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M본부] '57조원 증발' 테라·루나 권도형 체포‥쟁점과 전망은?

손구민 입력 2023. 3. 25. 09:55 수정 2023. 3. 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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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폼랩스 신현성·권도형 공동대표

< '57조 원이 사라졌다'… 어느새 1년 다가오는 테라·루나 사태>

테라·루나 코인 설계자,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23일 몬테네그로에서 전격 체포됐습니다. 테라·루나 사태를 향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어느덧 테라·루나 사태가 발생한 지 11개월. 권도형 씨가 해외 도피한 사이 국내에선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작년 5월, 테라·루나 코인이 폭락하면서 일주일 만에 시가총액 57조 원이 증발했습니다. 피해를 본 국내 투자자들이 권도형 대표와 테라폼랩스 신현성 전 공동대표를 수사해달라고 고발하고 나섰습니다. 사건을 배당받은 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임 후 부활시킨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었습니다.

검찰 합수단은 2개월여 자료 검토 끝에 7월 말 테라·루나 관계사와 암호화폐 거래소, 신현성 대표 자택 등 15곳 이상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하면서 본격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테라·루나 코인을 발행했던 핵심 당사자인 권도형 씨는 한국에 없었습니다. 폭락 사태 한 달 전인 작년 4월 이미 싱가포르로 출국한 겁니다. 권 씨는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세르비아에 이어 몬테네그로에 머물다 1년이 다 돼서야 붙잡혔습니다. 몬테네그로 공항에서 위조된 여권을 들고 두바이행 비행기를 타려다 붙잡혔습니다.

< 순탄하지 않았던 수사… "테라·루나 코인은 증권이 아니다"? >

그동안 검찰은 권도형 씨 대신 국내에 머물고 있는 테라폼랩스 공동 대표 신현성 씨를 대상으로 수사를 벌여 왔습니다. 권 씨와 마찬가지로 신현성 씨도, 갖고 있던 루나를 팔아 1천400억 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챙겼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작년 11월 신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된 겁니다. 그밖에도 권도형 씨와 같이 일했던 개발자들, 신 씨 측근인 티몬 대표까지 모두 구속영장이 줄줄이 기각됐습니다.

신현성 전 공동대표가 작년 12월 2일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 법정을 향하고 있다.

“검찰이 적용한 범죄 혐의에 법리상 다툼의 소지가 있다.” (서울남부지법 영장전담판사, 작년 10월 초)

법원은 구속영장 기각 사유 중 하나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부분이 다툴 만한 소지가 있다는 걸까요? 검찰이 권도형·신현성 두 사람에게 적용한 혐의를 요약해보면 이 정도가 됩니다.

1) 권도형·신현성이 테라·루나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2) 투자자들에게 테라·루나 가치가 계속해서 오를 것이라고 거짓 홍보하고, 3) 투자자 돈을 끌어모아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

'투자자에게 사기를 쳐 부당 이득을 챙겼다.'… 법적으로는 자본시장법 178조 사기적 부정거래 조항을 어긴 게 됩니다. 자본시장법은 자본시장 안에서 거래되는 상품을 규율합니다. 대표적으로 '증권'이나 '주식' 같은 금융상품이 자본시장법의 적용 대상입니다. 당연히 금융상품이 아니면 자본시장법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검찰은 테라·루나코인이 증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권도형·신현성 두 사람에게도 자본시장법 조항을 적용했습니다. 법원이 "법리상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건 이 지점입니다. 테라·루나가 '증권'인지 불분명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 정부는 테라·루나를 포함한 어떤 암호화폐도 증권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증권이란 어떤 실물 사업에 투자하는 것인데, 암호화폐는 사업에 투자하는 게 없다는 겁니다. 그저 값이 오르냐 내리냐만 따지고 돈을 거는 수준의 단순 투기에 해당한다고 본 겁니다.

법원 입장에선 부담일 수 있습니다. 이제껏 행정부에서 이렇게 주장해 왔는데 사법부가 "증권이 맞다"고 판단을 뒤집는 일, 신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 급변한 분위기… 미국 당국은 "테라·루나는 증권 맞다"? >

그런데 이후 분위기가 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SEC가 테라·루나가 ‘증권’에 해당하고, 권도형·신현성 두 사람이 사기적 부정거래 행위를 했다고 판단하고 재판에 넘긴 겁니다.

특히 테라·루나가 다른 암호화폐와 달리 실물 사업에 투자하는 증권 성격이 있다고 인정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SEC는 제소장에 신현성 씨를 'co-founder', 즉 공동 설립자라고 지칭하고, 신 씨의 결제 시스템 사업체인 차이코퍼레이션을 언급했습니다.

신 씨 측은 "차이의 결제 시스템에 테라·루나 블록체인을 연동시켜, 테라·루나 코인으로 일상생활에서 결제가 가능하게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홍보했습니다. 테라·루나가 암호화폐일 뿐만 아니라, 실물 경제에서 결제 수단으로 사용된다니, 투자자들은 들뜰 수밖에 없었겠죠.

이 '혁신 결제 시스템 사업'을 보고 테라·루나 투자자들이 투자했다고 게 SEC의 판단입니다. 즉, 테라·루나도 결제 시스템이라는 실물 사업에 연동된 '증권'이라고 인정한 겁니다. 그런데, 이 사업이 다 거짓이었고, 실제 결제 시스템이 테라·루나 블록체인은 연동된 적도 없기 때문에, 금융시장에서 벌어진 '사기', 즉 '사기적 부정거래'도 인정된다는 결론에 이른 겁니다.

그리고 권 씨가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직후 미국 뉴욕 남부검찰도 같은 내용으로 권 씨를 형사 재판에 넘겼습니다. SEC의 제소는 우리나라로 치면 행정소송 성격이고, 권 씨는 미국서 형사재판도 받아야 하는 겁니다.

한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미국 SEC까지 같은 판단을 내린 상황. 검찰은 신 씨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를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법원이 이번엔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테라·루나 투자자 피해자 모임 변호인단이 작년 5월 19일 서울남부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 "투자금 1천 4백억 원 모집도 사기"…"외부 요인으로 테라·루나 붕괴" >

권도형 씨 체포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바로 어제(24일)도 검찰은 또다시 압수수색에 나섰습니다. 신현성씨의 회사 차이코퍼레이션이 대상이었습니다. MBC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권도형·신현성 두 사람의 새로운 혐의를 포착했습니다. 거짓 홍보를 통해 1,400억대 주식 투자를 받았다는 겁니다. 루나를 팔아 부당 이익을 챙겼다는 혐의와는 별개입니다.

2020년 무렵 신 씨는 자신이 소유한 차이홀딩스를 통해, 세 차례에 걸쳐 1,400억원 상당을 벤처 투자회사들로부터 투자받았습니다. 벤처회사가 여러 차례 나눠 투자 받는걸 ‘시리즈 투자’라고 합니다. 검찰은 차이홀딩스의 투자 유치 역시, 테라·루나 블록체인을 차이 결제 시스템에 탑재하겠다는 거짓 홍보를 통해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권도형 씨는 이를 알고 공모했는지 검찰은 의심하고 있습니다.

시리즈 투자의 성격상, 첫 투자부터 거짓 홍보를 했으니, 그 뒤에 받은 투자 역시 한 묶음으로 보고 전체 투자 금액 1,400억원 가량을 사기 범죄 금액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KT인베스트먼트, 삼성넥스트, SK네트웍스, 한화투자증권 등 굴지의 국내 대기업들도 투자했고, 일부 공적기금도 투자됐는데, 대부분이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함을 숨기거나 결제 시스템과 연동되는 것처럼 거짓 홍보를 했고, 결국 코인이 붕괴했다." 권도형·신현성 두 사람은 검찰의 이 주장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습니다. 신현성 씨는 지난 구속영장 청구 당시 "테라·루나 폭락 사태 2년 전 이미 퇴사해 폭락 사태와 관련이 없다", 또 "루나 코인을 고점에 처분해 수익을 얻었다거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수익을 거뒀던 적도 없다"고 정면 반박했습니다.

신현성 씨뿐 아니라 체포된 권도형 씨까지 두 사람은 특히 테라·루나 블록체인의 붕괴가 내부 결함이 아닌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연방 검찰은 세계 3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FTX를 수사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 테라코인의 폭락이 등장합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대량의 테라 코인을 팔아 치워 시장 가격을 조작한 의혹을 받고 있는데, 그 결과 테라·루나 폭락 사태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권도형 씨는 작년 말 트위터에서 FTX 측이 1조 원 넘는 테라 코인을 매도해 테라·루나 시세조종을 주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막무가내로 외부 공격이 들어오면 그 어떤 시스템도 붕괴하지 않을 수 없다, 결함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 권도형 체포로 새 국면… 과연 언제 송환돼 처벌받나? >

이제 관건은 권도형 씨를 어떻게 국내로 송환시키느냐입니다. 몬테네그로는 유럽 평의회 범죄인 인도 협약 가입국으로서, 우리나라가 범죄인 인도를 청구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법무부는 24일 저녁 몬테네그로 당국에 권 씨 인도를 청구했습니다.

당장 권 씨가 한국에 송환되는 건 아닙니다. 몬테네그로 당국은 이미 권 씨가 위조 여권을 사용한 데 대해 공문서위조 혐의로 권 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몬테네그로 법원은 당장 권씨의 구금 기간을 30일 연장시켰습니다.

미국 검찰도 권 씨를 기소했습니다. 증권사기, 시세조종 등 8개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역시 권 씨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몬테네그로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증권거래위원회, SEC도 지난달 먼저 권 씨를 기소했습니다. SEC 제소장을 보면 권 씨는 테라·루나 값이 폭등할 무렵, 루나 코인을 팔아 치워 비트코인 1만 개로 바꾼 뒤 스위스 은행이 예치해놨다고 합니다. 미국 달러로 하면 2억 달러, 원화로 하면 2천 640억 원에 달하는 돈입니다.

우리나라 검찰이 가장 먼저 권도형 씨 신병 확보에 나선 건 사실입니다. 작년 9월, 권 씨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았고, 체포영장을 근거로 인터폴에 권 씨 적색수배를 요청했습니다. 지난달 단성한 증권범죄합수단 단장이 직접 세르비아로 출장 가 권 씨 체포 협조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검찰의 노력과 별개로 만약 몬테네그로가 미국이나 싱가포르에 권 씨를 넘기면, 국내 송환은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됩니다. 권 씨가 송환을 거부하며 몬테네그로 현지에서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 송환 여부를 결정하는 소송에만 1년 넘게 걸릴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옵니다.

권 씨가 어느 나라로 송환돼 어떤 형태의 사법처리 절차를 밟게 될지는 불투명해 보입니다. 다만, 테라·루나 폭락의 진실이 무엇인지, 권도형 씨가 결함을 알고도 코인을 발행한 사기인지, 아니면 권 씨 주장대로 외부적 요인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 곧 밝혀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손구민 기자(kmsoh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3/society/article/6467425_361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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