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명패 극구 꺼린 푸코…“늘 ‘바깥의 사유’ 갈망했죠”

이유진 2023. 3. 2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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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인터뷰
‘푸코와 철학자들’ 엮은 김은주·진태원 교수
‘푸코와 철학자들’을 엮은 김은주 교수(연세대 철학과·왼쪽)와 진태원 교수(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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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저명한 역사가 폴 벤느는 미셸 푸코(1926~1984)가 쓴 <광기의 역사>(1961)가 출간되었을 때 누구도 이 책의 중요성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푸코는 감옥, 광기, 성을 철학의 주제로 삼으면서 학문의 영역을 넓혔다. 사회학 같은 철학을 했고, 역사를 다루면서 개인의 주체 탄생에 눈길을 주었으며, 우파나 좌파 그 어디에도 확실히 포섭되지 않는 이상한 사상가였다. 한국에서도 푸코는 수십년간 열광적으로 수용되었다. 진태원 교수(성공회대 민주자료관)는 “한국에서 40년 가까이 대중적인 관심과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연구가 함께 유지된 사람은 푸코가 거의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코가 한국에 소개된 지 한 세대가 지나, 마침내 한국의 철학연구자 9명이 철학자로서 푸코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연구서를 펴냈다. <푸코와 철학자들>(민음사)은 ‘철학의 외부자’를 자처하며 변방에 위치하고자 한 푸코가 계승, 대화, 대결, 참조한 철학자들의 이론과 푸코의 사상을 다룬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이뤄진 한국의 푸코 철학 연구서 가운데서도 가장 엄정하고 현재적인 텍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코의 후예들

엮은이 김은주 교수(연세대 철학과)와 진태원 교수를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먼저 질문을 던졌다. 푸코는 왜 이렇게 떠들썩하게 40년 가까이 한국 사회에 스며들었고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가?

“푸코는 추상적 개념보다 개별적인 대상을 연구한 학자입니다. 방대한 자료 연구를 바탕으로 비가시적인 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려는 것이 푸코의 기획이었습니다. 광인, 정치범도 아닌 잡범, 환자, 변태들이라고 치부받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었어요. 푸코의 연구는 감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성의 담론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등을 폭로하는 동시에 지적 쾌락을 느끼게 하죠. 낭만성도 있어요. 그의 모든 글에는 ‘바깥의 사유’, 바깥을 향한 갈망이 늘 박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글을 쓸 땐 운율이 맞는 공식처럼 딱딱 맞는 아름다운 언어를 쓰고요. 낭만성, 지적 성실성, 논리성을 모두 갖춘 매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성적인 목소리로 비이성이라고 치부된 자들의 목소리를 찾아주겠다고 하니 호소력을 가질 수밖에요.” (김은주)

진태원 교수는 푸코의 ‘현재성’에 눈길을 주었다.

“최근 20년 동안 세계의 변화를 보면, 포퓰리즘 시대, 신권위주의 시대의 도래라고 볼 수 있는데 그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예전에 ‘빨갱이’란 말이 ‘주사파’와 연결됐다면 이제 동성애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페미니스트 등이 사회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지목되죠. 푸코가 오늘날 필요하고 중요한 이유는 배제된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고민했다는 점이에요. 푸코는 항상 사회적 소수자의 관점을 가졌어요.” (진태원)

미셸 푸코는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현안을 공부하고 현실에 개입했다. 위키피디아

한국에 푸코의 저작이 처음 번역돼 나온 때는 1979년. 불문학자 박정자가 <성의 역사1>을 번역한 것이다. 그 뒤 1987년 철학자 이광래가 옮긴 <말과 사물>, 1989년 불문학자 김현이 엮은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이 나왔다. 그리고 <성의 역사> 1~3권, <광기의 역사> 축약본, <지식의 고고학>, <감시와 처벌> 등이 잇달아 소개되었다. 2000년대 들어 <비정상인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주체의 해석학>, <안전, 영토, 인구> 같은 강의록이 계속 출간되면서 지금까지 ‘푸코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푸코 현상’에 대해 진 교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대용품으로서 관심을 끈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정세적 사건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새로운 진보 사상 토대의 가능성을 푸코에게 발견한 것이죠. 2000년대 들어 푸코는 개별 분과 연구자들이 지침으로 활용했습니다. 가장 많이 팔린 <감시와 처벌>은 1994년 초판이 나온 뒤 지금까지 45쇄나 인쇄되고 학부 교재로도 쓸 정도로 접근성이 좋기도 해요. 푸코는 대중적으로나 학계에서나 확고한 고전철학자가 되었어요.” (진태원)

푸코는 프랑스 지성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인 동시에 68혁명 이후 죽기 전까지 늘 거리에 있었던 투사였다. 죄수들의 생활조건 개선 운동을 위한 감옥정보 그룹 활동, 이민자 운동, 사형제도 폐지, 동성애자들을 향한 폭력에 대항하는 저항운동이 있는 곳에 그도 있었다. “저기 푸코가 있다!”는 말이 유명해진 까닭이다.

“시위를 나가기 전에 접할 수 있는 관련 자료를 다 읽고, 공부를 많이 해서 해당 분야의 현안이 뭔지를 철저히 아는 가운데 참여했어요. 하나 마나한 소리를 하지 않고, 누가 봐도 그럴 듯한 ‘자명성’을 깨뜨리는 그의 날카로운 진술들은 엄청난 지적 성실성이 뒷받침돼 있는 거예요. 그의 유려한 문체 밑에 얼마나 많은 노동이 들어가 있는지를 봐야 해요. 이처럼 현안에 맞는 가장 구체적인 논의를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가리키고자 했던 새로운 지식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김은주)

2000년 이후 신자유주의 주체의 탄생, 광우병 논란, 감염병 문제, 그리고 최근엔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발언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파레시아’에 이르기까지 지식인들은 푸코의 다양한 논점을 유행처럼 즐겨 사용해왔다. 진태원 교수는 여러 분야에서 ‘푸코의 후예들’이 학술적 작업을 계승하고 있지만 너무 단편적으로 쪼개져 연구된 탓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푸코의 아이디어로 새 담론을 만들 때라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푸코를 활용해 ‘통치성 학파’를 세운다든지 푸코의 아이디어로, 푸코와 함께, 푸코에 반대해서 새로운 담론을 만드는 작업이 활발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주디스 버틀러인데 <젠더 트러블>에서 명시적으로 푸코의 방법론을 동원했지만 2000년대 이후엔 레비나스, 아렌트를 원용해 작업을 했습니다. 한국에선 이런 작업에 굉장히 근접한 분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을 분석한 서동진 교수(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진태원)

푸코와 철학자들

푸코는 지적 세계에서 확고한 지위를 갖고 있었지만 스스로를 철학사에 기입하는 것만은 꺼렸다. 자신은 철학자가 아닌 교육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신의학, 질병학, 여성학, 장애학, 노년학, 교정학 같은 분과학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참조점이 된 것과 달리 철학계에서 푸코 연구는 사실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푸코 사상의 철학적 측면을 탐구하는 것이 도전이 된 이유다.

<푸코와 철학자들>은 2017년 한국프랑스철학회 가을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푸코와 그가 읽은 철학자들을 다뤘다. 푸코 사상의 커다란 길잡이가 된 칸트(허경), 니체(도승연, 정대훈), 하이데거(설민)와 함께 동시대에 살면서 푸코와 비판적인 대화를 주고 받은 데리다(김은주), 캉길렘(주재형), 알튀세르(진태원), 들뢰즈(최원), 그리고 고대 그리스 로마의 철학자들(심세광)을 엮은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 대중의 수준이 굉장히 높은데, 이 책은 전문연구서인 동시에 믿고 읽을 수 있는 대중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코는 원래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 위해, 애초 자신과 달라지기 위해 작업하는 것을 중시했고 이처럼 앎을 통한 ‘자기변형’이야말로 철학의 본령이라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계몽의 후예답게 ‘현재’를 탈출해야 할 시대로 보고, 이를 위해 다양한 문화적 정세를 분석합니다. 이와 같은 자기 변형의 실천과 ‘계몽’을 위한 ‘진단’의 활동, 이것이 푸코가 제안하는 오늘날의 철학적 태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김은주)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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