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폭로한 사람이 오히려 처벌된다?

임찬종 기자 2023. 3. 2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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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NPC]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모든 것


안녕하세요. 서초동 NPC 임찬종입니다. 요즘 학폭이 한창 이슈가 되고 있죠. 드라마 〈더 글로리〉가 워낙 인기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도 〈더 글로리〉 PD의 학교폭력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고요, 경찰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 때문에 임명 하루 만에 물러나기도 했죠. 유명 운동 유튜버도 음주 운전에 학교폭력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구독자가 100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을 하루아침에 폐쇄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런 학폭 사건을 폭로한 피해자가 오히려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다들 들어보셨죠? 사실 이건 학교 폭력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당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피해자나, 군대 가혹행위 피해자, 심지어 양육비 안 주는 부모들을 고발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문제인데요. 바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느 범위까지는 처벌이 되고 어느 범위부터는 처벌이 안 되고, 이런 기준이 분명히 있을 텐데,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분이 드물죠. 그래서 최대한 분명하고 자세하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무엇이고, 그 기준은 무엇인지, 그리고 문제는 또 무엇인지 설명을 해 드리려고 합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형법 제307조 제1항에 규정돼 있습니다. 형법 제 307조, 명예훼손에 대한 조항인데요, 1항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는 조항입니다.
여기서 "공연(公然)히"라는 말이 좀 어색하실 텐데요, '남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불특정 다수가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사실을 드러내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을 때는 처벌한다는 이야기죠.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명예훼손인가 아닌가

그러면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죠. 아니, 뉴스에서는 맨날 무슨 '재벌 회장이 정치인에게 뇌물을 줬다.', '정치인이 직권을 남용했다.', '유명인이 마약을 했다.' 이런 기사가 매일 같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건 전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는 것 아니냐는 거죠. 뇌물을 줬고, 권한을 남용했고, 마약을 했고, 이게 다 사실인데, 이렇게 사실을 얘기해서 당사자의 명예를 떨어뜨린 거니까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 말이 맞습니다. 언론 기사의 절반 이상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기사를 쓰는 기자들 대부분은 아무런 처벌을 안 받잖아요. 그 이유가 뭘까요?

바로 '위법성 조각 사유'라는 조항이 별도로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를 '부정한다', 무엇인가를 '없앤다', 이런 걸 "조각(阻却)"이라고 합니다. 위법성을 없애주는 조건, 즉 어떤 법 조항을 위반했더라도 위법하지 않다고 보고 처벌하지 않는 조건을 규정한 것이 위법성 조각 사유입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했더라도 이런 위법성 조각 사유, 이런 조건에 해당하면 처벌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러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법성 조각 사유는 무엇이냐? 형법 310조에 규정이 돼있습니다. 형법 제310조(위법성의 조각)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아까 307조 1항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라고 설명을 드렸죠. 그러니까 이 307조 1항에 해당이 돼서, 공개적으로 사실을 적시해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했더라도 '진실일 것', 그리고 '공공의 이익에 대한 것' 이렇게 두 가지 조건이 있으면 사실을 적시해서 명예를 훼손했더라도 처벌을 안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뉴스에서 매일매일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저질러져도 처벌이 안 되는 이유가 설명이 되죠. 최소한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경우, (그리고) 이것이 공공의 이익에 대한 것일 경우에는 처벌을 안 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이 조건 두 가지 중에 '진실' 조건은 비교적 괜찮아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는 비교적 분명하게 구분이 되니까요. 그런데 두 번째 조건,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이 참 애매합니다.


학교폭력 사건을 예로 들어보죠. 얼마 전까지 큰 이슈였던 사건,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아들의 학폭 논란을 누군가 폭로한 행위는 당연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이 안 될 겁니다.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고위공직자의 도덕성을 검증한다는 명확한 공공의 이익에 대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처벌을 안 하는 거죠.
 

'배드 파더스'의 폭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건가 아닌가

그런데 세상에는 이렇게 명확한 경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상대가 유명 유튜버라고 해 보죠. 유명 유튜버도 유명한 사람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사람의 과거 잘못을 폭로하는 것이 과연 분명하게 공공의 이익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상당히 애매한 영역입니다.

더 나아가서 전혀 유명하지도 않고, 어떤 기준으로 봐도 공인은 아닌, 어떤 회사의 간부가 부하 직원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경우를 상정해 보면,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폭로하는 행위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물론 성폭력을 저지른 일은 당연히 나쁜 짓이지만 공인으로 볼 수 없는 사람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폭로하는 행위는 그 폭로가 진실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으로 볼 수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아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되고, 형법 제310조 위법성 조각 사유 조항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자체가 악법이고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거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위법성 조각 사유의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진실을 폭로하려는 사람들을 굉장히 위축시킨다는 거예요. 무엇인가 사실을 폭로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도 내가 폭로하려는 게 공공의 이익에 해당되는지 안 되는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담이 돼서 폭로를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걸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데요. 바로 〈배드 파더스〉라는 사이트입니다. 이 〈배드 파더스〉란 사이트가 뭘 하는 곳이었냐면 법적으로 양육비를 줄 의무가 있는데도 양육비를 안 주고 있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했던 사이트예요. 누가 봐도 비판을 받아 마땅한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서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사이트죠. 그런데 공개적으로 사실을 적시해서 양육비를 안 주고 있는 부모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배드 파더스〉 운영자 구본창 씨라는 분이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가 됐어요.

1심 재판부는 어떻게 판단했느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양육비 지급 안 하는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한 건 형법 307조 1항 위반은 맞지만 "양육비 미지급으로 고통을 받는 부모가 다수 있다는 상황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무죄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2심에서 (유죄를 선고하는) 반전이 있었어요. "(신상) 공개 범위가 과도하고 공공의 이익에 필요한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리는 것이 (2심) '유죄' 판결 사유였어요.

아직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서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지만 이 경우만 봐도 공공의 이익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애매한 것인지 잘 알 수가 있죠. 심지어 1심 재판부랑 2심 재판부도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인데 어떻게 〈배드 파더스〉 운영자가 폭로를 하기 전에 '내가 이제 폭로를 하려는 내용이 공공의 이익에 해당되니 절대 처벌받을 리가 없겠다.'라고 확신을 가질 수가 있겠어요.

이런 점 때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자체가 아예 없는 나라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없고, (따라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으면 민사 손해배상으로 처리를 하죠. 영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원래부터 없었고요, 2010년부터는 아예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도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쪽으로 법을 개정했습니다. UN 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도 지난 2011년 우리나라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고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왜 존재할까

자, 그러면 이렇게 문제가 많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걸까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춰보면 아직까지는 존재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죠. A라는 사람이 동성애자인데 그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있었다고 해 보죠. 그런데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사람이 A라는 사람은 동성애자라고 커뮤니티 게시판에 폭로를 해 버린 겁니다. 이른바 '아웃팅'을 해 버린 겁니다.

자, A라는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건 진실된 사실이죠. 그런데 A가 설사 공적인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A의 성 정체성은 사생활이지 공적인 사안이라고 보기는 어렵잖아요. 그런데 만약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없으면 A의 성 정체성을 폭로해 버리는 이런 행위를 처벌할 수가 없는 거죠. 꼭 성 정체성 문제뿐만이 아니고요, 본인이 알리고 싶지 않은 개인적 사안을 누군가 폭로해 버리는 경우에 대해서라면 전부 해당이 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없는, 예를 들어서 미국 같은 나라는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할까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없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이런 일을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아요. 하지만 민사적으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제도가 있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손해배상을 딱 그 사람이 실제로 손해를 입은 정도만 계산해서 딱 그 정도만 배상을 해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이 있는 나라에서는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에는 피해자가 실제로 받은 손해보다 훨씬 더 큰 액수를 배상하도록 합니다. 이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입니다.

아까 말했던 동성애자 아웃팅 케이스를 예로 들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짓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 민사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 받을 수 있는 돈이 정말 많이 받아도 몇 천만 원 정도일 거예요.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는 나라에서는 실제로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피해가 수천만 원 정도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이면 그 몇 배, 경우에 따라서는 몇십 배를 물어줘야 하기 때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없어도 나쁜 의도를 가진 폭로자에게 충분히 큰 불이익을 줄 수가 있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점을 감안해서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도 지난 2021년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합헌'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겁니다. 물론 재판관 9명 중 '합헌' 의견이 5명이었고 '위헌' 의견이 4명이었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판단이긴 했습니다.

자, 그럼 정리를 해 보죠. 학교폭력 사건, 성폭력 사건, 가혹행위 사건. 이런 사회적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있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걸림돌이 되는 건 분명합니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경우라면 처벌을 안 한다는 조항이 별도로 있긴 하지만 공공의 이익이 뭔지는 판사마다 생각이 다를 정도로 애매한 사안이라 이 조항만 가지고 표현의 자유 위축을 충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등이 없는 우리나라의 민사재판 현실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없을 경우 나쁜 의도를 가지고 다른 사람이 숨기고 싶어 하는 사실을 폭로하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도 지난 2021년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필요하다고, '합헌'이라고 판단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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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종 기자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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