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때로는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성장한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입력 2023. 3. 25.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원래 뭘 모를 때보다 조금씩 알기 시작했을 때 자신감이 흔들리기 시작한다(더닝-크루거 효과). 

무엇이든지 초반에는 실력이 느는 것이 보여서 즐거움을 느끼다가 기초를 넘어 심화 과정으로 넘어가게 되면 이전에 비해 실력이 느는 속도가 줄어들고 조금씩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관문에 서면 보다 더 난이도가 높은 과제들이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든다.

이러다 보니 실력이 늘어나는 과정은 다양한 어려움과 패배, 벽을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전과 달리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벽을 마주하고 있다면 어쩌면 나는 성장 중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어도 막상 눈 앞에 풀리지 않는 과제를 두고 있는 심정은 복잡하기만 하다. 여기에 더해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닌지, 왜 나는 이 정도밖에 안되는지 등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들이 터져 나온다. 

자신을 향한 의심과 때로는 비난의 목소리를 견디지 못할 경우 그동안 걸어온 길에서 하차하게 되기도 한다. 나를 질책하는 이 목소리들은 내 안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런 만큼 24시간 눈을 뜨나 감으나 나를 괴롭힐 수 있기 때문에 그 파괴력이 상당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내 안에서부터 나오는 가혹한 소리들을 감당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때로는 벽을 마주하고 있을 때, 성장통을 겪고 있는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여부가 성장 여부를 결정하곤 한다.

이렇게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더 또는 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가 스포츠 선수들이다. 스포츠 선수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많은 실패와 성공을 겪곤 한다. 스스로를 의심하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또는 큰 기복 없이 단단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의 심리학자 다니엘 윌슨(Danielle Wilson)은 여성 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중요한 도전과 실패가 일상인 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지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선 많은 선수들이 “강인한 정신력”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꾸준히 훈련하고 실력을 다지며 무너지지 않는 끈기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른바 “버티기”의 중요성이 자주 등장했다. 성공을 향해 자신을 엄격하게 밀어붙이는 태도 또한 강조되었다. 

흥미롭게도 자기자비(self-compassion) 또한 중요하게 언급되었다. 언뜻 보기에 자기자비는 강인함과 거리가 먼 것 같지만, 실패가 일상인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있어 오직 엄격함 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무리다.

그보다는 최선을 다했지만 넘어지고 만 자신을 마주했을 때 욕을 던지기보다 따뜻한 말로 토닥이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태도가 버티는 힘을 만들어낸다는 인식이 나타났다. 자신을 향한 엄격함과 너그러움은 양립할 수 없는 관계가 아니라 너그러움이 엄격함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를 향한 의심과 슬럼프 또한 모두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임을 알고, 이럴 때일수록 더 자신에게 힘을 북돋아주어야 프로가 되기 위한 험난한 길을 걸어낼 수 있었다. 

배움과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라야 이전처럼 쉽게 실력이 늘지 않는 슬럼프를 겪게 된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 또한 비로소 어느 정도 지식이 쌓여서 자신의 실력을 객관화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내 실력은 여기까지라고 단정짓기보다, 여기까지 온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분명 지금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Wilson, D., Bennett, E. V., Mosewich, A. D., Faulkner, G. E., & Crocker, P. R. E. (2019). “The zipper effect”: Exploring the interrelationship of mental toughness and self-compassion among Canadian elite women athletes. Psychology of Sport and Exercise, 40, 61-70. doi:https://doi.org/10.1016/j.psychsport.2018.09.006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