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과학] 메리 스튜어트 여왕이 암호로 쓴 비밀 편지, 400여년 만에 풀다
지난 2월 8일 디크립트 국제 암호학 연구팀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전자 자료 보관소에서 57개의 편지를 발견해 해독했다고 발표했어요. 편지의 주인공은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여왕인 메리 스튜어트로 밝혀졌지요. 암호를 풀어낸 연구팀은 메리 여왕이 처형을 당한 날짜인 2월 8일, 이 연구 결과를 세상에 공개했어요. 메리 여왕에겐 어떤 사연이 있던 걸까요.
●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되다
편지는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됐어요.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전자 자료 보관소에 메리 여왕이 살아있던 때보다 이른 시기인 16세기 초반의 문서로 분류되어 있었거든요. 연구를 이끈 조지 라슬리 박사는 “주변의 문서가 메리 여왕의 국적과 무관한 이탈리아어로 적혀 있었기에 436년이 지난 지금 발견됐다”고 말했어요.
해독 결과, 편지는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여왕이 1578년부터 1584년까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영국에 주재하는 프랑스 대사인 카스텔나우에게 비밀리에 쓴 암호 편지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 스튜어트에게 왕좌를 위협받고 ,있었어요. 혼외 자녀로 태어난 자신과 달리 메리 스튜어트는 아버지 헨리 8세의 첫 번째 왕위 계승권자로 태어났기 때문이죠.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 여왕의 입지가 약해진 틈을 타 남편을 죽인 혐의로 감옥에 가뒀습니다.
● 메리 스튜어트가 숨기려던 비밀은
처음에는 편지의 작성자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했어요. 연구팀이 편지에서 발견한 결정적인 단서는 바로 엘리자베스 1세의 첩보원이었던 ‘프랜시스 월싱엄’을 언급한 부분이었어요. 편지에서 메리 스튜어트는 월싱엄에 대한 적대감을 표현했지요. 아들 제임스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통스러운 심정을 표현하는 부분도 있었어요.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메리 스튜어트는 월싱엄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암호로 편지를 썼어요. 비밀 편지는 결국 1583년 중반, 월싱엄에 의해 발각됩니다. 월싱엄이 첩자를 통해 편지를 중간에 가로챘거든요. 이번에 발견된 편지는 1583년 이전의 편지로,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암호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존 가이 연구원은 “최근 100년간 메리 스튜어트 여왕에 대한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강조했답니다.
● 400년 전 암호, 어떻게 풀었을까.
암호는 상대방과 비밀리에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에요. 다른 사람이 내용을 알 수 없게 평소에 쓰는 언어를 두 사람만이 아는 규칙으로 바꾸지요. 따라서 암호를 해독하려면 이 규칙을 찾아야 해요.
편지에는 꼬불꼬불 그림처럼 그려진 기호가 15만 개나 사용됐어요. 연구팀은 15만 개의 기호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형식으로 옮긴 후, ‘언덕 오르기’라는 알고리즘을 사용해 암호문을 차근차근 풀었어요.
‘언덕 오르기’ 알고리즘은 우선 임의의 키로 암호문을 해독한 후 점수를 매겨요. 그런 다음 새로운 키를 입력해 이전의 점수와 비교하지요. 키에 조금씩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최상의 점수가 매겨질 때까지 암호를 푸는 거예요. 알고리즘이 암호를 30% 해독했을 때쯤, 연구팀은 프랑스어 단어와 문장을 발견했어요. 이로써 편지의 발신인이 프랑스어로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컴퓨터 알고리즘으로도 해독할 수 없는 기호들이 있었어요. 바로 기호의 옆면이나 아래에 점과 같은 부호가 있는 경우지요. 같은 기호여도 부호가 없는 기호와 부호가 있는 기호는 각각 다른 글자를 나타내요. 연구팀이 암호를 완전히 해독하기 위해 언어의 맥락을 분석한 결과 약 200종류의 기호가 적힌 암호표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조지 라슬리 박사는 “거대한 크로스워드 퍼즐을 푸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메리 여왕은 하나의 알파벳을 여러 개의 기호로 바꿨어요. 암호 해독가는 각 기호가 반복되는 정도를 살펴 기호로 바꾸기 전의 언어를 추정해요. 언어마다 사용되는 문자의 종류와 각 문자가 쓰이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한글의 경우 초성으로는 ‘ㅇ’이 가장 많이 쓰이고, 프랑스어에서는 ‘e’가 가장 많이 쓰여요. 알파벳 ‘e’를 하나의 기호로만 대체하면, 가장 많이 나타나는 기호가 곧 ‘e’를 나타내요. 하지만 메리 여왕처럼 알파벳 ‘e’를 여러 개의 기호로 바꾸면, 어떤 기호가 ‘e’를 나타내는지 알기 어려워집니다. 이렇게 같은 글자를 여러 개의 기호로 바꾸는 ‘동음이의’ 암호화 방법을 사용해 메리 여왕은 암호를 푸는 사람을 헷갈리게 했지요.
메리 여왕은 약 200 종류의 기호를 사용했어요. 프랑스어 알파벳을 대체한 기호와, 중요한 단어나 이름을 따로 표기한 기호로 구성됐죠. 조지 라슬리 박사는 “메리 여왕의 편지 속에 16세기 영국 역사의 주요 인물들이 기호로 등장한다”며 “편지는 역사적 사건에 색깔을 더한다”고 강조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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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하진 기자 hae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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