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한테 눈도 부라리지 마세요”…‘1세대 개통령’ 치과의사 박창진[복수자들]

이지훈기자 2023. 3. 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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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이면서 동물행동교정치료사로 활동 중인 박창진 씨.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 명을 넘어선 시대. 어떤 이들에게 동물은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말 못하는 동물의 행동들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유튜브에는 ‘개가 짖는 이유’ ‘고양이가 좋아하는 영상’ 같은 영상이 많이 올라옵니다. TV엔 ‘개통령’이라 불리는 훈련사가 나와 동물의 행동을 분석하고 교정해주는 콘텐츠가 범람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도 ‘1세대 개통령’이 있었습니다. 강형욱 씨처럼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던 분이었죠. 근데 훈련사는 아닙니다. 수의사나 동물행동학자도 아닙니다. 23년째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치과의사 박창진 원장(53)입니다.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간 거쳤던 수많은 직함이 쏟아집니다. ‘한국반려동물 봉사단 대표’ ‘동물행동연구 협회원’ ‘동물보조치료협회 대표’ ‘사람과 동물의 올바른 유대관계를 생각하는 모임인 한국 HAB협회 대표’…. 본업 치과의사보다 반려동물에 진심이었던 그는 “멋진 풍채의 독일산 세퍼트건 족보를 알 수 없는 동네 바둑이건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훈련만 거치면 모든 개는 ‘개 이상의 개’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병원에서 반려견 행동 교정 전문가 그리고 28년째 치과의사로 살고 있는 ‘복수자’ 박창진 원장을 만났습니다. ‘원조 개통령’이 알려주는 ‘개 이상의 개’로 키울 수 있는 강아지 훈련법(https://youtu.be/b6Oq_oWve-M)과 평생 치과 안 가도 되는 치아 관리법(https://youtu.be/rl-AWnIeKlg)을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1세대 개통령’을 불렸던 박창진 씨의 모습.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그가 치과의사가 된 건 1995년, 반려견 행동 교정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00년대 초였습니다. 수의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훈련사 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지만 애견인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시절 그는 언제나 개와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치와와부터 세퍼트, 진돗개, 요즘말로 ‘시고르 자브종’이라 불리는 잡종견도요.

―자연스럽게 개와 가까워지신 거군요.

“어렸을 때부터 집에 항상 개가 있었어요. 지금도 키우고요. 아버지께서 동물을 되게 좋아하셨죠.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기도 하고 다른집 개한테 물려보기도 했어요. 개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두루 했어요.”

―개를 키우는 걸 넘어서 ‘행동 교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02년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개최됐어요. 국제 행사가 열리면서 개를 키우는 문화도 바뀌기 시작했죠. 보신탕 문화는 지하로 숨었고 마당에서 키우던 개를 실내로 들여오는 문화가 생겼어요. 반려견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다보니 갈등과 분열도 많았죠. (개를 키울)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를 집에 들였다, 도저히 못 키우겠다며 버리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때 유기견이 대폭 늘었습니다.”

―신구(新舊) 문화가 섞였던 혼돈의 시기였네요

“한쪽에선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다른 쪽에선 ‘먹는 개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서로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상황이 안타까웠죠. 전 어려서부터 개를 키워봤잖아요. 집에서 개를 키우면 정말 좋거든요. 개나 고양이를 안고 있으면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병이 치유되는 효과도 있어요. 개와 사람들 모두 행복하고 화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그 무렵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개, 고양이 같은 동물을 활용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질병을 치유하는 효과를 얻는 방법을 ‘동물 보조 치료’라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동물 보조 치료’를 시작하게 됩니다. ‘동물 보조 치료’는 개,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이 진정되고 편안해지는 것을 이용해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개와고양이가 의사 역할을 하는 거군요.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일반 골든 리트리버가 맹인 안내견이 되려면 오랫동안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요. 근데 전 트레이닝(training·훈련)보다 에듀케이션(education·교육)을 하자고 이야기했어요. 훈련과 교육은 접근부터 다르거든요.”

―훈련과 교육,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훈련은 같은 행동을 반복을 통해 연습시키는 거예요. 교육은 개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행동을 결정하게 만드는 거죠. 특정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선 심리를 알아야 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심리’ ‘동물행동학’을 더욱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는 개의 행동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인간의 심리에 관한 연구서적을 탐독했다고 합니다. ‘스키너의 상자’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1904~1990)부터 비강압적 훈련방법을 고안해낸 동물행동학자 카렌 프라이어까지. 그는 “개와 인간은 똑같지 않지만 같은 포유류고 뇌에는 전두엽이 있다”며 “사람으로 치면 3~4살 정도의 지능이 있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3~4살짜리 어린 아이를 다루듯 개를 대해야 하나요.

“어린 아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요. 개도 마찬가지예요. 때리는 건 물론이고 눈을 부라리는 것도 안돼요. 폭력, 강압으로 개를 훈련하면 일시적으로 말을 들을 순 있어요. 근데 그건 개가 상황을 모면하려고 주인 눈치를 보는 거예요. 교문 앞에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선생님과 선생님을 피해서 나쁜 짓을 하려는 학생 같이 되는 거죠.”

―감시자와 피감시자의 관계가 되는 거군요.

“맞아요. 그런 훈련을 지속하면 주인과 개 사이에 유대가 전혀 형성되지 않아요. 주인을 좋아하고 존경해서 말을 잘 듣게 해야 하잖아요. 게다가 말 못하는 동물이잖아요.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 정도로 노력하지 않는 거예요.”

강압적 훈련 방식은 개와 주인 간의 유대 관계를 해칠 뿐 아니라 감시자-피감시자의 관계로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는 일부 훈련사들이 행하는 바디 블로킹(강아지 앞을 가로막는 훈련법)이나 목줄 잡아당기기 같은 ‘강제적 훈련법’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개가 나쁜 행동을 했을 때는 ‘무반응’으로 대응하고 나쁜 행동을 멈추면 보상을 해주는 긍정적 강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개가 나쁜 행동을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기다려야죠.(웃음) 참교육엔 인내가 필요합니다. 자식 교육도 그렇잖아요. 강압적 훈련은 반드시 한계에 봉착합니다. 채찍질하는 감시자(주인)가 없으면 부정적 행동이 다시 나와 버려요. 개가 나쁜 행동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확실하고 일관성 있는 보상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하루에 5분도 좋고 10분도 좋아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고 (키우는 동물을) 관찰해보세요. 쟤는 왜 저기 가서 짖을까, 마루를 빙글빙글 도는 이유는 뭘까. 동물 입장에서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거죠. 참을성 있는 관찰이 교육의 출발입니다.”

그는 본업인 치과의사로 일할 때도 ‘관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환자의 구강 내부가 아니라 환자의 행동이나 생활습관을 관찰하는 겁니다.

―정신의학과도 아닌데 환자의 행동이나 생활습관을 관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걸 알아야 왜 충치가 생기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웃음) 우리가 보통 의료인을 영어로 표현하면 헬스 케어 프로페셔널(health care professional)이라고 해요. 헬스, 즉 건강을 케어하는 전문가라는 뜻이죠. 고장 난 치아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치과치료 없이도 건치를 유지할 수 있게 관리해주는 역할입니다. 지금의 의료 시스템에선 치료하는 의사만 돈을 벌 수 있어요.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사에게도 보상이 갈 수 있게 바뀔 필요가 있죠.”

박창진 원장은 개의 심리를 분석하고 행동을 교정했던 것처럼 어린이들이라면 으레 갖는 ‘치과 공포증’ ‘병원 공포증’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관찰해왔다고 합니다. 어린 환자들은 병원, 특히 치과에 가는 걸 무서워합니다. 트라우마가 이어져서 어른이 된 후에도 치과만은 가기 싫다며 충치를 묵혀두는 사람도 종종 있습니다. 그는 “치과공포증은 다름 아닌 부모에게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만연한 ‘치과공포증’ ‘병원공포증’은 부모에게서 시작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치과공포증이 부모에게서 시작했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부모님이 아이들 교육시킬 때 이렇게들 말씀하시잖아요. ‘너 이렇게 이빨 안 닦으면 치과 선생님이 이빨 다 뽑아버린다!’ ‘젤리나 초콜릿 같은 거 자주 먹으면 나중에 치과가서 주사 맞는다!’ 이런 말들이요.(웃음) 치과의사라는 존재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가상의 공포를 심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치과 소리만 나오면 아이들은 온갖 상상을 펼치는 거죠. 거기서부터 공포가 시작돼요. 자녀들이 치과 치료를 잘 받기 원한다면 선입견을 심어주지 않으심 돼요. 다른 병원도 마찬가지고요.”

―환부만 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 자체를 들여다보시네요.

“사람이 병에 걸리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요. 평소 어떤 약을 먹는지, 생활 습관은 어떤지. 이런 게 중요하단 말이에요. 병 이전에 인간을 먼저 알아야 제대로 된 치료를 하고 예방을 도울 수 있어요. 의사는 환자에게 어떤 느낌을 줘야 하냐면, ‘이 사람이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구나’ ‘이 사람은 내가 건강하도록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구나’ 같은 마음이 들게 해야 해요. 그래야 의사가 아니라 의사 ‘선생님’으로 불릴 수 있지 않겠어요.”

―치과가 아니라 정신의학과를 갔어도 잘 맞으셨을 것 같아요.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치과예요. 어렸을 때부터 뭔가 만들어서 형체가 나오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정신의학과는 형체가 없는데 치과에는 형체가 있잖아요. 공작(工作) 같은 작업이 적성에 맞아요. 예전에 건축 인테리어 회사를 잠깐 운영하기도 했어요. 지금 운영 중인 병원도 직접 지은 거예요.”

복수자 박창진 씨의 모습.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희열을 느끼는 편인가요.

“건축이나 인테리어는 짧으면 한 달, 길면 6개월 정도면 눈앞에 뭐가 짠하고 나와요. 치아 교정은 훨씬 길어요. 수년 간 치료하고 관리해야 결과가 나오죠. 칫솔질로 건강해지는 건 그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려요. 사람을 붙들고 2, 3년을 가르쳐야 하거든요. 그래선지 단기간에 무언가 만들어지는 것도 해보고 싶었나 봐요.”

치과의사로 살면서 건축, 인테리어 사업에 동물 행동 교정 치료까지…. 다방면에 활약하며 진정한 복수자로 살고 있는 그에게 인생관을 물었습니다.

“인생은 도화지 위에 점을 찍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점을 찍다보면 언젠가 그 점들이 선으로 연결될 수 있고, 점에 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 색으로 번져서 전체 영역이 넓어질 수 있죠. 그러다 보면 흰 도화지가 검은색으로 바뀔 수 있어요. 빈 도화지에 점을 찍어나가는 게 여태껏 제가 살아온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복수자들

영화 ‘올드보이’ 속 오대수가 15년 간 군만두만 먹으며 칼을 갈았던 복수? 아닙니다. ‘킬빌’의 블랙맘바가 자신을 죽이려 한 보스를 처단하는 복수? 그것도 아닙니다. ‘복수자들’은 복수(複數)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한 가지 일만 하고 살기엔 지루하다고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다고요? 본캐와 부캐, 양쪽을 오가는 복수자들이 직접 도전과 병행의 노하우를 전해드립니다.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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