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과학용어] 양자기술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두 키워드 ‘중첩’과 ‘얽힘’
윤석열 대통령이 육성 의지를 발표하면서 최근 언론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과학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양자’입니다. 양자컴퓨팅, 양자센서, 양자통신, 양자역학 등 양자가 들어간 여러 단어가 매일 같이 빠지지 않고 뉴스에 등장합니다. 워낙 자주 접하다보니 익숙하게 느끼지만 정작 ‘그래서 양자가 뭔데?’라고 물었을 때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겁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양자 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도 “양자 역학을 이해하려는데 머리가 어지럽지 않다면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다”라고 했으니까요. 그도 그럴 게 양자 역학이 설명하는 세계는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크게 벗어납니다. 어떤 물체를 관측하기 전까지 그 물체는 두 가지 이상의 상태로 존재하며 관측하는 순간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상태는 붕괴한다는 게 양자 역학의 기본 전제입니다.
쉽게 말하면 ‘어떤 물체를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그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양자 역학이 성립할 수 없다며 “아무도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며 비아냥댔죠. 보어와 아인슈타인은 양자 역학이 맞나 틀리나를 두고 1927년부터 계속 충돌했습니다. 그들이 사망한 이후에는 다른 학자들이 그 논쟁을 이어갔죠.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첫 ‘양자 논쟁’ 이후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습니다. 미국, 중국, 영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들이 양자 역학을 활용해 만든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몇 조원씩 예산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보어와 양자 역학이 아인슈타인을 이긴 셈이죠.
한국도 양자 기술 키우기에 적극적입니다. 이달 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양자과학기술 플래그쉽 프로젝트’를 기획해 예타를 신청했습니다. 내년부터 2031년까지 8년간 9960억원을 투자해 양자 기술을 키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직접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세계적 양자 석학들을 불러모아 과외를 받기도 했습니다.
과학을 넘어 미래 산업의 유력한 먹거리가 된 양자를 이해하려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양자 역학을 활용한 기술로는 어떤 것들이 나오고 있을까요. 문한섭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와 함께 알아봤습니다.
◇동시에 여러 상태로 존재하는 ‘양자 중첩’
양자 역학에 따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입니다. 모든 물질이 파동이라는 현상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지닌다는 것인데요.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중첩’입니다. 물질 하나에 여러 상태가 겹쳐있다는 것이죠. 바꿔 말하면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여러 개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양자 역학의 기본 원리인 ‘양자 중첩’입니다.
한 물질의 중첩 상태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게 아닙니다. 그 물질의 상태를 외부에서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중첩 상태는 깨지죠. 물질 상태를 측정하기 전에는 동시에 여러 상태로 존재하지만 측정하는 순간 한 가지 상태로 고정되면서 다른 상태들은 붕괴해 없어집니다.
이를 가장 잘 설명한 비유가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실험입니다. 상자 안에 살아있는 고양이, 방사선을 감지하는 계수기, 망치, 그리고 독이 든 병이 있습니다. 계수기가 공기중에 있는 방사선을 감지하면 이와 연결된 망치가 작동하면서 병을 깨뜨립니다. 그러면 병에서 독이 나오면서 고양이가 죽게 되죠.
이 모든 상황이 밀폐된 상자 안에서 벌어진다는 게 핵심입니다. 상자를 열어보기 전에는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는 거죠. 즉 상자 속 고양이 상태를 측정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가 중첩돼있습니다. 생사를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고양이는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는 겁니다.
오스트리아 물리학자인 에르빈 슈뢰딩거는 사실 양자 역학을 비판하기 위해 고양이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본인 의도와는 무관하게 지금은 양자 중첩이란 현상을 그 무엇보다 정확하고 쉽게 비유한 설명이 돼버렸지만요.
◇하나가 결정되는 순간 다른 것도 결정되는 ‘양자 얽힘’
양자 중첩 상태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대표적 현상이 양자 얽힘입니다. 아주 멀리 떨어진 두 양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현상을 양자 얽힘이라 합니다. 영향을 주고 받는 속도가 빛보다 빠르기 때문에 양자 하나의 상태가 관측으로 확인되면 그와 동시에 다른 양자의 상태도 결정됩니다. 말 그대로 두 양자가 거리와 상관 없이 얽혀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한국과 영국에 각각 상자가 하나씩 있습니다. 두 상자들 중 하나에만 고양이가 들어있습니다. 한국에서 상자 뚜껑을 연다고 합시다. 그 안에 고양이가 있다는 게 확인되면 그 순간 영국에 있는 상자는 ‘고양이가 없다’는 상태인 게 결정됩니다. 반대로 고양이가 없다면 동시에 영국에 있는 상자는 ‘고양이가 있다’는 상태로 확정됩니다.
핵심은 한국이나 영국 둘 중 한 곳에 있는 상자만 관측하면 된다는 점입니다. 상자끼리 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자 하나의 상태만 확인하면 사실상 동시에, 빛보다 빠르게 다른 상자의 상태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양자 중첩과 얽힘을 모두 활용한 ‘양자 컴퓨터’
앞에서 설명한 양자 역학 원리가 종합적으로 들어간 기술이 ‘양자 컴퓨터’입니다. 기존 컴퓨터는 전기가 통하면 1, 통하지 않으면 0으로 표기하는 2진법 구조의 ‘비트’로 구성돼있습니다. 반면 양자 컴퓨터는 0과 1의 상태가 중첩돼있는 ‘큐비트(qubit)’로 이뤄져있죠.
비트로 구성된 컴퓨터와 큐비트로 이뤄진 양자 컴퓨터의 가장 큰 차이는 ‘병렬 계산’이 가능한지 여부입니다. ‘f(x)=0(단, x는 1이상 100이하)’라는 함수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비트로 구성된 기존 컴퓨터는 x에 1부터 100까지 숫자를 하나씩 넣으면서 답을 찾습니다. 이와 달리 큐비트로 이뤄진 양자 컴퓨터는 100개 숫자를 한꺼번에 집어넣어 동시다발적으로 계산해 답을 뽑아냅니다.
큐비트 하나에는 0과 1이라는 2개의 상태가 중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큐비트가 5개 쓰였다면 2의 5승인 32개의 중첩 상태(00000~11111)가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큐비트 하나의 상태만 정해도 양자 얽힘에 따라 다른 4개 큐비트 상태도 전부 결정됩니다. 큐비트 상태가 0인지 1인지 하나하나 정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계산 속도가 훨씬 빠른 겁니다.
다만 양자 컴퓨터로 효율적인 계산이 이뤄지려면 양자 중첩과 얽힘을 잘 제어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짜야 합니다. 두 현상이 제어되지 않으면 답을 빠르게 찾지 못해 몇 번이고 반복계산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기존 컴퓨터보다 속도가 느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자 컴퓨터는 많은 과학자가 ‘다가올 미래’로 여기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먼 것도 사실입니다. 구글 연구팀은 양자 컴퓨터 상용화까지 가기 위한 여정을 6단계의 로드맵으로 나눴는데, 얼마 전에야 2단계를 달성했습니다. 1단계인 ‘양자 우위’를 달성한 지 4년 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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