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고발하면 일 안 하고 출근 안 해도 돼…너도 해봐"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곽용희 입력 2023. 3. 26. 07:37 수정 2023. 3. 2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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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신고 제재 없으니 "일단 신고"
피해자 다수는 PTSD
회사도 "괴롭힘 인정해라. 승진하기 싫냐” 압박
제도상 허점이 부실대응 조장
사진=게티이미지

 
"같이 알바하는데 일을 거의 안하는 친구였어요. 항상 폰만 보거나 엎드려서 졸거나… 그런데 사장님이 한번 일어나라고 등을 툭툭 두드렸는데 갑자기 폭력 신고한다면서 경찰을 불렀어요.” (목격자 A씨)

“(동료가) 괴롭힘 당했다고 신고한 걸 알고 위로했는데 '신고하면 일 안 하고 출근도 안 해도 되니까 저한테도 해 보라'고 (했어요).  신고 당한 분은 엄청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는데 (신고인 동료는) 인스타에 남친과 놀러 간 사진 올리고… 신고가 허위로 밝혀지자 퇴사했어요. (목격자 B씨)”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이 허위 갑질 신고를 직접 당하거나 목격한 근로자 1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허위신고 사례 분석연구(2023)'에 담긴 개별 면담 조사의 내용이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가 지난해 7800건을 넘긴 가운데 '허위·과장 신고'도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기사: 근무 중 손톱 깎은 직원 혼냈다가…"1000만원 내놔" 날벼락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서 연구위원은 “허위 신고 피해자 중 다수는 PTSD, 우울증 등을 겪는다”며 직장 내 괴롭힘만큼 허위 신고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도 심각하다고 밝혔다.

 ○"괴롭힘 인정해라. 승진하기 싫냐”...회사도 방조 

사진=게티이미지

거짓 신고 탓에 충격이 큰 '허위신고 피해자'를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은 '회사에 대한 배신감'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126건 중 사측이 적절한 진상 파악 없이 피신고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부당한 처우를 한 사례가 65.4%였다. 남은 34.6%도 대부분 피신고인이 혼자 대응하도록 방관했다는 지적이다.

방관 형태는 다양했다. △기록 자체가 없는 조사 △조사 없이 일방적으로 꾸며진 진술서에 대한 서명 강요 △일방적인 가해자 취급 △취조를 연상케 하는 압박적인 동일 질문 반복 △신고인과 신고 내용도 알려주지 않은 취조 △정식 조사 요청 거절의 사례가 많았다.

허위신고 피해자 C씨는 “조사를 해달라, 조사해서 사실로 나오면 그 때 사과건 뭐건 다 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회사에서는 왜 일을 힘들게 만드냐, 사과 한마디가 뭐 그리 어렵냐고, 다음 차수에 승진하기 싫냐면서 왜 이렇게 비협조적이냐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피신고인을 가해자로 몰아가기 위해 증언 및 증거 인멸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회사가 피신고인을 가해자로 몰고, 이후에는 인사상의 불이익(근평, 승진 배제 등)을 가하는 2차 가해도 적지 않았다.

허위신고 목격자 D씨는 “사장님이 전체 조회 시간에 자꾸 이기적인 사람이 되면 안 된다며, 회사를 위해서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한다면서 (피신고인을) 쳐다보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계속 그러니까 (피신고인이) 더 못 참고 그만뒀어요”라고 증언했다.

경기도 소재 노무법인의 한 대표 노무사는 "모두가 아는 유명 대기업에서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몰린 직원에게 '회사의 조사 절차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어떤 인사상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의 서면에 서명을 강요한 사례도 있었다"며 "직장 내 괴롭힘에서는 사실상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판국"이라고 꼬집었다.

 ○제도 허점이 회사의 '부실 대응' 조장

회사들의 부실 대응은 제도의 허점 탓이란 지적도 있다. 거짓 신고가 밝혀져도 신고인에게 아무런 책임을 지우지 않는 법 규정 탓에, 사건을 빨리 수습하려면 가해자로 몰린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게 간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고자의 거짓말이 확인돼도 외부 압박에 못 이겨 회사가 '외부 면피용 인사 조처'를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허위신고 피해자 E씨는 “조사를 했고 결과 신고가 거짓말이라는 것도 확인이 됐는데도, (신고인이) 다른 데 또 연속으로 신고하니까 갑자기 공문으로 직위 해제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 F씨도 “(조사에 참여한) 변호사조차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했는데도, 회사에서 (피신고인을) 직위 해제하고 징계를 줬다. 알고 봤더니 (신고인이) 기자를 데려왔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허위신고자들은 기본 3번, 최대 7번까지 같은 사건을 두고 신고를 반복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고 자체를 두려워하는 진(眞)피해자와 구분되는 지점이라는 설명이다.

서유정 연구위원은 "사용자 책임에 대한 공감대 형성 없이 법령으로만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고 사법 처벌에 중점을 둔 제도가 됐다"며 "결국 사용자가 진상 파악과 적절한 대응을 하기보다 책임 회피를 우선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미 거짓 갑질 신고에 제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호주는 관련 기관이 사측에 거짓 신고로 충격받은 피신고인을 보호하고 사후 조치를 하도록 권유한다. 아일랜드는 사업장 취업규칙에 거짓 신고인 징계 등의 대응 지침을 두게 하고 있다. 관련 기관 신고는 정신적 피해를 겪었음을 입증해야 접수가 가능하다.

벨기에는 사업장 내부 신고를 먼저 거쳐야 행정기관 신고가 가능하다. 5년 이상의 전문성 갖춘 '방지 조언사' 중심으로 대응하며, 신고된 행위가 객관적 기준 등에 따라 괴롭힘으로 성립하지 않으면 후속 조치를 거절할 권리가 있다.

서 연구위원은 "한국은 거짓 신고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낮다"며 "사후 처벌보다 예방 중심의 문화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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