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0만명의 학자금 대출 탕감안, 바이든이 날리면?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3. 3. 26.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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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학자금 대출 탕감’ 논란이 뜨겁다. 지난해 8월 바이든 대통령이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을 발표했는데, 6개 주에서 소송을 제기하면서 연방 대법원으로 소송이 이어졌다.
2월27일 미국 워싱턴 DC 대법원 앞에서 학자금 대출 탕감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Photo

“대법원에서 당사자들이 변론까지 마쳤으니 한 걸음 진전된 것 같은데 그래도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불확실한 느낌이에요.” 대학 4년 동안 학자금 6만8000달러(약 9000만원)를 대출받은 린지 클라우센 씨가 CNN에서 한 말이다. 그는 대학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 그는 지난해 8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1만~2만 달러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을 탕감해주는 방안을 발표하자 반가웠다. 그런데 최근 연방 대법원의 변론 소식을 접한 뒤 시름이 깊어졌다. 행정부 측은 변론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상사태를 근거로 학자금 대출 상환 면제 정책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이에 맞서 소송을 제기한 6개 주가 반대 변론에 나섰다. 연방 대법원의 다수를 차지한 보수 판사들은 탕감안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9명 가운데 6명이 ‘보수 판사’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바이든 대통령의 학자금 탕감안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려면 주립대학은 연평균 2만 달러 이상, 사립대학은 6만 달러 이상을 내야 한다. 학교 장학금이나 연방정부 학자금 보조금(FAFSA)을 신청해 지원받지만 턱없이 부족해서 대다수 학생들은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대학·대학원을 졸업할 때쯤이면 수만 달러에 이르는 빚을 떠안는 게 보통이다. 대출금을 갚느라 평생 허덕이는 사람도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공약 이행 차원에서 지난해 8월 획기적인 학자금 대출 탕감안을 발표했다.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탕감안에 따르면, 부모의 연소득이 12만5000달러(약 1억6500만원) 미만일 경우 최대 1만 달러를, 연방 재정 보조를 받는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이나 졸업생은 최대 2만 달러까지 학자금 대출 상환을 면제받는다. 최대 4300만명이 수혜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공화당이 이끄는 네브래스카주 등 6개 주는 코로나19 ‘비상 상황’이 끝났는데도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근거로 탕감안을 내놓았고,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은 채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탕감안을 발표한 것은 ‘월권’이라며 지난해 9월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 지방법원과 항소법원이 지난해 11월 잇따라 주정부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바이든의 탕감안은 출범 초기부터 좌초되었다. 연방 교육부는 항소법원 판결 직전까지 약 2600만명의 신청서를 접수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추가 접수를 중단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접수자 가운데 1600만명에 대해 탕감을 승인했다. 항소법원 결정에 행정부가 항고하면서 소송은 결국 연방 대법원으로 넘어갔고, 올해 2월28일 법원이 양측의 최종 변론을 들었다. 그런데 3시간 정도 변론 과정에서 보수 법관들이 탕감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실상 주정부 측 손을 들어주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사회적 파장이 커졌다.

보수 판사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탕감안이 실시되면 향후 30년간 약 4000억 달러(약 529조원) 재원이 소요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의회 승인도 거치지 않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해 학자금 대출을 신청한 학생과 진학하지 않고 잔디 관리 사업을 위해 대출을 신청한 고교 졸업생의 예를 든 뒤, “탕감안에 따르면 대학 재학생은 탕감 혜택을 받고, 잔디 사업을 하는 고교 졸업생은 탕감 혜택도 못 받고 자기가 내는 세금으로 재학생의 빚을 갚아줘야 할 판”이라면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보수 판사인 브렛 캐버노 대법관도 의회가 거부했음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탕감안을 발표한 데 대해 “문제의 소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행정부 측 변론을 맡은 엘리자베스 프렐로거 법무차관은 문제의 탕감안은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학자금 대출을 ‘면제 혹은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영웅법(Heroes Act)’에 근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미국 의회는 9·11 테러 2년 뒤인 2003년 영웅법을 제정해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 교육장관은 학자금 상환을 면제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명시했다. 이런 규정에 따라 전임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학자금 대출 상환을 잠정 중단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최대 2만 달러까지 상환금 면제 조치를 취한 것이다.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6개 주 가운데 하나인 네브래스카주의 제임스 캠벨 검찰총장은 대법원 변론 과정에서 “학자금 대출 탕감은 ‘영웅법’의 취지를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웅법은 대출금 상환을 잠정적으로 중단해 채무자의 부담을 완화하려는 것이지 상환 자체를 면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 아니라는 논리를 폈다.

대규모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을 발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 Photo

‘정치적으로 잃을 게 없는’ 바이든 대통령

일부에서는 6개 주가 소송을 제기하려면 탕감안 때문에 자신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구체적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소송의 근거가 빈약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법적 소송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도 연방 대법원이 이런 근거로 주정부의 소송을 기각해줄 것을 내심 바라는 분위기다. 보수 대법관들이 행정부의 탕감안과 관련해 아예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았거나 이미 대출금을 갚은 학생들과의 ‘형평성’ 문제, 나아가 의회를 거치지 않은 대통령의 ‘월권’ 문제를 제기한 만큼 절차적 하자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게 승산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보수 판사 가운데 한 사람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이 같은 분위기에 동조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배럿 판사가 진보 판사 3명에게 동조해도 여전히 보수 판사 5명이 버티고 있어서 승리를 장담하긴 어렵다. 늦어도 6월 말에는 대법원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로 탕감 계획이 무산되어도 바이든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잃을 게 없다’는 입장이다. 바이든은 대선후보 시절 학자금 대출 탕감안을 공약으로 내걸어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실제 지난 대선에서 18~29세 유권자들의 투표율은 지난 30년 만에 최대인 27%를 기록했다. 이전에는 대체로 20% 수준이었다. 학자금 탕감을 주창해온 비영리 단체 ‘라이즈(Rise)’의 맥스 루빈 사무국장은 “공화당이 탕감안 실천을 가로막는 데 성공한다면, 바이든은 공화당에 반박할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젊은 유권자들에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가 바이든에게 2024년 대선의 호재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고 내다봤다. 교육부도 대법원 패소 시 이미 학자금 대출 탕감 신청서를 낸 사람들에게 탕감 계획 무산의 배경을 설명할 예정이다. 이들 상당수가 잠재적 투표자임을 감안할 때 대법원 패소가 바이든에게 오히려 정치적 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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