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리먼 사태' 불러왔던 그 가족의 일대기: 연극 리먼 3부작
2008년 9월 12일 금요일, 그리고 이어지는 주말. 드라마 <리먼 브라더스의 마지막 나날>은 미국 4대 투자 은행 중 하나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신고 직전 3일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마치 샘 맨데스 감독의 영화 <1917년>이 두 평범한 일병의 하루로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그린 것처럼 말이다. 2018년, 멘데스 감독은 <1917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극 <리먼 3부작>을 연출했다. 그는 극도의 미니멀리즘으로 최대의 극적 효과를 만들었고, 연극은 2022년 다섯 개의 토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무일푼 이민자에서 거대 금융그룹으로
2008년 금융위기를 연상시키는 제목이지만, 극은 리먼이라는 성의 독일계 유대인 삼 형제, 즉 리먼 브라더스가 미국에 발을 딛는 19세기 중반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맨손으로 시작한 작은 잡화점이 거대 금융그룹으로 탈바꿈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백오십 년에 걸친 광범위한 서사를 끌고 가는 배우는 놀랍게도 단 세 명이다. 이들은 1세대 리먼이라고 할 수 있는 헨리, 에마뉘엘, 마이어 리먼 삼 형제로 시작하여, 그들의 청혼을 거절하는 새침한 아가씨,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아들과 그 아들의 아들, 시끄럽게 우는 갓난아기, 그리고 그들로 인해 삶을 망친 많은 이들까지 극에 등장하는 모든 크고 작은 인물들을 연기한다.
배우들은 리먼 삼 형제가 차곡차곡 부를 불려 가는 모습을 1부 내내 생생하게 재현한다. 재난에 대처하고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드는 모습에 관객은 어느새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1세대 리먼이 모두 죽은 후에도 그들을 연기했던 배우들은 무대 위에 남아 2세대, 3세대 나아가 리먼 브라더스의 경영진들을 연기한다. 이렇듯 세 배우가 연기하는 한 가족의 일대기를 통해 무일푼 이민자들의 삶부터 세계 금융권이 무너지는 시점까지의 여정이 그려지기 때문에 관객은 극 전체를 하나의 긴 호흡으로, 또 보다 직접적으로 경험한다.
리먼 가족은 돈이 되는 아이템이라면 무엇이든 투자한다. '중개'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1세대 리먼은 남부 노예제도에 근간을 둔 면화 사업으로 시작하지만 2세대, 3세대로 내려가며 군수산업까지 손을 뻗친다. 사고팔던 상품은 어느 순간 재화에서 돈 그 자체가 된다. 2세대인 필립 리먼은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물건을 사는데 돈을 쓰지만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쓴다."라고.
남북전쟁, 월스트리트 대폭락으로 시작된 1929년 대공황, 세계대전 등 출렁이는 시대 속에서도 수익의 극대화라는 원칙은 반복된다. 이를 위해 점점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그 위험을 더 큰 위험으로 덮으며 돈을 굴린다.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로 소비를 마케팅하고, 사람들이 (없는) 돈을 써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적극 장려한다.
멈추지 않는 뮤직 박스
에스 데블린이 디자인한 무대는 더 뺄 것이 없을 만큼 미니멀하다. 무대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유리 상자 안에는 긴 회의용 탁자와 서류 상자 등 사무 공간을 연상시키는 간단한 소품 몇 개가 전부다. 무대 바깥을 둘러싼 넓은 타원형의 벽에는 리먼 삼 형제가 건너는 대서양, 뉴욕 스카이라인 등 시공간을 드러내는 이미지가 투사된다. 유리상자는 연극 내내 회전을 거듭하며 극의 리듬과 흐름을 시각적으로 강화시킨다. 마치 뮤직박스가 회전하며 음악이 흘러나오듯 무대 회전과 함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룹의 경영권을 쥔 마지막 리먼인 바비 리먼의 최후에서 무대와 극의 결합은 가장 압도적이다. 85살의 바비는 회의실 탁자 위로 뛰어올라 경쾌한 트위스트를 춘다. 리먼 브라더스의 금융 사업이 확장되며 복잡해져 갈수록 음악 역시 점점 빨라지고, 무대 외벽에 비친 주가 지수 역시 바쁘게 돌아간다.
내릴 수 없는 회전목마에서 지르는 비명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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