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조개가 끝물? 미나리랑 데쳐먹으면 입안 가득 ‘봄’ [ESC]

한겨레 2023. 3. 2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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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_ 새조개
매년 다른 제철…올핸 4월 초까지
달큰한 맛 살리려 샤부샤부로도
봄나물과 데쳐먹으면 입안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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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따라 계절따라 챙겨 먹는 바다 음식들이 있다. 찬 바람 불면 굴과 방어, 조금 따뜻해졌다 싶으면 병어 등 넙적한 생선 같은 것들이다.

몇 번이고 맞는 계절이지만 매번 찾아오는 제철 식재료의 유혹은 정말 참을 수가 없다. 더웠다가도 춥고, 춥다가도 따뜻한 이 계절엔 역시 새조개다. ‘새조개는 이제 끝물 아니냐, 시절 지났다’는 이야기는 다 모르는 소리다. “해산물 역시 과일처럼 무르익는 시기가 있고, 매년 무르익는 시기는 다르다”고 홍명완 선장은 얘기한다. 홍 선장은 충남 서해안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멸치잡이 어부다. “올해는 새조개의 수확량도 적을 뿐더러, 무르익는 시기도 작년에 비해 한 달 가량 늦어요. 오히려 지금부터 앞으로 한 달 앞까지가 새조개 먹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볼 수 있어요.” 유행이라고 덮어 놓고 먹다가는 제철도 아니고 맛도 들지 않은 새조개를 먹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4월 초까지가 새조개 먹기에 가장 좋은 절정의 시기라는 말도 덧붙였다.

새조개 샤부샤부…“재료가 다했다”

충남 홍성군 남당항 일대에서는 매년 12 월 말에서 1월 경에 새조개 축제를 연다. 충남 보령의 오천항 역시 새조개와 키조개로 유명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신선한 새조개를 철 맞춰 접하기는 쉽지 않다. 얼마 전 다녀온 보령 오천 포구의 초장집 고무대야에는 새조개가 가득 담겨 있었다. “키조개를 먹으면 새조개도 끼워 주겠다”는 말이 낯설고도 반가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등장하는 넓은 냄비엔 육수랄 것도 없는 슴슴한 국물, 건더기랄 것도 없는 간소한 고명이 조금 담겨 있었다. ‘이런 것으로 뭔가 맛이 날까’ 했던 우려는 괜히 했다. 한 접시 가득 나온 새조개를 호기롭게 국물에 넣고 간장과 고추냉이에, 초고추장에 또 한 번 찍어 먹고 나니 ‘재료가 정말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수에 잠깐 빠졌다 나온 새조개는 부드러운 식감과 다디단 맛이 일품이었다. 조개는 질기고 성가시다는 편견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새조개를 산지에서 먹으면, 그저 달고 달다. 초고추장 같은 소스도 필요 없을 정도로 천연 조미료에 가깝다”는 홍 선장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새조개는 보통 샤부샤부로 많이 먹는다. 특유의 달큰한 맛을 살리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패류의 특성상 아무래도 익혀 먹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샤부샤부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거창하게 육수를 만들 필요도 없다. 새조개가 들어가면 새조개의 고소한 감칠맛이 육수에 배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파는 샤부샤부 육수에 잘 손질된 새조개를 넣어 먹기만 하면 된다.

새조개는 다른 어떤 조개보다도 선도가 중요하다. 함께 배송된 것들 중 한 마리만 상태가 좋지 않아도 다 같이 맛이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제대로 고르고 제대로 배송해주는 업체를 잘 선정해서 주문하는 것이 소비자의 몫이다. 좋은 새조개를 고르는 방법은 뭘까? 간단하다면 간단하다. 생물인 상태가 가장 좋고, 껍데기를 깠을 때 색이 선명해야 한다. 새조개의 뜻은 ‘새를 닮은 조개’. 껍데기가 새의 날개고, 알맹이는 새의 모양을 닮아서 새조개다. 새 부리의 형태가 분명하고 단단할수록 신선할 확률이 높다. 가공식품 도매업체인 에스티피트레이딩의 최시준 대표는 “최근에는 껍데기를 깐 상태의 새조개를 판매하는 곳이 많아 선도를 확인하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선도 중요한 새조개…‘땅의 맛’이 좌우

지난 20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촬영한 새조개 모습

샤부샤부말고 새조개를 즐길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바다 사람들에게 새조개는 봄입니다. 쌉싸래한 봄나물과 함께 새조개를 즐겨도 별미에요.” 최시준 대표의 말이다. 미나리, 봄동 같은 봄나물과 새조개를 살짝 데친 뒤 레몬즙을 뿌린 간장에 찍어 먹으면 그야말로 입 안이 봄이다. 바다 사나이 홍명완 선장의 새조개 먹는 법은 유난히 다르다. “천수만에서 자란 어린 시절에는 새조개를 회로도 먹었어요. 산지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새조개 한 마리를 입 안에 가득 넣고 씹었을 때의 그 단 맛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몰라요. 고향에서는 기름기 많은 소고기 채끝 등심이나 삼겹살을 구워 새조개를 함께 싸먹기도 해요. 고기의 기름기에 새조개의 맛이 더해져 그야말로 금상첨화거든요.”

육지에서 나는 재료는 ‘땅의 맛’을 따진다. 포도나무가 어떤 땅에서 자라느냐를 따지는 와인의 ‘떼루아’(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를 생산하는 데 영향을 주는 토양과 기후 등의 조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도 결국 땅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바다의 밭, 갯벌에서 나는 바다 생물도 마찬가지다. 성질이 예민하고 손질도 어려운 새조개는 바다와 갯벌의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겉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직접 까서 보기 전까지는 선도를 알 수 없는 것이 새조개의 ‘함정’이다.

자라는 환경에 따라 맛도, 향도 천차만별이다. 충남 보령을 비롯한 남당항 쪽에서 새조개가 가장 많이 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전남 일대, 그 중에서도 순천에서 요즘에는 새조개가 많이 잡힌다. 홍명완 선장은 “천수만의 조업량이 작년에 비해 50% 가량 줄어들었어요. 요즘에는 순천과 여수 쪽, 남해안에서 새조개가 가장 많이 잡힙니다. 품질도 아주 좋고요”라고 말한다.

계절을 만끽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라지만, 그 계절에 가장 맛이 잘 든 식재료를 먹는 것만큼이나 온 몸으로 한 철을 즐기는 방법이 또 있을까. 온 몸에 들었던 한기가 가시고 꽃봉오리도 올라오는 이 찬란한 봄. 지금 가장 맛있는 새조개와 함께라면 더욱 아름다울 테다. ‘끝물’ 아니고 이제부터 다음 달까지 최고로 빛날 식재료다.

글·사진 백문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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