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검정 고무신'의 안타까운 비극,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미디어오늘 성상민 문화평론가]
1990년대 만화 잡지를 즐겨 보았던 독자라면, 2000년대 한국 애니메이션을 제법 봤던 시청자였다면, 설사 둘 다 아니더라도 유튜브 등 SNS로 유포되는 각종 유행에 익숙하다면 '검정 고무신'이라는 작품은 결코 낯선 이름이 아닐 것이다. 스토리 작가 도래미(본명 이영일), 그림 작가 이우영이 공동으로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대원씨아이의 만화 잡지 '코믹 챔프'에 연재한 만화는 2020년대 현재까지도 다양한 세대들에게 고른 인지도를 지닌 하나의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과거를 회고하는 성격의 작품이었기에 누구도 쉽게 성패를 장담할 수 없었지만, 한국 문화에서 '복고'가 일정 수준의 인기를 보장하는 하나의 코드가 되기 시작하며 작품은 2000년대 들어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총 네 개의 시즌에 걸쳐 KBS에서 방송된 애니메이션은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큰 요인이 되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을 그린 작품은 과거를 추억하는 작품이자, 하나의 홈 드라마로 정착했다. 그러면서도 마냥 무겁고 어두운 자세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유행하던 명랑만화처럼 코믹한 기운을 함께 버무려내었기에 더욱 폭 넓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 방송이 오래 전에 끝난 이후로도 작중에 등장하는 온갖 대사들이 한동안 인터넷 상에서 유행어처럼 번져나간 것은 '검정 고무신'이 지닌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2023년 3월12일, '검정 고무신'은 작품에 대한 꾸준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작품 외부에서는 하나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작품의 작화를 맡았던 만화가 이우영이 갑작스럽게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질병이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죽음이었다. 무엇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인기 작품을 만든 만화가로 하여금 죽음으로 몰아넣게 한 것인가. 그 뒤에는 어두운 출판 업계의 현실이 있었다.
무엇이 한 명의 만화가를 죽음으로 몰아갔는가
이우영 작가가 2020년에 사실관계를 소명하기 위해 법원에 제출한 작품이자 안타깝게도 마지막 유작이 된 만화에 의하면, 문제의 씨앗이 처음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였다. 애니메이션판 '검정 고무신'의 세 번째 시즌이 절찬리에 방영되던 시기이다. 본래 애니메이션의 스틸컷을 활용한 필름북을 제작하기로 계약을 맺은 형설출판사(현 형설퍼블리싱, 이하 형설)가 이우영 작가를 비롯한 저작권자와 제대로 된 합의도 없이 멋대로 '검정 고무신'의 캐릭터를 활용한 만화책을 출판해버린 것이다. 형설의 대표는 선처를 부탁했고, 그 부탁대로 이우영 작가는 별다른 소송 없이 이를 너그럽게 넘어가 주었다.
그러나 그 인연이 '잘못된 만남'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형설은 이를 계기로 '검정 고무신'을 그린 작가들과 더욱 깊은 만남을 가지길 원했다. 특히 '검정 고무신'을 토대로 좀 더 본격적인 캐릭터 및 콘텐츠 사업을 하기를 바랐다.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검정 고무신'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랐던 작가들은 형설의 계약 제의에 동의했다. 이후 형설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총 5차례에 걸쳐 사업권 설정 계약서를 작성했다.
형설은 2008년에는 한국저작권위원회에 '검정고무신'의 '캐릭터 저작권 지분' 중 36%를 지니고 있다고 등록을 신청하기까지 했다. 본래 '검정 고무신'의 캐릭터 저작권 지분은 작화를 맡은 이우영·이우진 작가가 65%, 도래미 작가가 35%의 지분을 분배받기로 되어 있지만 형설이 두 형제 작가에게 28%, 도래미 작가에게 8%의 지분을 인수하는 형식으로 순식간에 36%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대가의 지급은 없었다. 그저 '사업 활동을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2011년 형설은 도래미 작가의 지분 17%를 추가적으로 인수하면서 본래 '검정 고무신'을 창작한 작가들보다 훨씬 많은 53%의 지분을 보유한 주체로 등극했다. 이우영 작가의 유작에서는 이후 형설이 저작권 지분 과반수를 확보한 것을 이용해 '검정 고무신'의 대표 저작권자처럼 행세했다고 기록했다.
애당초 2007년부터 작성한 사업권 설정 계약서에 큰 문제가 있었다. 형설과의 명확한 계약 종료 기간이 적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물론, 계약 범위는 '검정 고무신' 본편은 물론 그에 파생된 모든 2차적 사업권을 포괄하는 형태로 설정되어 있었다. 계약서의 내용 중에는 손해배상청권을 비롯한 작품 활동 및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에 대한 권리를 형설에 양도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작가가 형설에 계약금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위약금으로 납부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있었다. 작품에 대한 모든 권리를 하나의 출판사이자 콘텐츠 기획·제작사가 무기한으로 활용 가능하며, 계약서 자체가 수정되지 않는 이상 이를 쉽게 되돌릴 수 없는 엄청난 무게를 지닌 계약 조항들이었다.
이우영 작가는 자신의 유작 만화를 통해 뒤늦게 계약서에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형설은 계약서의 수정을 철저히 거부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대표작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업권은 물론, 캐릭터 저작권 과반도 형설이 확보한 상황에서 이후 '검정 고무신'을 활용한 각종 사업에서 이우영 작가를 비롯한 저작권자들은 배제되었다. 물론 형설이 저작권을 100% 양도 받은 것이 아니니 사업으로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지급해야 했지만, 사업 자체를 형설이 철저하게 주도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지급하는 금액이 정확한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이미 형설이 사업 수수료를 명목으로 수익의 일정 금액을 챙겼으며, 출판사에게 철저하게 유리하게 구성된 계약서에 의해 더욱 지급되는 금액은 줄어들었다. 이우영 작가가 2020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 밝힌 내용에 의하면, 이우영 작가와 동생 이우진 작가가 '검정 고무신'의 사업 수익으로 4년간 지급받은 금액은 435만 원에 불과했다.
이우영 작가는 어떻게든 형설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을 바꾸고 싶었지만, 형설은 '계약서'를 무기로 이우영 작가에게 끊임없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우영 작가의 부모가 운영하는 체험농장의 홈페이지에서 '검정 고무신'의 캐릭터를 무단으로 활용하고, 농장 시설에서 '검정 고무신' 애니메이션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고소했다. 이우영 작가가 스토리 작가 및 형설과 협의 없이 '검정 고무신'의 캐릭터를 활용한 작품을 연재했다는 이유로도 고소가 진행되었다.
그 사이에 이우영 작가도 잠자코 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작품을 통해 은연 중으로 자신이 놓인 상황을 보여주었다. 2014년에는 '오마이뉴스'에 '다짜고짜 경제 시리즈-2'라는 부제를 달고 어느덧 직장에 다니는 성인의 모습으로 '검정 고무신'의 주인공을 내세운 '기영씨의 생활고', 그리고 2019년 '레디앙'을 통해 '만화로 보는 공산당 선언'을 연재하며 중견 만화가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직접적으로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낳는 폐해와 대안적인 경제 체제에 대한 모색하자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 당시에는 그저 기성 만화가의 독특한 시도로 느껴졌지만, 지금 다시 돌아보면 자신이 '계약서' 몇 장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음에도 이 모든 고통이 '합법'으로 취급되는 것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었을 것이다.
이후 2020년에는 앞서 언급한 '서울신문' 인터뷰를 시작으로 이우영 작가가 언론 등을 통해서 좀 더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자신이 만화를 그리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한편, 틈틈이 자신이 겪은 피해와 고통을 다양한 네티즌들에게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2022년에는 용인예술과학대학교 웹툰만화과 교수로 임용되어 교육자로서의 삶도 함께 걷는 한편, 올해 1월에는 콘텐츠 전문 기업 '미래를보다'의 고문으로 위촉받아 다양한 활동을 펼치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2023년 3월12일, 결국 이우영 작가는 강화도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경찰은 정황상 타살이나 사고,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을 했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검정 고무신'을 오랜 시간 다양한 방법으로 즐겨왔던 팬들은, 그리고 그의 죽음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하는 만화계나 문화예술계의 사람들은 이우영 작가의 사망이 오랜 시간 고통을 호소했던 저작권 분쟁과 결코 떼어 놓고 볼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계약서를 이유로 작가 자신의 제대로 된 동의 없이 여기저기 사업에 이용되는 모습을 보면서도, 정작 그림 작가 본인은 다시 계약서를 명목으로 자신의 작품을 조금만 활용해도 고소를 당하는 상황이 오랜 시간 반복되었다. 그 과정에서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무력감을 느꼈으리라.
'저작권'만으로 문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가
일세를 풍미했던 만화의 그림 작가가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하자 한국 사회 여기저기가 들썩이고 있다. 한국만화가협회는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이하 디콘지회)를 비롯한 여러 만화가들이 속한 협회, 단체와 공동으로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를 결성하면서 “이우영 작가님의 명예를 지키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삼은 추모 성명을 발표했다. 웹툰협회는 이와 별개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및 한국저작권협회와 협력해서 표준계약서 개정을 요구하는 한편, 표준계약서에는 법적인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저작권법 개정을 국회와 협력하여 추진한다는 계획을 드러냈다.
정부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 문체부는 3월15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문체부가 소관하는 15개 분야, 82종의 표준계약서를 전반적으로 재점검하는 한편 창작자 대상 저작권 교육을 강화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한국저작권위원회의 분쟁조정제도의 이용 활성화를 추진할 계획이라 설명했다. 동시에 2020년 12월, 2022년 11월 각각 발의되어 계류 중에 있는 '문화산업 공정유통 및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을 올해 상반기 중으로 빠르게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해 문화산업의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3월24일에는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등 만화계 관계자와 좌담회를 개최하는 한편, 같은 날부터 '저작권 법률지원센터 TF'를 발족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분명 완전히 손을 놓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며 움직이는 것이 낫다. 그러나 만화계 단체들이나 문체부가 주장하는 대로 '저작권법'을 강화하고, 작가들에게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상담 지원을 강화하는 형식으로 이와 같은 문제가 재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저작권은 1차적으로 실제 작품을 만든 창작자에게 우선적으로 부여되니, 이론상으로는 저작권법이 제대로 설계되어 잘 운영된다면 창작자는 분명 자신의 권리를 외부의 위협에서 지킬 수 있다. 유료 웹툰 플랫폼의 효시 '레진코믹스'의 창업자 한희성이 2013년 데뷔 당시 만 17세였던 청소년 작가에게 웹툰 연재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실제 창작에 관여한 수준이 극도로 낮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을 스토리 담당으로 등재하는 한편 저작권 수익의 15~30%를 분배받는 불합리한 계약을 제시하고, 결국 작가가 2018년에 형사 고소를 진행해 2022년 1심, 그리고 올해 3월 초의 2심에서 모두 작가가 승소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저작권은 분명 1차적으로 작가에게 주어지지만, 이를 토대로 사업에 나설 수 있는 자본을 비롯한 각종 유무형의 자산은 보통 작가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작가 자신이 스스로 독립적인 플랫폼에 연재하거나, 스스로 출판사를 세워 독립출판을 감행하지 않는 한 다수의 창작자는 출판사나 각종 콘텐츠 사업자를 통하여 작품을 연재하고, 다시 파생 사업을 전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형설이 이우영 작가에게 보여준 태도는 너무나도 악질적이지만, 여러 사업적 편의나 관행을 이유로 출판사나 콘텐츠 플랫폼이 저작권과 이에 파생되는 각종 2차적 권리를 일정 기간 양도받는 경우는 그렇게 드물지 않다.
물론 창작자는 자신이 판단기에 부당해 보이는 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출판사나 플랫폼을 상대로 자신의 저작권이 완벽하게 존중되는 계약서를 요구할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저작권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풀리는 문제도, 정부나 각종 단체에서 저작권 관련 대응을 지원해준다고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창작자와 출판사/플랫폼 사업 자본 사이의 권리가 결코 동등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해당 계약서를 거부하는 순간 데뷔는 물론 향후의 활동이 너무나도 불투명하게 된다면 얼마나 자신의 앞에 놓인 계약서를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설사 명백하게 창작자 자신에게 불리한 조항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 그랬던 것처럼 '활동 이력을 만들기 위해서' 등등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결코 온당하지 않은 계약서에 묵묵하게 사인을 하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물론 이후에도 창작자는 부당한 계약에 대해 고소를 하여 법원을 통해서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속담처럼, 실제 소송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다. 아무리 여러 공적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무척이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함께 요구한다. 작품을 이미 제작하고 있는 작가에게는 작품을 제작할 시간과 당장의 생계에 쫓겨, 설사 작품 활동을 소송을 위해 잠시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소송에 반드시 이긴다는 장담을 할 수 없다.
게다가 저작권 계약은 공적인 문서가 아니라 '사적인 계약'의 하나이며, 계약이 체결되는 순간 그 내용의 정당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반적으로는 '계약의 당사자들이 계약의 내용에 명백하게 동의하고 맺은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계약을 체결한 뒤 이를 뒤집기 위해서는 철저히 법적으로 이 계약이 창작자 자신의 의사에 반하고 체결된 거이라거나, 명백한 부정이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아니면 '신체포기각서'가 법적인 효력을 잃는 것처럼, 다른 법에 의거하여 계약 자체가 법적으로 부당함을 호소할 수 밖에는 없다. 그러나 저작권을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일정 기간 소유하는 것 자체는 한국은 비롯해 해외 국가 다수에서 인정되는 종류의 계약이다. 일각에서는 해당 조항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법 개정이 통과되기에는 결코 쉽지 않다.
이번 이우영 작가의 사망에 큰 원인이 되었을 '검정 고무신'의 저작권 양도 계약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이우영 작가와 동생 이우진 작가는 오랜 시간 자신들이 작성한 계약서가 너무나도 불공평함을 호소했지만, 형설은 물론 '검정 고무신'의 또 다른 창작자인 스토리 작가 도래미 역시 이우영 작가의 사후에도 조선일보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고인이 형설과의) 계약 당시에도 모든 조건에 동의해 놓고는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바뀐 것 같다”며 오히려 이우영 작가가 계약을 일방적으로 위반했다는 입장을 내세우는 상황이다. 물론 형설과 도래미 작가의 주장과 달리 명백히 이우영 작가가 계약을 완강히 거부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우영 작가의 생전에도 물론, 사후에도 이 계약의 법적인 부당함을 지적하는 것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은 마당이다.
앞서 언급한 레진코믹스 전 창업자 한희성에 대한 재판 역시 마찬가지이다. 첫 재판 결과가 나오기 까지 5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그 사이 부당하게 저작권의 일부를 빼앗긴 작가는 거대 로펌 소속 변호사로 무장한 피고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이겨나가야 했다. 작가가 자신의 데뷔작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한 기록을 최대한 빠짐없이 제출하고, 피고는 자신이 스토리 창작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명확하게 제출하지 못했기에 겨우 승소할 수 있었다. 만약 작가가 창작에 관련한 기록을 제대로 제출하지 못했다면, 이 재판의 승소는 결코 쉽게 장담할 수 없었으리라.
'저작권'을 넘어, 근본적인 관계의 전환이 필요하다
'저작권법'의 강화는 분명 일정하게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문제의 재발 방지로 이어진다고 말하기에는 쉽지 않다. 오히려 저작권법만 계속 강화된다면, 자본은 어떻게든 법과 제도의 틈새를 찾아내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의 법을 더욱 창작자에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마치 2006년 제정된 비정규직보호법이 이름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더욱 법의 권리 보장에서 비껴선 불안정 노동자를 대거 양산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저작권'에 대한 논의를 넘어, 상시적인 창작자와 창작 노동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출판사나 웹툰 플랫폼 등을 비롯한 각종 콘텐츠 자본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계약서를 고안하고 이를 요구할 수 있는 배경에는 창작자가 문화예술 산업 내부에서 놓인 위치가 무척이나 불안정하다는 것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만약 창작자가 확고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이런 도의적이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창작자가 제대로 뭉쳐 함께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분명 법적으로는 성립할 수 있어도 결코 온당치 않은 계약이 손쉽게 체결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번 비극의 핵심이 저작권이 아닌 창작자가 처한 위치의 문제, '창작 노동'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는 입장도 나온 상황이다. 웹툰 영역의 두 노동조합인 '웹툰작가노동조합'과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자지회'(디콘지회)가 속한 문화예술 산업의 여러 노동조합과 노동단체가 모인 문화예술노동연대에서는 “창작노동자의 권리보다 사업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저작권법으로 살아생전 고통을 겪은 故 이우영 작가님의 명복을 빈다”고 추모의 뜻을 남기는 한편, “당신의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누린 삶의 풍요는 당신이 밤과 낮을 쏟아부은 예술노동의 결실임을 기억하겠다”고 해당 문제의 원인이 창작자가 공들여 창작 노동을 수행해도 제대로 된 가치와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 구조에 있음을 지적했다.
이미 몇몇 창작자들은 본격적으로 투쟁을 펼칠 기반을 만들기 위해, 정기적인 노사 단체교섭 구도를 정착시키려 노력하는 영화 등 몇몇 문화예술 산업계 종사자의 성취를 다양한 분야로 넓히기 위해 '작가노조'라는 이름으로 창작자를 위한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아직 조합원으로 가입한 창작자의 수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번 이우영 작가의 안타까움 죽음을 비롯해 문화예술 산업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여러 창작자로 하여금 본격적의 투쟁의 필요성을 고민하게끔 만들고 있다. 필자 역시도 최근 '작가노조'의 조합원 제의를 받고 활동을 함께할 것을 결정했다. 좀 더 많은 창작자들이 자신이 지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식할 수 있길 바란다. 함께 손을 맞잡고 싸우며, 함께 발걸음을 내딛으며 움직일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런 움직임이 동반되어야지만, 비로소 비극은 재발하지 않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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