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돈키호테마저 사랑한 땅에서 온 와인 ‘핀카 라 피카 레세르바’

유진우 기자 2023. 3. 2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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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초는 말라가 대폿집 주인도 부러워할 만큼 포도주 주머니를 들고 신나게 들이켰다.

이런 식으로 몇 차례 마시다 보니 주인이 그에게 했던 약속 따위는 다 잊어버렸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모험을 찾아 떠나는 것이 고생길이라기보다는 신선놀음으로 여겨졌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서울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있듯,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한복판 에스파냐 광장(Plaza de Espana)에는 돈키호테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애마 로시난테에 올라탄 돈키호테(Don Quixote)와 나귀에 탄 산초 뒤로는 이 소설을 쓴 세르반테스(Cervantes)가 근엄한 표정으로 기념비 위에 앉아있다.

돈키호테는 누구나 다 알지만 제대로 읽은 사람은 드물다 할 정도로 방대한 소설이다. 분량은 1600쪽이 넘고, 등장 인물 역시 650명에 달한다. 이 소설은 세상에 나온 지 400년이 넘었다.

세르반테스가 소설을 발표할 당시 돈키호테 이름은 원래 ‘라 만차의 돈키호테(Don Quijote de La Mancha)’였다. 소설 속 돈키호테는 라 만차에 살며 오로지 이상(理想)을 추구한다. 이상을 추구하다 이상(異常)해졌다 할 만큼 현실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인물이다.

와인은 소설 속에서 그 헛된 이상을 끝까지 여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라 만차는 수도 마드리드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리오하(Rioja)와 더불어 스페인을 대표하는 포도주 생산지다.

이 지역에서 포도 재배를 시작한 것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오하가 고급 스페인 와인으로 유명하다면, 라 만차는 1900년대 중반까지 주로 저렴한 벌크 와인을 주로 만들었다. 벌크와인이란 병에 담기지 않은 채 팔리는 와인을 말한다. 큰 참나무통에 들어있는 와인을 집에서 가져온 유리병에 원하는 만큼 퍼서 파는 방식이다.

그래픽=손민균

벌크 와인이라고 품질이 항상 나쁘진 않다. 하지만 벌크와인은 원산지 통제 등 품질 좋은 와인을 얻기 위한 까다로운 규제와 거리가 멀어 품질이 일정하지 않다. 어느 밭에서 온지 알 수 없는 포도를 몽땅 섞어 만들기도 한다.

돈키호테는 17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한다. 와인 품질을 높일만한 이렇다 할 양조 기술이 발달했을 리가 없다. 작 중 내내 유일하게 돈키호테 옆을 지키는 충직한 종자(從者) 산초 역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내내 이 지역 벌크 와인만 마셨다.

그는 극 중 식탐이 많고 ‘모든 불행 중에서 최악은 포도주가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낮은 품질 와인이라도 즐겁게 마시지만, 동시에 좋은 와인을 기가 막히게 감별하는 능력을 지녔다.

“나는 포도주 감별에 타고난 육감을 갖고 있단 말이야.

어떤 술이고 냄새만 한번 맡으면 산지, 계통, 맛, 햇수, 술통을 바꾼 횟수,

그 밖에 포도주에 대한 사정이라면 뭐든지 틀림없이 맞히지.”

산초 판사, 돈 키호테

이 능력은 이후 두 사람이 라 만차를 떠나 스페인 전역을 여행할 때 빛을 발한다. 평소 마시던 라 만차의 질 낮은 와인을 넘어 소설 속에서는 스페인 유명 와인 산지 와인들이 속속 등장한다.

산초가 한 지역의 영주(領主)를 자청하는 2부에서는 직접 와인 등급을 가르는 양조 규정을 제정하기도 한다. 이때 엄격한 규정의 기준점이 된 곳이 스페인 최고급 와인 산지 리오하다.

리오하 지역은 포도를 기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스페인 북부 로그로뇨(Logroño)를 중심으로 온화한 기후, 적당한 강우량, 따뜻한 햇볕 속에 포도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이 지역 와인은 스페인 내에서는 중세 때부터 명망이 높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인지도가 낮았다. 리오하에서는 19세기 중반까지 로마시대 와인을 보관하던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지금은 상식이 된 참나무통에 와인을 담아 숙성하는 대신, 동물 가죽을 뒤집어 만든 자루나 주머니를 이용했다. 로마 황제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고대 이집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여왕에게 와인을 전달하던 그 방식이다.

제대로 가공되지 않은 가죽에 와인을 담다 보니 와인에는 쿰쿰하고 역한 냄새가 뱄다. 이 때문에 1800년대 중반까지 리오하 와인은 그저 스페인에서만 좋은 와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참나무통 숙성 방법을 배워온 1850년대 이후, 리오하 와인은 다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 무렵 중반 보르도를 포함해 당시 내로라하던 프랑스 와인 산지들은 모두 포도밭 전체에 해를 입히는 곰팡이균으로 골치를 썩었다. 프랑스 와인 생산량이 추락하자, 영국과 전 유럽에 와인을 공급하던 상인들은 대안으로 리오하를 선택했다.

이렇게 리오하는 단숨에 고급 와인으로 발돋움했고, 돈키호테 시대 스페인에서 누리던 명성을 전 세계적으로 얻었다.

소설 속에서 산초가 정한 와인 규정처럼 리오하 와인은 숙성 기간에 따라 분명하게 등급을 구분한다. 가장 높은 그란 레제르바(Gran Reserva) 등급을 받으려면 참나무통 숙성 기간 2년을 포함해 최소 5년간을 묵혀야 한다.

레제르바(Reserva)는 참나무통 숙성 최소 1년을 포함해 3년은 익힌 다음 출시하는 와인이다. 크리안자(Crianza)는 숙성 기간이 참나무통 숙성 최소 1년에 병 속 숙성 1년을 합쳐 2년이 지난 다음 파는 와인이다. 따로 숙성을 하지 않고 바로 파는 와인은 ‘젊은이’라는 의미로 호벤(Joven)이라 부른다.

리오하에서 만든 핀카 라 핀카 레제르바는 이름처럼 두번째 레제르바 등급에 속한다. 레제르바 등급은 그란 레제르바 등급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맛과 향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과실향이 더 뚜렷하다. 가격은 그란 레제르바에 비해 훨씬 저렴해 가격 대비 만족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소비자에게 적합하다.

이 와인은 2022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구대륙 와인 3만~6만원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수입사는 빅보이리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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