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 넘기니 달리기 슬럼프, 얼마나 ‘하찮은 오만’이었나

한겨레 2023. 3. 2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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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운동]#오늘하루운동 _ 달리기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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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삶의 축소판인 것 같아요. 깜깜한 산 속을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은 앞에 어떤 일이 닥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두려움 속에서 나 하나만 믿고 나아가는 거예요. 인생도 달리기처럼 두렵고 힘든 상황이 닥치면 내 힘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되는 거예요. 그냥 달려보면 그런 용기가 생겨요.”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에서 ‘달리기’로 검색해 찾은 논문, ‘현상학적 조사를 이용한 영성 체험의 효과 분석: 달리기 경험을 중심으로’(이보미, 2016)에 등장하는 익명의 인물 ‘에이치(H)’의 이야기다. 이보미 연구자는 심층면접 기법을 활용해 시각장애 러너들과 함께 달리는 동반 주자 모임인 ‘해피레그’ 회원 10명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를 통해 달리기가 단순히 신체적 건강을 더 낫게 만드는 ‘효능’뿐 아니라 삶의 의미, 스스로의 가치관, 다른 존재와 연결된 느낌, 스스로를 뛰어 넘는 초월적 경험, 깊은 자각과 같은 영적으로 참된 삶에 기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내맘대로 달리기의 소중함

연구에 참여한 ‘해피레그’ 회원 10명의 이야기 하나 하나가 어쩜 그렇게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지, 지면에서 모두 소개할 수는 없으니 꼭 한 번 논문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하다면 말이다. 우리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온 몸을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달리기에 몸을 던진다. 달리기란 그저 더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한 ‘효능’을 찾는 운동이 아니라,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삶의 기술’이다.

마라톤을 완주하거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험준한 지형을 달려 이동하겠다는 ‘대단한 달리기’를 하는 대신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어떻게든 뛰어 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행한 지 어느덧 4년째. 수많은 ‘처음’으로 점철됐던 시간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일단락된 듯하다.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다 없어지던 시기, 자세가 잡히지 않아 발바닥의 불편한 위치에 굳은살이 생기던 시기, 다리가 아니라 몸통에 힘이 부족해 달리고 나면 복근과 배근이 아팠던 시기, 살이 조금 빠지면서 몸의 근육이 재배치된다고 느껴지던 시기, 머리통을 울리는 폭우 속에서 뛰거나 영하 15도의 칼바람을 뚫고 뛰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깨달은 시기, 코로나19로 스스로 가둔 좁은 방 안에서도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시기를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달리기는 계속해서 새로운 방법과 깨달음을 안겨 주었고, 깨달음은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갓난 아기의 양육자가 되면서 삶의 우선 순위가 바뀌자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처음’의 순간들이 달리기 경험에 덧붙여지고 있다.

사실 매일 하는 명상과 달리기를 통해 1000이라는 숫자를 쌓으면 조금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1000일째를 넘기면서 나는 숫자를 세는 것에서 더는 의미를 찾지 못했다. 갓 태어난 아이의 신체리듬에 최대한 맞춰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매일 하던 1시간 달리기도 멈추면서 ‘달리기 슬럼프’에 빠졌다고도 느꼈다.

하지만 달리기가 알려준 삶의 기술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면, ‘달리기’에 무려 ‘슬럼프’라는 단어를 결부시킨 건 하찮은 오만이었던 것 같다. 매일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한줌도 되지 않는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하루가 1년에 며칠이나 될까. 뛸 때마다 힘든 달리기를 하는 잠깐이 하루 중 그나마 내 마음대로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시간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에스엔에스(SNS) 계정을 가지고 있는 지금, 심지어 어떤 이들은 에스엔에스에서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브랜드처럼 운영하기를 권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피드를 편집한 세상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대혼돈의 멀티버스’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달리기가 알려주는 역설적인 삶의 기술은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는 말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매일의 대부분, 더 나아가 인생의 대부분이 스스로의 ‘통제’ 범위 밖에 있는 우리가 스스로를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가? 폭우를 맞으며 달리면 머리통이 울리고, 눈보라 속을 뛰면 당장 손과 발이 떨어질 것처럼 힘들다고 느끼는, 하지만 몸이 달궈지면서 땀을 흘린 뒤에는 금세 덥다고 느끼다가 땀이 식으면 추위에 떠는 우리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그저 연약하고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지 않나?

최대산소섭취량 수치 이면의 것

매일 달리고 일과 중 잠깐 시간을 내어 명상을 거듭할수록 스스로 하찮음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자존감을 깎아 내리거나 스스로 가치를 낮춰 본다는 게 아니라 마치 온 우주의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범신론을 믿기라도 하는 듯 우리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변화는 일어난다. 꾸준히 달리는 동안 내 몸의 최대산소섭취량은 비약적으로 늘었고, 이에 곁들여 명상 중에는 심박변이도와 체온이 높아진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만은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매일 몸을 움직여 달리고 가만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 보니 사실 그렇지도 않다는 것조차 깨닫고 말았다. 그럼에도 뭐 하나 만만하고 쉬운 게 없는 삶은 여전히 어렵다.

그렇다면 과연 달리기의 효능은 무엇일까. 굳이 따져보자면, 달리기의 효능은 이 모든 게 나와 우리의 일부라는 걸 깨닫게 해준 것일 테다. 분명 체념이나 포기와는 거리가 멀다. 외려 모든 것이 점점 더 빨라지는 지금의 세상이 즉각적인 변화와 결과에 반응하라고 우리를 채근하지만,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게 달리기의 효능 같다. 매일 달려도 매일 힘든 것처럼, 답답한 내 삶이나 세상은 오늘도 내일도 답답하고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잠깐이라도 몸을 움직여 달려보거나 잠시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주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인생은 힘든 것이니까. 어쩌면 잠시나마 나를 붙잡고 움직일 수 있는 달리기 혹은 명상만이 그것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박재용 프리랜스 통번역가·큐레이터

서울을 중심으로 현대미술과 영화계에서 주로 일한다. 인스타그램 @one_day_one_run에 명상과 달리기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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