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호주 아발론 에어쇼에 '블랙이글스'가 떴다

김경희 기자 2023. 3. 2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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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 짜리 프로젝트…블랙이글스가 남반구로 처음 날아온 이유


"꺄아악..." 지난 5일,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호주 아발론 에어쇼 중앙무대 앞에서 두 명의 여성이 기뻐하며 손을 맞잡고 뛰었습니다. 조금 전 끝난 한국 공군 제53 특수비행전대 블랙이글스 사인회에 가장 마지막으로 입장한 이들이었습니다. 엘로이즈 (32세)와 캣(33세)이라고 이름을 밝힌 이들에게 뭐가 그리 기쁜 지 물었습니다. "한국 블랙이글스팀이 가장 박진감 있고, 예술적인 에어쇼를 보여줬다. 참가팀 가운데 최고였다. 조종사들도 멋지다. 그래서 쇼가 끝나고 사인회까지 찾아왔다."

앞서 많은 사람들이 땡볕에서 1시간 이상 기다려가며 블랙이글스팀의 사인을 받았고, 조종사들이 사인회를 마치고 걸어 나갈 때도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며 엄지를 들어 올렸습니다.

한국여성기자협회의 '인도 태평양 안보 협력' 현장 취재의 일환으로 호주 아발론 에어쇼에 참석했습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마지막 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었지만 우리 블랙이글스팀에 대한 현지인들의 평가는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종사들과 간담회 장소로 이동할 때는 함께 박수와 환호를 받았고, 조종사들과 헤어진 뒤에도 우리가 나누는 한국말을 알아듣고 기자단을 불러 세워 한국팀이 최고라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세계 유일의 8기 편대와 고난도 프로그램…블랙이글스의 경쟁력

영화 <탑건- 매버릭>의 주제 음악으로 시작한 블랙이글스의 에어쇼는 초반부터 관람객을 사로잡았습니다. 8대의 항공기가
굉음과 함께 푸른 하늘을 무대 삼아 날아오르더니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 정도로 아찔한 비행이 이어졌고 (윙 팁의 간격이 불과 1미터!) 주제에 따라 바뀌는 화려한 음악에 흥이 가득한 내레이션까지 어우러지면서 관람객들 사이에서 "멋지다"는 찬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영준 블랙이글스 전대장은 자국산 초음속 전투기 8대로 특수 비행팀을 운용하는 것은 우리 블랙이글스가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다고 강조하고 (미국 특수비행팀 블루앤젤스와 선더버드는 6대), 조종사들의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서도 최고난도 수준을 선보이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관람객들이 블랙이글스의 에어쇼를 가장 박력 있고,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칭찬했던 이유가 있었네요. 블랙이글스팀은 처음 참가한 2023 아발론 에어쇼에서 종합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종합 최우수상을 받은 뒤 환호하는 블랙이글스 (사진=공군 제공)
기자단에 설명하는 서영준 전대장

블랙이글스팀이 호주 멜버른 인근의 아발론으로 오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고 합니다. 타이완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모두 10곳에서 중간 급유를 하면서 적도를 넘어 호주까지 날아올 수 있었는데요, 정비팀도 매일 항공기 상태를 점검하며 함께 움직였다네요. 원주에서 호주 아발론까지 날아오는데 1주일, 사전 준비와 실제 에어쇼에 2주일, 다시 돌아가는데 1주일, 이렇게 특수비행팀과 정비팀이 움직이는데 총 50억 원의 예산이 책정됐다는 설명에 입이 벌어졌습니다.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 파견이 결정된다고 서영준 전대장은 말했습니다. 우리의 국방력 과시가 필요할 때, 즉 무기 도입 검토 단계 등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줘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블랙이글스가 출격한다는 겁니다. 블랙이글스의 에어쇼 참가는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 대회 출전과는 좀 다르다는 얘기죠.

블랙이글스가 적도를 넘어 날아온 이유


에어쇼와 함께 열리는 방위산업박람회장을 둘러보니, 블랙이글스가 출격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블랙이글스가 채택한 T-50B를 바탕으로 한 한국형 경공격기 FA-50은 물론, 한국형 전투기 KF-21이 함께 전시되고 있었고, 호주 차세대 장갑차 선정 사업에서 독일 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의 레드백 (Redback) 장갑차가 전시장 밖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미 아발론 공항 인근 질롱(Geelong)시에서는 오는 2024년 완공을 목표로 한화의 K-9 자주포 생산 기지가 건설 중이었는데, 한화 디펜스 측은 국내 방산업체의 첫 해외 생산 기지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또 호주 차세대 장갑차로 레드백이 선정된다면, 질롱 공장에서 K-9 자주포와 함께 생산될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건설 중인 질롱의 한화 공장은 벌써 한국과 호주 양국 방산 협력의 가장 좋은 사례로 꼽힌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말했습니다. 한국은 1조 원 규모의 K-9 자주포를 수출하게 되고, 호주는 기술 이전이나 부품 수출 등으로 인해 한화가 투자를 약속한 수천 억 원보다 몇 배의 부가가치를 거둘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4월 공장 기공식에 당시 모리슨 총리가 참석했을 정도입니다. 호주 전략정책연구소 (ASPI)의 알렉스 브리스토 박사(국장 대행)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호주는 주권 보호를 위해 국내 방위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한국과의 방산 협력 확대를 기대했습니다. 한국은 호주와 방위 산업 체계가 유사하면서도 무기 제조에 특화돼 있고, 공급망 다각화 면에서도 장점이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호주, 역대급 국방 예산 곧 발표…한-호 방산 협력 얼마나 확대될까

한국과 호주는 지난 2021년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로 격상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말 우리 정부가 발표한 '인도 태평양 전략'에 대해 호주 정부는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 역내 안정을 위한 양국 간 전략적 협력 확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호주 앨버니지 정부는 이르면 다음 달, 지난 6개월 간 준비한 <국방전략보고서>를 공개하면서 국방력 강화를 선언하고, 곧이어 이를 위한 역대급 국방 예산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최대 23조 원 규모의 호주 차세대 장갑차 사업에서 한화 레드백이 선정되느냐 마느냐를 떠나, 호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방비가 집행되는 시기에 한국과 호주의 방산 협력이 어떻게, 얼마나 확대될지는 단순히 경제적 시각이 아닌 안보 전략적 측면에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김경희 기자ky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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