 지정할 정도니 도이체방크 위기설이 현실화되면 큰 후폭풍이 나타날 수 있다.
다만 CS와 비교하면 도이체방크는 훨씬 탄탄하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지난해 도이체방크는 57억유로(약 7조9700억원)에 이르는 순익을 기록하며 2007년 이후 최고 실적을 거뒀다. 유형자본수익률(ROTE)이 마이너스였던 CS와 달리 도이체방크는 7~8%대를 유지하고 있다.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LCR·1개월 간 순현금유출 대비 고유동성 자산 비율)도 142%에 이른다. 또한 2019년 이후 장기간 구조조정을 거치며 건전성을 개선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튜어트 그래이엄 오토노머스리서치 전략가는 24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도이체방크의 강력한 자본과 유동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상황에) 상대적으로 낙관적”이라며 “분명 도이체방크는 제2의 CS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책 당국은 시장을 안심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도이체방크는 사업을 근본적으로 현대화하고 재편했으며 매우 수익성이 높다”며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은행 부문은 강력한 자본과 유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탄력적”이라며 “ECB는 필요하면 유로존 금융 시스템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완벽한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美 중소은행 못믿어… 일주일새 예금 127조원 감소
미국은 금융당국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추가 지원책을 검토하고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분리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에 대한 불안감에 일주일 새 127조원 이상의 자금이 빠져나가는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블룸버그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최신 통계 자료를 인용해 지난 15일 기준 미 은행 예금 잔액이 17조5000억 달러(약 2경2750조원), 전주 대비 984억 달러(127조9200억원)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1년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예금 이탈 대부분은 중소형 은행에서 발생했다.
미국계 투자회사 티로프라이스의 전략가인 팀 머레이는 “모두가 예금을 인출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지만 한 사람만 돈을 빼면 (자본 유출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죄수의 딜레마’ 같은 상황”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조셉 트레비사니 FX스트리트닷컴 수석 애널리스트는 “더 문제가 생기진 않을는지 시장이 의심하거나 지쳐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라며 “시장이 은행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는 확신이 생기려면 아무 일 없이 몇 주가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화 (bel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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