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길' 걷는 차준환, 세계선수권 은메달로 정점 찍었다(종합)
베이징 동계올림픽 5위·2022 4대륙선수권 우승 이어 '새 역사'
(서울=연합뉴스) 장보인 기자 = 한국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간판' 차준환(고려대)이 또 한 번 새 역사를 썼다.
차준환은 25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96.39점을 획득, 쇼트프로그램에서 받은 99.64점을 더해 총점 296.03점으로 최종 2위에 올랐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작성한 자신의 쇼트프로그램(99.51점)과 프리스케이팅(182.87점), 총점(282.38점)을 이번 대회에서 모두 훌쩍 뛰어넘었다.
한국 남자 싱글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해인(세화여고)이 이번 대회 여자 싱글 2위로 2013년 우승자인 김연아(은퇴) 이후 10년 만에 세계선수권 메달을 따낸 데 이어, 차준환까지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한국 선수들은 세계선수권에서 처음으로 '남녀 동반 입상'까지 이뤄냈다.
특히 차준환은 지난해 이 대회를 치르다 부츠가 망가지면서 기권해야 했는데, 아쉬움을 털고 1년 만에 웃으며 시상대에 올랐다.
차준환은 한국 피겨 남자 싱글에선 이미 수많은 '최초'와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
아역배우로도 활동하다 초등학교 때 피겨에 입문한 그는 주니어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2016-2017시즌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한 시즌에 두 차례 주니어 그랑프리 메달을 획득했고,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역시 최초로 메달(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니어 무대를 밟은 뒤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까지 부상과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남자 싱글에 출전한 선수 중 최연소의 나이로 은반에 섰고, 한국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사상 올림픽 최고 순위인 15위를 차지했다.
기세를 이어 2018-2019시즌 한국 남자 첫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과 동메달 획득에 성공하며 한국 피겨 역사에 다시 한번 굵직한 자취를 남겼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남자 피겨계에서 희망이 된 차준환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과 싸워 왔다.
좋은 날이 있으면 힘든 시기도 있었다.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 데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 훈련에도 제약이 생기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국내에서 홀로 훈련하며 다시 도약을 준비했다.
차준환은 2021 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위를 기록하며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톱10'에 진입했고, 2022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는 한국 남자 싱글 선수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기술뿐 아니라 연기에서도 완성도를 높인 차준환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선 평창 때 자신의 순위를 10계단이나 끌어올리며 역대 한국 남자 싱글 선수 최고 순위(5위)를 경신했다.
차준환은 올 시즌엔 자신의 예술성을 극대화했다.
마이클 잭슨의 댄스곡 메들리에 맞춰 쇼트프로그램을 짰고, 프리스케이팅곡으론 영화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 '노 타임 투 다이'(No Time To Die)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을 택해 알차게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시즌을 치르며 후반부에 배치한 트리플 악셀 콤비네이션, 시퀀스 점프에선 잦은 실수를 범하기도 했으나, 그는 그랑프리 1차, 5차 대회에서 동메달 2개를 획득하며 선전했다.
지난달 4대륙선수권대회에선 아쉽게 4위에 그친 차준환은 심기일전하며 시즌 마지막 국제 대회인 세계선수권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앞서 "세계선수권에서 '피크'(peak·정점)를 찍고 싶다"고 의지를 드러낸 바 있는데, 자신의 다짐대로 이번 대회에서 최고의 연기를 펼치며 올 시즌 '유종의 미'를 거뒀다.
bo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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