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의 공생 ‘유인원과의 산책’에서 찾는다[화제의 책]

엄민용 기자 2023. 3. 2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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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과의 산책 표지



스포츠에는 수십 년 전 세워진 기록 중에 아직 깨지지 않은 것이 많다. 산업 현장에서 오래전 개발된 기술이 지금까지 쓰이는 것 또한 많다. 책도 마찬가지다. 세월이 깊어질수록 더욱 빛나는 걸작들이 적지 않다. ‘유인원과의 산책’(사이 몽고메리 지음 / 김홍옥 옮김 / 돌고래)도 그중하나다.

이 책은 동물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제인 구달과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 등 세 여성의 삶과 연구 그리고 그들이 관계를 맺었던 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과 이 동물들이 살고 있는 아프리카 및 보르네오 우림을 입체적으로 소개한다, 이 책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지난 2001년이다. 이후 2009년 원서 개정판이 나왔고, 그에 따라 국내에서도 완전 개정판을 새로이 선보이게 됐다.

현재 인류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산불·홍수 같은 재난과 전쟁 및 내전 등으로 전 세계에서 난민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피해는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가혹한 재앙으로 닥치고 있다. 특히 동물들은 서식지를 빼앗겨 멸종위기를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의 접점이 늘어나 전염병으로도 고통받는다. 의학 실험실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통받는가 하면 실내외 동물 체험장과 동물원에서 살아가는 동물들도 수두룩하다.

그뿐 아니다. 가축들은 공장식 축산업의 틀 속에서 점점 더 공산품처럼 생산되고 소비된다. 한편에서는 반러동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그로 인해 더욱 참혹하게 목숨을 이어가는 동물도 늘어가고 있다. 인간과 동물들이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상이자 풀어가야 할 숙제가 그만큼 많은 시점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유인원과의 산책’은 우리에게 모든 선입견과 당위를 뛰어넘어 인간이 동물이나 자연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지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탐구하고 행동하도록 만든다. 이 책이 지닌 가장 놀라운 점은 30년 전 처음으로 쓰인 책이 어떻게 최근에 출간된 책들 못지않게 동물에 대해 편견 없는 태도와 입장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다. 아니, 어느 면에서는 오히려 최근의 책들보다 낫다.

이는 세 여성 선구자들의 행동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다. 이들은 온갖 그럴듯해 보이는 수많은 비판들을 헤치고 자신들의 현장, 그 현장에서 살아가는 유인원들만을 바라보았다. 그 현장과 그 현장에서 살아가는 생명들과 진짜로 연결됐던 그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후회하지 않을 결정들을 내리고 그것을 행동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자신의 연구 대상인 세 여성들에 대해 똑같은 태도를 취한다. 어떤 원칙이나 당위, 외부적인 기준과 잣대로 이들을 해부하고 수량화하고 잘잘못을 평가하지 않는다. 이들이 각각 어떻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영혼과 연결된 동물들을 이해하고 살리는 일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만을 기록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저자는 세 여성들을 길고 넓은 안목에서 바라보고 개별성과 차이를 인정했다.

이 책에서 누구의 방식이 더 옳다고 생각되고 누구의 방식은 틀리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책의 편협함 때문이 아니라 독자의 마음에 있는 편견 탓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독자에게는 그럴 자유가 있고,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

다만 저자는 이 책에서 서로 다른 이들의 굴곡진 인생을 그대로 수용하고, 그 결과들을 음미하며 간접경험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을 뿐이다. 유인원이든 인간이든 저마다 마주해야 하는 삶의 기쁨과 고통이 있으며, 누구의 생명과 삶도 함부로 재단되고 평가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세 영장류 연구자들과 이 책의 저자가 보여주는 태도다.

한편 제인 구달의 곰베 연구소는 이미 설립 60주년을 넘겼고, 다이앤 포시의 카리소케센터 역시 설립 50주년을 훌쩍 넘어섰다. 비루테 갈디카스의 오랑우탄재단은 여전히 고아 오랑우탄들과 생포된 오랑우탄들을 치료하고 돌보다가 야생으로 되돌려보내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들은 수십 년 전부터 인간과 동물의 문제를 지적했고, 지금도 그 문제를 가장 앞서 풀고 있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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