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끈 영국의 두 화가

도광환 2023. 3.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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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영국은 서양 회화에서 변방이었다. 다른 나라의 뛰어난 화가들을 '수입'했다.

대표적인 화가가 독일 출신의 한스 홀바인(1497~1543)과 플랑드르 지역에서 활약하던 안토니 반 다이크(1599~1641)였다. 음악에서는 독일의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을 수입했다. 이들은 영국 왕정에 봉사하며 영국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남겼다.

한스 홀바인(왼쪽부터), 안토니 반 다이크, 프리드리히 헨델 우피치 미술관, 개인, 국립 초상화 박물관 소장

어두웠던 시기를 지난 19세기 초, 영국은 서양 회화사를 주도하는 두 명의 화가를 배출한다.

풍경화를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놓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1775~1851)와 존 컨스터블(1776~1837)이다. 두 사람은 프랑스 화가들을 일깨우며 인상주의 탄생에 자극을 준다.

터너는 영국인들이 가장 마음에 담는 화가다. 2020년 2월 발행된 새 20파운드 지폐에 그의 초상이 들어갔으며,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상도 그를 기려 '터너상'으로 이름 지었다.

BBC가 '가장 위대한 영국인의 그림'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1위를 차지한 작품이 바로 터너의 대표작 '전함 테메레르 호의 마지막 항해'(1838)였다.

'전함 테메레르 호의 마지막 항해' 내셔널 갤러리 소장

이 그림의 감상 포인트는 세 가지다.

터너 특유의 붓질과 색상이다. 삼킬 듯한 붉은 석양의 산란과 먼 하늘의 푸른색, 수면의 하얀 반짝거림의 조화가 황홀하다.

'테메레르 호'다. 증기선에 의해 끌려오는 테메레르 호는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싸우며 '영광의 승리'를 쟁취한 전함이다.

증기선이다. 테메레르 호의 마지막 항해를 이끄는 증기선은 불꽃 같은 시대를 전개한 산업혁명의 상징이다.

과거의 영화(榮華)를 뒤로하고 사라지는 전함의 숙명, 새로운 산업의 도래, 영국인의 '위대한 무대'인 바다, 이 역사를 한 장에 담았다. '정신이 물질이 되는' 미술의 그윽한 힘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바다의 풍경을 많이 그린 터너의 다른 대표작은 한 문학작품을 연상케 한다.

"내 이름은 이슈마엘"(Call me Ishmael). 미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의 '모비 딕'(1851) 첫 문장이다.

오래전에 '아메리칸 북 리뷰'가 '영미문학 속 최고의 첫 문장'을 선정했는데, 이 단순한 문장이 1위를 차지했다.

'모비 딕'은 광대한 자연에 맞선 인간의 서사시다. 그 숨결과 투쟁의 명멸이 경이롭다.

터너의 다른 그림 '눈보라 속의 증기선'(1842)을 감상하면 '모비 딕'의 바다가 떠오른다. 그림에 빠져들수록 거센 바람과 파도에 휩쓸린 배의 위태로움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눈보라 속의 증기선'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 소장

바다를 그리기 위해 증기선에 오른 터너는 눈보라가 몰아치자 자신을 돛대에 묶게 해 4시간 동안 목숨을 걸고 폭풍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을 그렸다.

터너의 모습을 상상하면, 향유고래에 매달려 바다의 심연으로 사라진 소설 속 에이허브 선장이 떠오른다. '모비 딕'의 마지막 문장도 상기된다. "바다라는 광대한 수의는 5천 년 전에 그런 것처럼 쉬지 않고 굽이쳤다."

영화 '모비 딕'의 한 장면

또 한 명의 화가인 존 컨스터블의 대표작을 처음 접할 때는, 자세히 관찰해도 그의 작품이 서양 미술사에서 왜 그리 높은 평가를 받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답은 '익숙함'과 '새로움'의 간격에 있다. 컨스터블의 '건초 마차'(1821)는 쉽게 말하면, 당대에는 '못 보던' 그림이었다.

서양미술사에서 풍경화는 오랫동안 '주변' 혹은 '비주류'였다. 역사화나 초상화가 항상 우위에 서며 보다 가치 있는 그림으로 평가받던 시대가 끈질기게 지속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나 야코브 라위스달처럼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풍경화가 등장했지만 전 유럽에서 환호와 갈채를 받는 건 19세기 초 영국에서였고, 그 시작이 '건초 마차'였다.

'건초 마차' 내셔널 갤러리 소장

나무와 냇물, 구름과 하늘에 깃든 광선과 대기는 눈으로는 친숙한 장면이었지만, 막상 캔버스 위에 재현되자 '신선한 전위(前位)'가 됐다.

실험적 화법의 태동, 컨스터블의 승리, 영국 회화의 발흥이었다.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를 비롯한 당대의 프랑스 화가들은 이 그림으로부터 명징한 감명을 받았다.

컨스터블 풍경화 성공에 대해 시인 최영미는 이렇게 평했다. "중심이 완강한 곳에서 중심을 치는 건 변방이다."

유럽미술의 '변방'이었던 영국은 주제에서 '비주류'였던 풍경화를 성공시키며 단숨에 도약의 날개를 달았다.

새로움이란 전혀 없던 무엇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익숙한 것들을 다르게 보는 노력이다. 수렴해서 도전하는 일, 그게 창조이고 혁신이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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