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술취한 아저씨 탓에 아빠가 떠났어요”…음주운전 피해자 구제할 법안은?
“현행법 처벌수위도 충분치 않아…해외 선진제도 많이 도입해야”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음주운전자들의 재범을 막는 방법은 확실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것이다." (음주운전 피해 유족인 세실리아 윌리엄스)
지난 2021년 4월, 미국의 한 여성 세실리아 윌리엄스는 하루아침에 아들과 아들의 약혼자, 손자를 잃었다. 이유는 음주운전자가 낸 사고(음주수치 0.192) 때문이었다. 사고가 발생한지 2년이 되어가지만 남겨진 가족들의 상처는 여전하다. 윌리엄스 내외는 남겨진 다른 손자 벤틀리와 메이슨을 어렵게 키워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른 사람들이 음주운전으로 고통 받지 않도록 "음주운전자를 확실히 처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내왔다. 결국 윌리엄스는 미국에서 음주운전자들이 피해 가족 미성년자 아이들의 양육비를 지불하도록 강제하는 '벤틀리법'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음주운전 사고는 찰나의 순간으로 피해 가족들에게 평생의 고통을 줄 수 있는 재앙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은 그대로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3년간 발생한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총 4만7849건에 달한다. 특히 이 중 788명은 사망했다.
특히 음주운전 사고로 피해 유족 중 아이들만 남겨지는 비극도 비일비재하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교통사고 유자녀 및 보호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한 가장이 아버지인 경우가 89.2%, 어머니인 경우가 8.9%, 부모 모두 사망한 경우는 1.9%였다. 이때 유자녀가 만3세 미만인 경우가 24.2%, 만3~7세 미만인 경우가 35.7%, 만7세 이상인 경우는 40.1%로 나타났다.
보험회사가 유족들에게 지급한 위자료는 평균 8037만원이며 33.4개월 내에 전액 소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금액을 모두 소비할 경우 아이들의 양육 부담을 질 사람은 오롯이 편부모가 지게 된다. 특히 부모가 모두 사망할 경우 아이들은 경제권도 없이 홀로 남겨지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위의 사례를 계기로 나온 '벤틀리법'이 테네시주 등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현행법상 음주운전 사망사고 발생 시 피해자 유자녀를 지원하는 법률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제30조 제2항에 따른 지원 정책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피해자 가족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자 또는 차상위 계층인 경우에만 지원하는 것으로 대상이 한정된다.
"음주운전자도 양육비 책임…유자녀 경제권 보호해야"
이에 일각에선 한국도 미국처럼 피해자 유자녀들을 확실히 지원하는 법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회에서도 이런 목소리를 반영해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송기헌 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음주운전 사망사고 발생 시 피해자 자녀의 양육비를 가해자가 책임지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개정안은 가해자가 현행 '도로교통법 제44조'를 위반해 음주운전으로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 양육비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채무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실형을 선고받아 인신 구속으로 인해 지급이 어려운 경우는 형 집행종료 6개월 이내에 양육비 납부를 시작하도록 규정했다.
송 의원은 24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법안의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송 의원은 "우리나라는 여전히 '보험사가 알아서 한다'는 인식이 만연해 음주운전자의 금전적 배상에 대한 우려가 적다"며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범위를 확대해 피해자 유자녀의 경제권을 두텁게 보호하고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송 의원의 일문일답.
'한국형 벤틀리법'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한국형 벤틀리법'은 제가 대표 발의한 세 번째 음주 관련 법안이다. 앞서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의 운전면허 취득 영구 제한법'과 '음주운전 재범자 차량시동 제한장치 의무설치법'도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들은 미국 등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제가 영미법을 공부할 당시 우리나라 형법이 음주운전을 비롯한 아동성범죄 등 각종 범죄에 대해 미약하게 처벌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해외 선진제도 입법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음주운전 사고는 여전히 사회적 문제다. 시민들의 경각심을 강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가 법조인으로서 목격한 음주운전 사고 가해자가 느끼는 두려움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형사처벌이고 두 번째가 손해배상이다. 가해자가 위안을 삼는 부분은 본인이 가입된 보험사로부터 나오는 보상, 즉 위자료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보험사가 알아서 한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이는 금전적 배상에 대한 우려가 줄어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만약 보험사 위자료와 별개로 향후 피해자 자녀의 양육비까지 지급하는 책임이 더해진다면 결코 음주운전을 가볍게 여길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법이 음주운전 사고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유자녀가 1명이던 3명이던, 어리고 살아갈 날이 많은데도 위자료는 1억원에 불과하다. 이것이 피해자 유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처우이자 불공평한 현실이다. 현행법상 양육비 부담은 양육의무가 있는 부모에게만 인정된다. 따라서 제3자에게 양육비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개정안은 양육비 채무자의 범위를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인 제3자까지 확대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어도 유족의 무거운 짐을 덜어드리는 법이 될 것이다."
음주운전자의 생계 형편상 양육비 지급이 어려운 경우는 어떻게 하냐는 질문도 있는데.
"양육비는 법률상 채권입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 지급명령 신청, 담보제공명령 신청, 이행명령 신청을 거쳐 음주운전 가해자의 재산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하는 방법으로 꾸준히 추심하여 양육비를 받아낼 수 있다. 그 외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국회 심사 과정에서 충실히 보완해 원안의 취지와 같이 법제화되도록 성실히 입법에 매진할 것이다."
시민들의 경각심 강화를 위해 음주운전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론된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현행법의 처벌수위가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형법상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경우 최저 형량의 시작은 3년이다. 반면 미국의 음주운전 사망사고 형량의 경우 테네시주가 최저 8년부터 시작한다. 또 뉴저지·로드아일랜드·아칸소·미시시피주 등은 최저 5년부터 최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또는 99년형 사이를 구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시작점인 '한국형 벤틀리법' 도입으로 '선의의 처벌'을 통해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도 한층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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