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회계부정조사, 로펌에 맡겨야 소송 대응까지 원스톱으로 가능”

노자운 기자 입력 2023. 3. 26. 07:25 수정 2023. 3. 2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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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율촌 회계감사대응팀 인터뷰
법무법인 율촌 회계감사대응팀원들이 23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홍준 변호사, 이민형 전문위원, 이지수 전문위원, 김상신 변호사, 남재현 변호사, 맹주한 변호사, 엄상준 변호사, 박영윤 변호사, 김시내 변호사, 임창주 전문위원, 김기훈 변호사, 임황순 변호사(팀장), 권준호 변호사. /박상훈 기자

세계 경제가 닷컴버블의 충격에서 막 벗어나고 있던 2001년, 미국 경제를 뒤흔든 두 개의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는 9.11 테러로 인한 글로벌 증시 급락, 다른 하나는 이른바 ‘엔론 사태’였다.

미국의 천연가스 기업 엔론은 한때 미·유럽에서 거래되는 에너지의 20%를 담당한 대단한 회사였다. 2000년에는 연 매출액이 1010억달러(130조원)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같은 실적은 회계조작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회사는 순식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외부 감사를 맡았던 미국의 5대 회계법인 아서앤더슨 역시 엔론과 함께 파산해버렸다.

엔론의 분식회계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던 데는 포렌식의 공이 컸다. 당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포렌식 담당 회계사들은 재무제표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엔론이 특수목적법인(SPE)을 세워 부채를 숨기는 등 회계를 조작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회계에서 포렌식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2002년 월드컴 파산 사태, 2000년 AIG 사기 사건에서도 포렌식이 화이트칼라 범죄를 적발해냈다. 포렌식의 기능은 분식회계를 밝히고 범죄자를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회계 데이터 조작 여부 등을 미리 검증해 대규모 회계부정과 기업 파산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9년부터 ‘신 외부감사법’이 도입되며 디지털포렌식(전자 기록을 조사해 데이터의 위조 및 훼손 여부를 분석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필수적 요소가 됐다. 기존 외감법은 외부감사인이 회계감사 과정에서 회계처리 기준의 위반을 발견하면 내부감사에게 통보하는 것만 의무화했지만, 신 외감법은 회계처리 위반 사실을 통보 받은 내부감사가 외부전문가를 선임해 회계부정을 조사하고 경영진에게 시정 조치를 요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부전문가가 회계부정을 보다 철저하게 조사하려면 대표이사 및 임직원이 주고 받은 이메일, 휴대전화 기록까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법무법인 율촌의 회계감사대응팀은 디지털포렌식 조사 및 이로 인한 형사·행정소송, 회계감리 등을 원스톱으로 수행한다. 미국공인회계사 자격을 보유한 검사 출신 임황순 변호사(사법연수원 36기)가 팀장을 맡고 있다. 삼일회계법인과 금융감독원을 거친 임창주 전문위원, 금감원 출신 김태연 변호사(33기),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 출신 김기훈 변호사(34기), 도산 및 회계법인 관련 소송을 주로 해온 김시내 변호사(40기), 회계사 출신 박영윤 변호사(변호사시험 2회), 그 외 한국거래소·경찰 디지털포렌식 분석관·검찰수사관 출신 인력 등 16명의 전문가가 포진했다.

◇ “대표이사 회계부정 발생할 때 제일 어려워…외부감사인 의심 불식 중요”

지난 23일 서울 삼성동 법무법인 율촌 본사에서 임황순 변호사와 임창주 전문위원, 김시내 변호사, 박영윤 변호사를 만났다. 이들은 율촌 회계감사대응팀의 최고 강점을 ‘협업’으로 꼽았다.

임 전문위원은 “포렌식을 하다보면 회계부정조사에서만 끝나지 않고 여기서 소송이나 감리 등의 이슈가 파생될 수 있다”며 “율촌 내에 있는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프로젝트 팀처럼 한꺼번에 투입돼 일해야 하는데, 그게 유연하게 잘 이뤄진다는 것이 우리 회사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율촌 회계감사대응팀의 단합력이 제대로 발휘된 실제 사례도 있다. 중소 법무법인을 선임해 회계부정을 조사하다 포기하고 율촌에 의뢰한 고객사가 있었는데, 이미 2개월이 소요된 뒤였기에 율촌에는 마감 시한까지 3주의 시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3주 안에 포렌식 조사와 기초 자료 검토 및 인터뷰, 보고서 작성까지 모두 마쳐야 했다. 가령 조사 대상자가 8명이라면, 이들의 휴대전화와 PC, 서버를 모두 포렌식해 리뷰하고 대상자들을 인터뷰해서 보고서를 쓴 것이다. 고객사 내부감사에게 1차 검토를 받고 부족한 부분을 다시 조사했다. 결국 3차 포렌식 조사까지 하는 동시에 법률 자문까지 수행했다. 인력이 대거 투입돼 주말도 없이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일했던 것 같다. (임황순 변호사)”

(왼쪽부터) 법무법인 율촌 임황순 변호사, 임창주 전문위원, 김시내 변호사, 박영윤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어떤 케이스가 가장 어려운지 묻자, 임 전문위원은 ‘경영진의 부정이 발생했을 때’라고 답했다. 경영진에 의한 회계부정이 감지되면 외부감사인은 감사의견 거절을 표명한다. 경영권 양도나 자산 처분 등이 적정한 가격에 이뤄지지 않았거나 더 나아가 횡령이나 배임을 저질렀다면, 기업 입장에선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임 전문위원은 “경영진 스스로 부정 행위를 저질렀다면 PC나 휴대전화를 내놓지 않으려고 할텐데 이 경우 우리가 포렌식을 위해 강제로 가져올 방법이 없다”며 “PC를 제출하지 않기 위해 차라리 퇴사를 하겠다는 경영진도 간혹 있지만, 이러면 외부감사인의 의심만 더 살 뿐”이라고 말했다.

◇ “서로 다른 법조인·회계사의 언어…내부서 번역해 시너지 낸다”

율촌 회계감사대응팀은 기업의 회계감사뿐 아니라 외부감사인의 법률 대리를 맡기도 한다. 회계법인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재를 받거나 회사,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경우 구원투수로 나선다.

일례로 한 회계법인이 상장사의 외부감사인으로서 감사를 철저히 해 적정 의견을 냈는데, 이후 대표이사의 횡령 혐의가 드러난 사례가 있었다. 실질적인 사주와 이른바 ‘바지사장’이 공모해 회삿돈을 대여금 형태로 외부에 빼돌렸던 것이다.

김 변호사는 “당시 회계법인은 담보와 지급보증을 철저히 확인했고 공증까지 받아뒀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공증을 받은 날 ‘이 공증을 무효로 한다’는 내용의 이면계약까지 있었다”며 “그런데도 금감원은 회계법인이 감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징계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회계법인은 율촌을 선임해 행정소송을 치렀고, 1심에서 승소할 수 있었다.

여러 배경을 가진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협업하다 보면 어려운 점은 없을까. 율촌 회계감사대응팀은 오히려 장점이 더 많다고 말한다.

“법조인의 언어와 회계사의 언어는 굉장히 다르다. 우리가 회계사의 언어를 재판부에 여과 없이 전달하면, 재판부에선 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우리 팀에는 회계사로서 오랫동안 감사 업무를 한 전문가가 있고 회계사 출신 변호사들도 있다. 그러다보니 회계사들의 언어를 잘 번역해 재판부에 전달하는 일이 원활하게 이뤄진다. (김시내 변호사)”

앞으로 회계부정조사 시장은 대형 법무법인과 이른바 ‘빅4′ 회계법인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경쟁장이 될 전망이다. 박 변호사는 법무법인의 비교우위가 뚜렷하다고 말한다.

박 변호사는 “회계부정조사는 압수수색을 해서 혐의점을 찾아내는 검찰의 업무와 유사해, 그런 훈련이 잘 돼있는 법률 전문가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뿐만 아니라 법무법인에는 회계법인은 채용하기 어려운 금감원 감리 전문가들도 있어 강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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