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혁명가, 그리고 별이 쏟아지는 사막

한겨레 2023. 3. 2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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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김남희의 걷다 보면]김남희의 걷다 보면 남아메리카①
페루·볼리비아 불안한 정세 속
리마→쿠스코→마추픽추까지
우유니에서 사진을 찍고
아타카마에서 별을 보았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야경. 수없이 많은 별이 쏟아질 듯 떠 있는 밤하늘을 망원경으로 관찰했다. 김남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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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로 떠나기로 했던 올해 1월의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이른 아침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는 불안이 묻어 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고. 페루 쿠스코에 사는 은미였다. 지난해 12월 페루의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시작된 정치적 시위로 페루의 상황은 어지러웠다. 은미는 쿠스코 공항이 다시 폐쇄됐고, 볼리비아로 향하는 국경도 열릴 것 같지 않으니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결국 판돈을 한 판에 다 거는 도박꾼처럼 승부해야 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손가락을 빠르게 놀렸다. 육로로 볼리비아로 이동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쿠스코-리마-라파즈’의 항공권 11장을 끊었다. 그 안에 쿠스코 공항이 열리기를 기도하면서.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김남희 여행가가 13년 전에 찍은 풍경. 김남희 제공

네루다·체게바라가 각성한 이곳

인천공항의 출국장에서는 다음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공사 직원이 내 여권을 돌려주며 선언했다. “탑승 못 하십니다.” 비행기가 미국 경유라 이스타(ESTA) 관광비자를 받아놓은 터였다. 여권 번호에 알파벳 엠(M)이 빠졌다는 이유로 이미 승인된 비자가 거부되다니 어이가 없었다. 항공사 직원은 이런 일이 종종 생긴다고 했다. 보통은 30분 정도 후에, 운이 나쁘면 다음 날 발급되니 지금이라도 다시 신청하라며 “다음 손님!”을 불렀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비자 신청서를 작성했다. 피가 마르는 것 같은 시간이 느릿느릿 흐르는 동안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방책을 세워야 했다. 비자가 내일 나온다면 어떡할 것인가. 나의 여행친구들인 ‘방과후산책단’ 단원들 먼저 페루로 들어가 대기하라고 한 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사이 일행은 모두 체크인 완료. 40분쯤 지났을 때 마침내 비자 승인 메일이 왔다.

서른 시간을 날아 리마에 도착했을 때도 쿠스코 공항은 폐쇄 상태였다. 결국 리마 공항에서 숙소와 교통편을 급히 수배해 리마 시내로 들어갔다. 어쨌든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온 터라 다들 조금씩은 들떠 있었다. 남미는 얼마나 아득한 곳인가. 평생에 한 번 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운이다. 우리는 나름 준비된 여행자들이었다. 출발 4개월 전부터 매주 단원들에게 체력 단련 미션과 읽어야 할 책의 목록과 봐야 할 영화의 목록을 내밀었다. 그 모든 미션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마추픽추가 우리를 허락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지난 1월 중순 남미 여행 때의 페루 마추픽추. 김남희 제공

다음 날 아침, 쿠스코 공항이 열렸다. 한 시간을 날아 해발고도 3400m의 쿠스코에 내렸다.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정치적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여전히 아름다웠다. 잉카인들이 쌓은 초석 위에 스페인 침략자들이 건설한 아르마스 광장의 교회들도, 그 너머 언덕 위에 촘촘히 늘어선 벽 낮은 집들도, 긴 머리를 총총 땋아 내리고 무릎까지 오는 플레어스커트에 중절모를 얹은 원주민 여성이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쿠스코까지만 들어갈 수 있어도 좋겠다’는 마음은 리마에 있을 때의 마음이었다. 욕심은 커갔다. 여기까지 왔으니 마추픽추까지 들어가기를! 기차는 그날도 운행 중지 상태였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주문하려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언니, 오늘 6시에 기차 한 대 운행한대요! 지금 바로 기차역으로 가야 해요.” 밥도 못 먹고 우리는 은미가 준비해놓은 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달렸다. 천장과 양옆이 통창으로 된 기차는 마추픽추로 향하는 설렘을 증폭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1월 중순 남미 여행 때 페루 쿠스코 골목에서 만난 원주민들. 김남희 제공

다음 날 아침 가이드와 함께 마추픽추에 올랐다. 네루다와 체게바라가 아메리카인으로서의 자각을 일구어냈다는 곳. 스페인이 파괴하지 못한 유일한 유적으로 남은, 15세기에 지어진 요새 도시. 2437m의 늙은 봉우리에 자리한 마추픽추. 수많은 여행자가 남미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이곳을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을 눈물 흘리게 하는 마추픽추의 힘은 무엇일까. 어쩌면 이곳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잉카의 기술력은 놀라웠다. 인공테라스를 따라 건설된 수로와 거대한 암석을 그대로 이용한 태양의 신전, 돌로 만든 오차 없는 나침반과 해시계. 철기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종잇장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잘라 맞춘 석벽들. 문자가 없어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으니 이 도시의 용도와 건설 방법을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돌 위에 고인 완강한 침묵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읽어내려 애쓰다 보면 그저 경이로움만 커진다. 페루인들의 자부심이 밴 유적을 열심히 설명하던 가이드에게 물었다. “관광으로 먹고사는데 시위가 계속되니 힘들지 않아요?” 그가 단호히 대답했다. “당연히 지장이 크죠. 근데 지금 우리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거예요.” 혜택을 누리며 살아온 리마 쪽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는데, 차별받으며 가난하게 살아온 이들이 세상을 바꿔보자며 목숨을 내걸고 싸우고 있었다. 당연히 사상자도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페루 남부에서 주로 발생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팔도유람 중인 우리는 미안한 마음으로 이들의 승리를 바라며 볼리비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 1월 중순 남미 여행 때의 칠레 아타카마 사막. 김남희 제공

자원부국 볼리비아가 가난한 이유

기후위기로 인한 지구의 변화는 여행을 다닐수록 확인하게 된다. 볼리비아의 소금사막 우유니도 마찬가지였다. 우기인데 비가 오지 않아 우유니의 그림 같은 풍경(흰 사막에 물이 고여 푸른 하늘이 비치는 반영)을 보기 힘들었다. 바싹 마른 흰 소금밭의 우유니도 아름다웠지만, 그보다 인상적인 건 가이드와 차량 기사들의 사진 찍기 열풍이었다. 오래전 처음 왔을 때는 없던 풍경이었다. 어느 해인가 일본인 여행자들이 이렇게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 가이드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단다.

소금사막에서는 그 어떤 행위보다 찍는 일이 우선이었다. 모든 여행자가 모두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좀 우스웠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니 의외로 즐거웠다. 살면서 이런 식으로 사진을 찍는 경험은 다들 처음일 터였다. 원근감을 이용해 공룡에게 쫓기거나 거인에게 밟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출하고, 과자통 안으로 들어왔다 나오며 춤추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등 기발한 방식의 촬영을 재밌게 마쳤다. 기차들의 무덤도, 소금을 캐서 파는 꼴차니 마을의 모습도, 물고기 섬의 모습도 변한 건 없었다. 지구 최대 매장량을 가진 리튬 덕분에 우유니의 어딘가는 파헤쳐지고 있을 텐데, 그런 상상은 하기 힘들 정도로 평화로웠다. 여전히 광활한 아름다움이 그 높고 추운 땅을 장악하고 있을 뿐.

우유니를 벗어나 칠레로 향하던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볼리비아의 슬픈 얼굴을 목격했다. 여권을 들고 들어가려는데 우리 가이드 알레한드로가 부탁했다. “한 명이 돈을 요구할 건데 절대 주지 마세요.” 역시나 예상대로 1인당 몇 달러씩을 요구했고, 내 앞의 외국인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내고 있었다. 부패한 말단 관리가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돈 내요.” 나도 웃으며 답했다. “출국하면서 왜 돈을 내야 해요? 그런 이야기 못 들었는데요?” 그가 다시 느글느글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 다음에 오면 10배 내기 전에는 출국 못 할 줄 알아.” 나는 여권을 돌려받고 웃으며 답했다. “차오(안녕).” 알레한드로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저런 사람 때문에 볼리비아가 가난한 거예요.”

남미 최대의 천연자원을 가지고도 가장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 십수 년의 세월이 흘러 그 사이 삶이 조금은 나아졌을 법도 할텐데, 볼리비아는 변한 것 없이 여전했다. 그 여전함이 서글펐다. 내게도 이번 남미 여행에서 이루고픈 작은 바람이 있었다. 칠레 아타카마의 사막에서 별을 보는 것. 첫 남미 여행에서는 우유니에 쏟아진 폭설로 길이 끊기는 바람에 들어가질 못했다. 날이 좋았던 덕분에 이번에는 아타카마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간 우유니에서 고도 5000m를 넘나드느라 내내 추웠는데 아타카마로 내려오니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아타카마의 중심지는 여행자들이 좋아할 법한 마을이었다. 진흙으로 지은 낮은 집들이 하얗게 늘어서고 열대의 화려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긴장이 풀어지는 풍경이었지만 별을 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야경. 수없이 많은 별이 쏟아질 듯 떠 있는 밤하늘을 망원경으로 관찰했다. 김남희 제공

지난 며칠간 날씨가 나빠 ‘스타게이징 투어’(별 보기 여행)를 하지 못한 탓에 밀린 대기자가 많다고 했다. 일단 낮에는 ‘달의 계곡’ 투어를 신청해서 가이드와 함께 사막을 걸었다.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땅. 높은 고도와 건조한 공기, 거의 생기지 않는 구름에 더해 도시의 무선 간섭도 없어 별을 관측하기에 가장 좋다는 곳. 알마(‘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 집합체’의 줄임말로 칠레 북부에 위치한 전파 망원경들) 같은 초대형 전파망원경이 설치된 땅이었다.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맞으며 ‘달의 계곡’을 거닐었다. 〈스타워즈〉, 〈마션〉, <007 시리즈> 같은 영화들이 촬영된 사막은 지구가 아닌 듯 거칠고 막막한 아름다움이었다. 이우는 저녁 해가 모래 언덕 위에 빛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지구가 품은 신비한 얼굴을 엿보는 기분이었다.

이 아름다움, 내일도 느낄 수 있을까

저녁을 먹고 들어오니 스타게이징 투어가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불빛이 없는 사막에 세워진 몇 대의 망원경 앞에 섰다. 밤이 되자 한결 선득해진 바람이 불어왔다. 이 멀고 먼 지구 반대편의 사막까지 와서 목이 빠져라 고개를 젖히고 별을 올려다보는 시간은 얼마나 시적인가. 새삼 지구는 외로운 행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거대한 우주로 답 없는 신호를 계속 쏘아 보내고 있으니. 드넓고 아득한 공간 너머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지구와 타인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길게 쏘아 올려진 레이저 광선이 가리키는 별을 바라보고 그 별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그 시간, 지구가 품은 무한한 비밀에 조금은 가까워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볼리비아의 사막이 품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도, 아타카마 사막의 광대한 풍경도 그대로 후대에 전해질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지구는 이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황폐해지고 있으니. 오늘의 내가 남은 날 중 가장 젊은 나이듯,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지구도 남은 날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는 지금 여기를 온전히 누리는 것뿐. 최소한의 발자국을 남기려 애쓰면서.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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