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도장은 찍었지만, 계속 만나는 ‘현실 이혼부부’

한겨레 2023. 3. 2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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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의 OTT 충전소][박상혁의 OTT 충전소] 디즈니+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
디즈니플러스 제공

친한 방송작가가 최근 이혼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혼하고도 남편과 계속 ‘동거’ 중이다. 이유가 놀랍다. 최근 끝 모르게 추락하는 전셋값 때문이다. 작가가 들려준 자초지종은 이렇다. “헤어졌으니 집을 빼야 할 거 아니냐. 그런데 집주인이 전셋값이 우리가 들어올 때인 1년 전보다 훨씬 떨어졌다고 지금과 같은 금액의 세입자를 구해놓고 나가라는 거야. 지금 시세로 세입자를 들이진 않겠다는 거지. 집주인 마음도 이해하는데, 누가 시세보다 높은 금액을 주고 들어오겠냐고.” 그래서 돌려받을 돈이 남은 두 사람은 이혼했지만, 함께 살고 있다.

이혼했다는 게 알려진 뒤 다시 남자들이 데이트 신청을 해온단다. 작가님의 ‘우스갯 소리’에 따르면 이혼을 했더니 온라인 쇼핑몰에 재입고 알림(?)이 뜬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같이 살다 보니 서로에게 부탁할 일도 많고, 아직은 상대가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까지 쿨하게 넘기기는 쉽지 않다. 이혼한 부부가 <환승연애>(전 연인들이 다시 모여 한 집에서 머물면서 서로의 감정 변화를 엿보는 예능프로그램)를 찍고 있는 느낌이다. 과연 이 두 사람은 남은 계약기간 동안 잘 지내고 각자의 전세금까지 깔끔하게 회수할 수 있을까?

서울이 아닌 뉴욕에도 이혼했지만 한 게 아닌 부부가 있다. 의사 토비와 공연홍보사 대표 레이철. 이 둘은 14년간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아이 때문에 서로 계속 연락을 해야 한다. 남이지만 남은 아닌 사이. 미국 케이블텔레비전 <에프엑스>(FX)에서 제작해 우리나라에서는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이다.

혼자 외롭게 지내는 토비에게 친구들은 데이팅 앱을 추천한다. 로그인하는 순간 놀랍고 경이로운 싱글라이프가 시작된다. 결혼 생활 중에는 항상 자존감이 낮았는데, ‘돌싱 의사’는 데이팅 앱에서 인기 폭발이다. 하루하루가 즐겁다. 하지만 육아 문제로 레이철과 통화만 하고 나면 이 기분이 사라진다. 이 여자와 헤어지기로 한 것은 수백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요가를 하러 간다던 레이철이 갑자기 사라진다. 전화도 받지 않고 아이들을 데려가지도 않는다. 어디서 뭘 하는 걸까?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다시 화려한 독신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드라마는 졸지에 독박육아를 담당하게 된 토비의 현재와 행복했던 연애 시절, 불행한 결혼 생활을 교차시킨다. 이들의 결혼 생활을 보면 둘은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부분이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극복하기 어려운 걸림돌이 된다. 인생 목적도 다르고 세상 보는 눈도 다르다. 그렇게 ‘이과 남자’ 토비는 결혼 생활을 미분해서 들여다보고 그 시간을 적분해서 고민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결혼이 무엇인지, 꽤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화려한 편집과 독특한 구성 또한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한다. 과거 예능프로그램 <남녀 탐구생활>처럼 담담한 여자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 여자가 누군지는 나중에 보면 알게 된다. 드라마 속 현재의 뉴욕은 항상 뒤집힌 모습에서 시작한다. 뭔가 잘못된 토비의 오늘을 상징하는 것 같다. 동명 소설이 원작이고 토비는 영화 <나우 유 씨미>의 제시 아이젠버그, 레이철은 영화 <로미오+줄리엣>의 클레어 데인스가 연기한다.

모든 인간관계를 이익과 손해로 보는 요즘 시대에 결혼이란 참 무모해 보인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지금 당신을 좋아한다고 해도 수십 년 뒤에도 좋아할지 어떻게 알겠나!” 취향도 변하고, 취미도 변한다. 외모도 변하고 식성도 변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사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이들은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가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 이혼 부부의 삶이 우리에게도 너무나 현실적인 이유다.

요즘 <2억9천>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신혼부부 결혼 비용이 주거비를 포함하면 평균 2억9천만원이라고 한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이 상금 2억9천만원을 목표로 도전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사랑이 없냐고 믿는 사람들. 정말 그런지 지켜볼 생각이다.

씨제이이엔엠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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