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만 1.5억명 쓰는 앱, 미중 갈등 불구덩이에 빠지다 [weekly 월드]
CEO 소명도 무위··· 2019년 화웨이 연상
전면 금지는 '표현의 자유' 침해 지적도
"35세 이하 지지 영원히 잃을 것" 전망
“이 앱을 둘러싼 싸움이 미·중 관계를 뒤흔들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미중 대결구도의 강력한 알고리즘에 휘말리다” (파이낸셜타임스(FT))
모바일 앱(App) 하나가 졸지에 미중 간 긴장관계의 태풍 한가운데에 떠밀려 들어왔다. 그저 일개 앱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싸움이 간단하지 않다. 주인공은 중국 바이트댄스가 만든 숏폼 동영상 플랫폼 앱 ‘틱톡(TikTok)’. 2021년 다운로드 10억 건을 넘겼고 미국에서만 월간활성사용자(MAU) 수가 1억5000만명에 이르는 인기 앱으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 앱을 통한 비즈니스도 활발하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회의 눈에는 그저 ‘중국 공산당이 미국을 조종하기 위한 도구’로밖에 안 보인다. 민주당, 공화당 가리지 않고 제재 움직임에 적극적이다. 미국 정부가 2019년 전자제품·통신장비 업체 화웨이를 제재하면서 미중 간 갈등으로 비화하던 모습이 고스란히 오버랩된다. 즉 틱톡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의미다. 외통수에 몰린 셈이다.
지난 23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 저우서우즈 바이트댄스 최고경영자(CEO)가 초조하게 자신의 발언 순서를 기다린 끝에 증인석에 앉았다. 미 상원에서 틱톡을 겨냥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해외 IT 기술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하는 법안이 초당적 지지를 받는 등 회사를 향한 분위기가 험악해진 탓이었다. 저우 CEO는 직접 의회에서 소명하며 상황을 돌파해보려는 의도였지만, 그의 말은 전혀 약발이 받지 않았다.
공화당 소속인 캐시 맥모리스 로저스 외교위원장은 “틱톡은 사람들의 위치와 생물학적 정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비롯해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자료를 수집한다”며 “자유와 인권·혁신이라는 미국의 가치를 포용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직격했다. 민주당 간사인 프랭크 펄론 의원도 “틱톡은 자료 수집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를 판매하는 일도 지속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비호를 받는 일도 이어갈 것”이라고 규탄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어떤 방법으로든 (위협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틱톡을 통해 이용자 개인정보가 중국 정부로 넘어가거나 중국 정부가 이 앱을 이용해 여론 조작을 시도하는 등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근거가 없지는 않다.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CAC)은 틱톡 등 중국 빅테크 업체들의 지분 1%를 주주총회 안건에서 거부권 행사가 가능한 이른바 ‘황금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이 황금주를 지렛대 삼아 영향력을 행사하면 미국이 우려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주장이다. 이에 백악관은 바이트댄스 창업자들에게 틱톡 지분을 미국 자본에 매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미국 국경 너머 다른 나라들도 공유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24일 정부와 공무원의 사이버 보안을 이유로 공무원이 쓰는 스마트폰에서 틱톡을 삭제하도록 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유럽의회가 지난달 업무용 휴대전화에서 틱톡 사용을 금지했고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등도 유사한 정책을 시행했다. 캐나다도 정부에 등록된 모든 기기에 틱톡을 금지했으며, 중국과 국경 분쟁을 겪고 있는 인도는 틱톡은 물론 위챗 등 중국 앱 50여개에 영구 사용금지를 내렸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미국 전역에서 틱톡 사용금지 처분이 나올 것만 같다. 말만큼 쉽지만은 않다. 우선 금지 처분이 미국 수정헌법 1조에 규정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와 상충된다는 지적이 있다. 미 상무부에서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해외 특정 기술을 조사하는 기구 설립을 관장한 존 코스텔로는 로이터통신에 “틱톡 금지는 수정헌법 1조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20년 8월 틱톡 금지와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댄스에 미국 내 사업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행정명령 2건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이 근거로 하는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상 표현의 자유를 위한 '버먼 수정조항'에 의해 정보성 매체 등의 수출입 금지 권한은 제한된다. 틱톡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컬럼비아대 '수정헌법 1조 기사 연구소'의 자밀 재퍼 이사는 "틱톡 금지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와 안보 우려를 그 방법 이외에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매일 수백만 명이 사용하는 미디어 플랫폼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은 디지털 공공영역의 규제범위를 확장하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틱톡을 세대를 정의하는 정체성의 일부로 보는 10~30대 사이 젊은 층의 거센 반발도 피할 수 없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에서 틱톡처럼 인기 있는 소비자 기술을 금지한 전례가 없다”며 “2009년부터 페이스북 사용을 금지했던 중국에서 일어날 일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틱톡은 이용자들의 평균 이용시간이 90분에 달할 정도로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등 경쟁 서비스보다 앞서 있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에도 틱톡 인플루언서들을 중심으로 한 반발 움직임이 전면 금지를 막아낸 전적이 있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내년 대선을 앞둔 민주당의 대표적 지지층으로 꼽힌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틱톡의 완전한 금지는 ‘정치적 자살’이 될 것”이라며 “문자 그대로, 35세 미만의 모든 유권자를 ‘영원히’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법, 인플레이션방지법(IRA) 등 각종 조치를 주도하는 인사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발언이다.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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