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위스키가 비쌀까 [명욱의 술 인문학]

2023. 3. 25. 19: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늘 해외에 나가면 면세점에서 한 병씩 사 들고 들어온 술이 있다. 갈색의 영롱한 빛깔을 자랑하며 보틀에는 큼지막한 숫자가 적혀 있는 술, 바로 ‘위스키’다. 단순히 재료뿐만이 아닌 가공 및 증류, 그리고 위스키 원액을 숙성하는 오크통과 마지막에 병입하는 방식까지도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게 만들어 놓은 것이 ‘스카치위스키’다. 폭탄주로 즐기는 위스키에서 음미하는 위스키 문화가 정착해 가는 현상이다.
가격에 세금이 붙는 현 주류 세금 제도인 종가세의 영향으로 위스키류, 전통 증류식 소주 등에는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반면 판매 수량 또는 도수에 세금을 붙이는 종량세로 바꾸면 이들의 가격은 훨씬 접근하기 쉬운 가격대가 될 것이다. 사진은 영국 스코틀랜드 싱글몰트위스키 브랜드 ‘발베니’ 제품들.
문제는 국내 위스키 가격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금 문제로 귀결된다. 제품가에 관세(20%)가 일단 붙고 관세가 부과된 상황에서 72%의 주세가 가산된다. 여기에 주세의 30%를 교육세로 내며 합산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내다 보니 20만원 상당의 제품을 공항을 통해 들어오면 추가로 31만원 이상을 더 내야 한다. 총 지불 비용이 51만원이 넘어가는 상황. 제품가보다 더 높은 금액을 세금으로 지불하는 셈이다. 물론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매장 등에서 원산지 증명 인보이스를 제출할 수 있다면 관세는 제외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110% 이상은 세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 세금을 많이 내는 이유는 한국이 위스키에 종가세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 종가세란 가격에 주세가 붙는 구조로 고부가가치 제품에는 세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부과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위스키 가격을 낮출 수 있을까? 바로 가격에 세금을 붙이는 것이 아닌 알코올 도수 등에 부과하는 종량세로 진행하면 된다. 가까운 일본은 같은 20만원 상당의 위스키로 적용하면 관세 200원(1L당 알코올 도수 40도)에 주세로 겨우 4000원을 지불한다. 결과적으로 부가가치세 10%를 적용한다고 해도 총 가격이 22만4000원가량으로 한국보다 최대 30만원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이렇게 세금 구조가 종가세로 바뀐 이유는 물가가 급격하게 상승함에 따른 것이다. 종량세로 적용하게 되면 양에 세금이 붙다 보니 물가가 오르면 매년 물가 상승률에 맞춰 세금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69년도부터 이러한 종가세를 전면적으로 적용했다. 문제는 이렇게 종가세로 적용함에 따라 좋은 우리 농산물로 술을 빚는 일도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가치소비에 소비자가 주목하며 전통주 산업이 지역의 쌀 소비 및 농가 소득 촉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원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과세되는 금액이 커지다 보니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여전히 진입에 망설이고 있는 기업이 많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종량세로 간단히 바꾸지 못하는 배경도 있다. 지금의 위스키를 비롯한 증류주를 종량세로 바꾸게 되면 일반 소주의 가격이 올라간다는 것. 이것 역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방법은 있다. 지금의 일반적인 소주는 현재 주세제도를 적용하되, 안동소주·화요·마한오크 등 전통 증류식 소주 및 위스키류만 종량세로 적용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가 훨씬 접근하기 쉬운 가격대가 될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이다.

근현대 한국의 술문화는 싸고 많이 마시는 문화가 팽배했다. 이로 인한 폐해도 많았던 것은 사실. 종류가 단순하고 맛과 향을 즐기는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민들의 의식 문제가 아닌 세금 제도로 인해 이렇게 저렴한 것밖에 만들 수 없었던 현실이었다. 싸게 많이 만들어 과음으로 이어지는 시대는 끝났다. 천천히 음미하는 시대로 바뀌는 술 문화. 그리고 그 중심에는 주세제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연세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교육 원장,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