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도 만드는 '성 중립 화장실'…"여학생 오해받을까 걱정"[이슈+]

김세린 입력 2023. 3. 26. 11:52 수정 2023. 3. 2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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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성공회대학교


서울대, 카이스트 등 국내 주요 대학에서 '성 중립 화장실' 설치를 예고하면서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26일 한국다양성연구소는 "서울대와 카이스트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하고 운영할 것을 결정했다"며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학교 차원에서도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설치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 중립 화장실은 남자와 여자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장애인 등 모두가 차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뜻한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또는 '혼성 화장실'로 불리는데, 칸마다 잠금장치와 세면대, 양변기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들어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과 사회적 역할이 점차 사라지고, 인권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모두에게 안전한 화장실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에서는 학교 발전소로 쓰였던 파워플랜트 건물(문화예술원)에 성 중립 화장실 준공이 확정됐다. 개별 단과대학 곳곳에서는 '가족 화장실' 이름의 화장실을 장애인, 성별 구분 없이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개선하는 것도 논의 중이다.

카이스트 지난해 말부터 한 단과대학 건물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을 모두의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현재에는 해당 화장실 하나가 운영 중이며, 새로 리모델링 된 건물에도 추가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국내 대학 중 가장 먼저 성 중립 화장실을 만든 건 성공회대다. 성공회대학교 인권위원회는 지난 16일 '모두의 화장실 준공 1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위원회 측은 "(성 중립 화장실 설치 후) 장애인, 아동과 양육자, 성소수자 등 기존의 화장실 이용이 어려웠던 소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서도 "(학교 내) 설치 위치나 학교 측의 관리 소홀 등을 앞으로 해결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실제로 성 중립 화장실은 '휠체어를 탄 부모를 모시는 자녀', '어린 자녀와 함께 외출한 부모',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 없어 불편했던 아빠'와 같이 화장실 사용에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해외에서는 이미 성 중립 화장실(unisex toilet)이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15년 백악관에서 최초의 성 중립 화장실이 생긴 뒤로 계속해서 확산하는 추세다.

그러나 성 중립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성 범죄에 대한 우려도 있다.

미국 조지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트랜스젠더 학생에게 여성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허용했다가, 5세 여아를 상대로 한 트랜스젠더 성범죄 사건이 발생했다. 위스콘신주의 고등학교에 설치된 해당 화장실에서도 18세 남학생이 여학생을 성폭행해 성 중립 화장실이 폐쇄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도 성 중립 화장실 설치를 시작하는 단계에 놓여있는 탓에 범죄 취약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녀가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용변을 봐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고, 각종 성범죄에 쉽게 노출되기 쉬운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대학생 이모 씨(24·여)는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해서는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성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클 것 같아 굳이 쓰고 싶지 않고, 옆 칸에 누가 앉을지도 모르는데 무서울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 씨(21·남)도 "남자 화장실이 꽉 차 있을 경우 급할 때 사용하기에는 편할 것 같지만, 선뜻 가기 꺼려진다"며 "혹여나 여학생들에게 오해받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서로 눈치를 보는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성 중립 화장실은 여성이나 누군가의 선택지를 뺏는다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의 선택지가 추가되는 것"이라면서 딸아이를 데려온 아버지가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성 중립 화장실 설치가 논의 단계인 대학에서도 신중히 접근하고 있는 분위기다. 앞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은 트랜스젠더(성전환자) 여성이 입학해 해당 화장실 설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현재까지 이렇다할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이 대학 시설운영과 관계자는 "(성 중립 화장실) 검토하다가 중간에 중단된 상태"라며 "설치가 안 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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