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도진 與 ‘막말 행진’, 중도 확장 포기하고 극우로 역주행하나 [유창선의 시시비비]

유창선 시사평론가 2023. 3. 26. 14: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3년 전 잇단 망언으로 총선 참패했던 기억 되살려야

(시사저널=유창선 시사평론가)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에서는 후보들의 막말 행진이 이어졌다. 황교안 대표 겸 후보의 'n번방' 망언,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유족 관련 발언, 김대호 후보의 세대 비하 발언, 주동식 후보의 광주 '제사 도시' 발언 등 온갖 부적절한 말들이 쏟아졌다. 당시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나서 설화를 일으킨 후보들을 제명하고 경고도 했지만, 선거 판세에 미친 악영향을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보수 통합을 이루었다던 미래통합당은 '막말 정당'으로 인식되었고, 결국 총선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물론 당시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큰 수혜를 입었던 요인도 컸지만, 미래통합당의 막말 행진은 유권자들이 보수정당에 등을 돌리게 만드는 큰 이유가 되었다.

그 같은 21대 총선 결과는 보수정당에 큰 성찰적 교훈을 남겨주었다. 그 후 지난해 3·9 대선을 치르기까지 국민의힘은 중도 확장성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극우 성향의 '아스팔트 보수'와는 선을 긋는 기조를 선택했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묘역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보수정당의 과거사를 참회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0.73%라는 박빙의 차이로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겼던 결과는 그러한 중도 확장 행보가 쌓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왼쪽부터)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3년 전으로 돌아가는 듯한 국힘의 행보

4·15 총선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한 지 근 3년의 시간이 지났고, 다시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참으로 희한한 광경은 총선 승부를 앞두고 오히려 3년 전으로 돌아가는 듯한 국민의힘의 역주행 모습이다. 근래 들어 국민의힘 안팎에서 쏟아지는 막말들은 3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 선출된 김재원 최고위원은 5·18 정신의 헌법 수록에 대해 "그건 불가능하다, 반대다"라고 말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극우 보수를 상징하는 전광훈 목사의 주일예배에 참석해 주고받은 얘기다. 김 최고위원은 "표를 얻으려면 조상묘도 파는 게 정치인 아니냐"며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했던 '5·18 정신의 헌법 수록' 약속을 표를 얻기 위한 립서비스로 만들어 버렸다. 전 목사가 "내가 200석 만들어주면, 당에서 나한테 뭐 해줄 거냐"고 질문하자 "제가 최고위원회에 가서 보고를 하고, 목사님이 원하시는 걸 관철시키겠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국민의힘 새 지도부가 '아스팔트 보수'와 다시 동지가 된 건 아닌가 싶다. 대통령실이 나서 "5·18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문제의 발언과 선을 긋자 김 최고위원도 뒤늦게 사과했다. 하지만 그동안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해 공들였던 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얘기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탈북민 출신으로 처음 여당 지도부가 된 태영호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과정에서 제주 4·3사건에 대해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태 최고위원은 "제주 4·3사건은 명백히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억울한 희생을 당하신 분들과 유가족들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는 설명이었지만, 대한민국 정부 이름으로 명예를 회복한 4·3사건을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하는 것은 4·3사건에 대한 색깔론의 재등장이라는 반발을 낳았다.

그런가 하면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은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 위원장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때 "인터뷰에서 5·18에 대해 북한이 본인들의 의도대로 개입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개입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했다. "북한군이라는 표현을 쓴 적은 없고,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까지 제가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런 말씀"이라고 설명했지만, 5·18을 북한의 개입과 연결 짓는 기존의 발언들을 재확인한 셈이어서 진실화해위 위원장의 역사인식 왜곡 논란이 불거지게 되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속은 아니지만, 윤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계열 인사라는 점에서 여권에서 나온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한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국내 비판 여론들이 이어진다고 해서 이를 '식민지 콤플렉스'라고 폄하한 정진석 전 비대위원장의 발언도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국민 감정을 콤플렉스라며 열등한 감정으로 폄하하는 것은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이분법적 친일-반일 기조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인 양보를 지적하는 이유 있는 비판들까지도 콤플렉스로 비하하는 발언은 부적절하다.

앞서는 지지율에 고무돼 겸손함 잃어가

문제는 이런 개념 없는 발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지는 국민의힘 안팎의 분위기에 있다. 지난 3년 동안 성찰하면서 조심하던 태도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모습이다. 무엇이 보수정치 쪽의 분위기를 이토록 달라지게 만든 것일까. 물론 집권세력이 되었다는 변화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박근혜 탄핵'으로 궤멸당했던 보수세력이 와신상담 끝에 권력을 잡게 되었다. 민주당 세력에 의해 5년 동안 '적폐' 취급당했던 보수의 설움이 있으니 이제 그들이 했던 많은 것들, 역사인식까지도 리셋하고 싶은 욕구가 앞설 것이다.

그러나 용감한 '보수의 전사'가 되라고 국민이 정권을 맡긴 것은 아니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는 진영이 아닌 국민 전체를 껴안고 가야 함은 우리 정치사의 교훈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을 앞서는 지지율에 고무되어 겸손함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집권세력이 오만해지면 얼마나 민심에 둔감해지고 일방통행을 하게 되는지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경험한 바 있다. 그런데 다시 국민의힘이 모래성과도 같은 지지율에 도취되어 절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힘은 한동안 민주당을 앞섰던 지지율이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따른 반사이익일 뿐, 자신들이 잘해서 얻은 결과가 결코 아님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도 바보는 아니다. '방탄정당'의 모습으론 22대 총선은 필패라는 인식이 공유되면 민주당은 '이재명 리스크'에서 탈출하기 위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총선 이전에 이재명 대표가 뒤로 물러서고 새로운 리더십이 당을 변화시키는 길을 간다면, 선거 판세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그에 반해 '친윤 일색'이 되어 용산의 눈치만 살피는 국민의힘에는 그런 담대한 변화를 이끌 만한 세력도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보수정당의 막말 행진 부활은 그들에게는 대단히 불길한 신호가 될 수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