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원-KBL-허재’ 무책임의 극치가 만든 최악의 ‘캐롯 사태’
인수비·가입비 모두 미납하고 선수단 월급도 밀려
(시사저널=김종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올 시즌 프로농구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팀은 단연 고양 캐롯 점퍼스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을 모기업으로 하는 데이원자산운용의 자회사 데이원스포츠가 지난해 5월 기존 팀 고양 오리온을 인수해 새로이 창단한 구단이다. 데이원은 국내 최초 디지털 손해보험회사인 캐롯손해보험을 네이밍 스폰서로 유치해 현재의 팀명으로 프로리그에 참여하게 됐다.
허재 전 국가대표 감독을 대표로 내세우면서 더욱 많은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더해 김승기 전 안양 KGC 감독이 사령탑을 맡고, FA를 통해 국내 최고 슈터로 꼽히는 전성현을 데려왔다. 3억원가량 들여 성대한 창단식까지 치렀다. 시작 단계부터 화려하게 눈길을 끌었다.
그럼에도 당시 캐롯의 행보에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도 적지 않았다. 프로농구판에 들어올 때부터 여러 가지 뒷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구단들과 달리 모기업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네이밍 스폰서를 유치해 운영비를 조달하겠다는 계획은 신선하긴 했지만 안정성 측면에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게 사실이었다.
구단을 운영할 수 있는 자금 조달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따라붙었고 실제로 KBL(한국프로농구) 측으로부터 이 부분 계획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신규 가입 승인이 유보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허재 대표는 "새로이 창단되는 팀이니만큼 이런저런 우려의 시선이 많은 듯싶은데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양시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구단이 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심상찮은 조짐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전 구단인 오리온에 인수 비용을 완납하지 않은 것을 비롯해 KBL 가입비 격인 특별회비 잔여분 10억원이 밀려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선수단과 구단 직원들도 제때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 같은 문제는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진행 중이다.
가뜩이나 침체된 프로농구에 찬물 끼얹어
그런 상황에서도 캐롯 선수단은 투지를 잃지 않았고 신생 구단답지 않은 좋은 경기력으로 어필했다. 전성현은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KBL 간판 슈터 계보를 이어가는 스타로 떠올랐으며, 이정현 또한 꾸준한 성장세를 통해 차세대 에이스로 기대감을 키워가고 있다. 팀 성적도 시즌 초엔 선두권 다툼을 펼칠 정도로 좋았다. 3월24일 현재 26승25패(승률 0.510)로 이미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상태다.
여기서 문제가 다시 한번 크게 터졌다. 미납금 납입 지연이 계속되자 KBL은 3월말까지 잔여분 10억원을 내지 못하면 플레이오프 자격을 박탈하기로 결정했다. 성적을 내고도 돈 때문에 플레이오프를 뛰지 못하는 사상 최악의 촌극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선수단 및 구단 직원들은 물론 협력업체들에까지 지불할 돈이 수개월씩 밀려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며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팬들의 시선도 싸늘하다. 가뜩이나 프로농구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캐롯 사태가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책임감 없이 프로에 뛰어든 데이원을 비롯해 이를 승인해준 KBL을 향한 성토의 목소리가 높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에 서있는 허재 대표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캐롯손해보험과 체결했던 네이밍 스폰서십 계약 또한 종료됐다. 캐롯이 4년짜리 스폰서십 계약을 한 배경에는 광고 효과를 기대한 이유가 컸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부정적인 이슈가 쏟아져 나오고, 그로 인해 회사 이미지까지 나빠지는 역효과가 발생하자 거듭 해약을 요청했고 결국 데이원에서도 이에 응했다. 시즌 중 구단명이 바뀌는 프로농구 사상 전례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캐롯과의 스폰서십이 종료된 데이원은 새로운 모기업을 찾아 농구단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이다. 새로운 계약이 체결되면 해당 모기업과 관련된 팀 명칭으로 리그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그때까지는 '고양 데이원 점퍼스'라는 팀 명칭으로 활동할 예정인데, KBL 측에서는 현재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이와 관련된 공식 절차를 밟지 않았고 이사회 승인도 없었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스폰서십이 종료되고 자체적으로 팀 명칭도 바뀌었지만 대외적으로는 계속 캐롯으로 소개되고 있는 기괴한 상황이 벌이지고 있다. 그만큼 현재 상황에 대해 체계적으로 일처리가 진행되고 있지 않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7위 팀이 어부지리로 PO 진출하는 해프닝 벌어질 수도
박노하 데이원스포츠 경영총괄 대표가 운영권 매각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획기적인 변수가 없다면 지금의 사태들이 원만하게 해결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전 구단 오리온에 미납금이 밀려 있는 가운데, KBL에 내야 할 가입비 완납 기한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구단 운영비 및 밀린 선수단 월급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매입에 관심이 있는 회사가 나타나더라도 이러한 부분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피해자는 선수단이다. 선수들은 구단을 믿고 열심히 뛴 죄밖에 없다. 제때 월급을 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시즌 내내 분전했고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확실한 성과까지 냈다. 하지만 현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플레이오프 무대를 강제로 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캐롯의 자격이 박탈될 경우 7위 팀이 어부지리로 플레이오프에 대신 나가게 되는지라 해당 팀 또한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이래저래 프로농구 인기에 찬물을 끼얹는 분위기가 될 공산이 크다.
다소 상황은 다르지만, 지금의 캐롯 사태를 보면서 과거 코리안텐더(현 KT 소닉붐) 구단을 떠올리는 농구인도 적지 않다. 광주 나산 플라망스로 1997년 원년부터 프로리그에 참가해 골드뱅크, 코리안텐더 등으로 구단명이 바뀌는 와중에 이런저런 경제적 어려움으로 많은 고생을 한 대표적 팀이기 때문이다. 사우나에서 삶은 계란으로 간식을 때우고 덩치 큰 선수들이 모텔방에서 한꺼번에 몰려 자는 등 KT로 모기업이 바뀌기 전까지 가난한 팀의 대명사로 불렸다.
'헝그리 군단'으로 불리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2002~03 시즌 4강 신화를 이뤄냈던 이상윤 전 코리안텐더 감독은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지금 캐롯 사태가 솔직히 남의 일 같지 않다. 선수단이 농구 외적인 문제로 마음고생을 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니만큼 직접 닥치게 되면 심적으로 많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 당시 코리안텐더는 그 와중에도 월급은 밀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만들어서 줬고 그런 부분이 고마워서라도 선수들이 더 열심히 뛰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부분에서 지금 캐롯은 당시 우리들보다 더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캐롯 선수단이 기운을 잃지 않고 힘을 내기를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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