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내전(內戰)’상태 한국정치와 이재명의 길

천남수 2023. 3. 25. 08:1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가장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부하는 미국도 독단적 성향의 트럼프 등장으로 붕괴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정치적 양극단의 길을 치닫고 있는 한국은 정치적 ‘내전(內戰)’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

“그는 언론을 국민의 적이라고 불렀다. 사법부의 정당성을 문제 삼았고, 주요 도시에 대한 지원을 줄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임기 초반 그는 독재자의 본능을 과감히 드러냈다. 선출된 독재자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택한 세 가지 전략은 심판을 매수하고, 상대편 주전이 경기에 뛰지 못하도록 막고, 경기 규칙을 고쳐서 상대편에 불리하게 운동장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자신을 반대하는 주요 언론을 향해서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으며, 자신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 후 전통을 자랑하는 민주주의조차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지적한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이다.

이 책의 서문은 최고의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있다고 믿는 미국에서조차 위기에 빠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위태로운 제도라고 했다. 헌법, 자유와 평등에 대한 확고한 믿음, 역사적으로 탄탄한 중산층, 높은 수준의 부와 교육, 그리고 광범위하고 다각화된 민간 영역이 미국 사회를 지켜주고 있지만, 최근 미국 정치인들은 경쟁자를 적으로 여기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의 제도적 완충장치를 허물어뜨리고 있다고 했다. 미국 역사상 공직 경험이 전혀 없고,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존중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독단적 성향을 지닌 트럼프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다는 미국도 민주주의 붕괴 위험에 빠졌다는 것이다.

사실 이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은 오늘의 한국이 트럼프가 등장했던 미국 사회와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0.73%라는 초박빙의 차이로 당락이 갈린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양극단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어차피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정부를 운영하는 주체가 결정됐으면, 이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령이다. 승자는 패자를 포용하고, 패자는 깨끗이 승복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승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것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전임 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 정책 기조가 아닌가 할 정도다. 야당 대표와의 만남도 없다.

대선에서 패한 야권은 여전히 대선 연장전을 치르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 직후 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불과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리고 압도적 지지로 당 대표가 됐다. 대선 연장전이 이어지는 이유다. 자연히 윤 대통령과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 검찰은 역사상 처음으로 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여·야 간 갈등은 증폭됐다. 체포동의안 투표 결과는 야권 내분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결국 검찰은 야당의 대표를 기소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로써 대선 후 여·야가 함께 외쳤던 통합은 소멸되고 분열에 분열이 재생산되는 상황이 됐다.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내전(內戰)’상태가 되어 버렸다.

▲ 지난 23일 법무부로 출근하는 한동훈 장관(왼쪽 사진)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마친 뒤 대심판정을 나서고 있는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지난 23일, 헌법재판소는 법무부와 검사 6명이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기각하면서 검사의 수사권은 ‘헌법상 권한’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헌법에 규정된 검사의 ‘영장신청권’을 근거로 헌법에 검사의 수사권이 보장된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국회 입법을 통해 행정부 차원에서 각 기관에 배분하는 법률상 권한에 그친다고 봤다. 이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번 헌재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고, 민주당은 이번 판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기소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제기한 검찰수사권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기각판결은 한국 정치가 극한의 대결을 펼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가 죽어야 하는, 자칫 내가 조금 양보라도 하면 그 길이 바로 죽음이 되는 양극단의 대결정치가 이제는 일상이 됐다. 국민 여론도 가파르게 갈라져 있다. 가족끼리도 정치얘기를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정치의 적대화는 도를 넘었다. 다양한 소통구조, 실시간 소통할 수 있게 된 디지털 세상은 확증편향이 작동하면서 양극단의 대결구도를 고착시켰다. 차이도 더 벌어지고, 골도 깊어지면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대선에서 경쟁을 펼쳤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단 한 번의 회담도 없었다. 이 대표의 대화 제이를 윤 대통령은 외면했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1일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이 끝난 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누구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승자가 포용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외면했다. 2016년 민주주의 쇠퇴와 붕괴를 불러왔던 트럼프의 등장과 오늘의 한국 정치를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쟁자를 유연함보다는 적대적으로 여기는 한 정치는 분열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로는 개선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지난 10개월간 경험했던 윤 대통령의 스타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대표 선거에서 확인된 ‘윤심’논란은 여권의 한계를 드러내는 징표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간 타협을 기대한 다는 것은 난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당대표에게 얽혀있는 문제들이 해결될 여지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동안 대통령을 향한 이 대표의 대화 제의도 번번이 묵살됐다. 169석의 거대 야당 대표의 대화제의를 거절한 이유는 다 아는바와 같다. 여당 대표와의 대화도 형식에 그치고 있다. 여당 대표 역시 대통령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대화를 한다고 해도 이는 공염불인 셈이다. 고물가와 고금리 등으로 민생고는 하늘을 찌르는데, 정치는 내전을 벌이는 꼴이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무엇보다 지금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지지했거나, 앞으로 지지할 수 있는 이들을 돌아봐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들을 돌아본다는 것은 통렬한 자기반성을 전제로 한다. 검찰 독재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는 하소연은 하소연일 뿐이다. 정권을 내어준 잘못을 인정하고 혁신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혁신의 길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대의와 원칙에 따른 결단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 대표 자신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돼야 한다. 그래야 민주당이 살 수 있다. 내전 상태의 한국 정치도 끝장낼 수 있다. 역사는 언제나 용기 있는 사람의 편이었다.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