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환자 맞춤형 진단·치료의 열쇠 '탄소 양자점'
탄소 양자점(carbon dot)’, 줄여서 탄소점이라고 부르는 물질이 낯선 분들도 많을 겁니다.
탄소 양자‘점’이라는 명칭이 어떻게 나왔는지도 궁금하실 거고요. 탄소 양자점은 한 마디로 탄소 입자를 기반으로 만든 점처럼 작은 나노물질입니다. 탄소 양자점은 디스플레이, 초미세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미래 의학의 핵심 소재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2006~2020년 전 세계 논문을 수집한 네덜란드 라이덴대 데이터에서도 높은 복합 연평균 성장률(CAGR)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노입자’는 대표적인 21세기 최첨단 기술로 손꼽히지만, 그 역사는 의외로 깁니다. 고대의 유리 공예가들은 유리를 만들 때 금, 은, 구리, 산화철 등의 불순물을 첨가하고 가열해서 다양한 색상의 유리 제품을 제작했습니다. 유리 내부에 넣은 불순물로 인해 빛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나노입자가 생겨난 결과였죠. 고대 사람들은 그것이 나노입자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지만, 결국 우리는 이런 사소한 발견들을 계기로 나노입자의 존재와 그 가능성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 독성 한계 극복한 탄소 양자점
빛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다시 말하면 광학적인 특성을 갖는 나노입자 중에서 성능이 가장 뛰어난 나노입자가 바로 ‘양자점(quantum dot)’입니다. 양자점 합성에는 주로 카드뮴, 셀레늄, 납, 아연 등 중금속이 사용되는데, 그 독성 탓에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특히 철저한 안전성 검증이 요구되는 의료 분야에서는 양자점을 활용하기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죠.
탄소 양자점은 이런 단점을 어느 정도 극복한 물질입니다. 기존 양자점에 버금가는 광학적 특성에 우수한 생체 적합성을 함께 갖춘 것이 특징입니다. 탄소 양자점은 흑연(sp2) 구조와 비정질(sp3) 구조가 혼재된 수 나노미터(nm・1nm는 10억 분의 1m)~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탄소 입자로 만들어지는데요. 합성법은 크게 바텀업(bottom-up) 과정과 탑다운(top-down) 과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텀업 과정은 탄수화물 등의 유기분자를 ‘태워서’, 탑다운 과정은 흑연, 석탄 등의 탄소 구조체를 물리적 또는 화학적 방법으로 ‘쪼개서’ 탄소 입자를 형성합니다. 탄소 양자점은 자외선부터 근적외선에 이르는 여러 종류의 빛과 상호작용하며 빛을 방출(광발광)하거나 열을 방출(광발열)하는 등의 다양한 광학적 성질을 나타냅니다.
● 표적 암세포 태워 죽이는 광열 치료
탄소 양자점의 물성을 조절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론 ‘도핑(doping)’이 있습니다. 도핑은 불순물을 첨가해 새로운 에너지 준위(에너지 값)를 형성하거나 기존의 에너지 준위를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탄소 양자점의 경우 붕소, 질소, 황, 인 등 비공유 전자쌍(다른 원소와 공유하지 않는 전자쌍)을 갖는 원소를 주로 이용합니다. 이런 비공유 전자쌍은 탄소 양자점의 발광 특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를 통해 가시광선 및 근적외선 영역에서의 흡광 및 발광 파장을 조절하고 효율을 개선할 수 있죠.
실제로 탄소 양자점을 이용한 다양한 영상화 기술이 개발 중인데요, 그중 가시광 영상화 기술은 촬영과 결과 확인이 간편해 세포를 관찰하는 데 주로 쓰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표적 세포에 탄소 양자점을 붙여놓고, 빛을 쪼여 가시광선을 방출하는 표적을 찾는 식이죠. 최근엔 탄소 양자점을 이용해 뇌암 세포, 간암 세포 등 특정 암세포를 표적하는 가시광 영상화 기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편 뇌나 간과 같은 몸 속 깊숙한 장기는 근적외선 영상화 기술을 활용합니다. 근적외선은 물이나 혈액, 멜라닌 등에 잘 흡수되지 않고 투과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탄소 양자점에 특정 원소를 도핑해 빛을 받으면 열을 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가령 질소를 도핑한 탄소 양자점 수용액에 근적외선을 쪼이면 용액의 온도가 5분 내에 50℃로 상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면 암세포에 직접 열을 가하고 소멸시키는 ‘광열 치료(photothermal therapy)’가 가능합니다. 광발열성 탄소 양자점을 이용해 피부암을 치료하는 연구가 최근 주목받았으며, 간암, 신장암 등을 광열 치료하는 기술도 개발 단계에 있습니다.
탄소 양자점의 표면에는 카복실기(–COOH), 하이드록실기(−OH), 카보닐기(−C(=O)−) 등 다양한 작용기가 존재하며, 이런 작용기는 탄소 양자점이 특정 소재와 결합하게 하는 기능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탄소 양자점은 항체, 펩타이드(peptide・아미노산이 서로 연결된 생체 물질), 압타머(aptamer・특정 물질에 특이적 결합 능력을 갖는 DNA 혹은 RNA) 등과의 표적성 물질 결합을 통해 목표로 하는 기관 또는 장기에 선택적으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르기닌(arginine)-글리신(glycine)-아스파테이트(aspartate) 펩타이드를 표면에 결합한 탄소 양자점은 암 조직으로 잘 전달됩니다. 이와 같이 탄소 양자점은 치료 효과가 높고 부작용은 적은 환자 맞춤형 진단·치료 기술을 개발하는 열쇠입니다.
● 생체 안전성 확보가 관건
최근 의료 분야에서는 진단·치료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부작용을 없애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나노소재가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환자 맞춤형 진단·치료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 기존의 조영제(진단)나 항암제(치료)보다 효능이 우수하고 기능도 다양한 나노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탄소 양자점 분야의 핵심 과제입니다. 이런 의료용 나노소재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2030년경에는 그 규모가 약 200억 달러(약 26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경제 및 생활 수준이 지속적으로 향상됨에 따라 건강한 삶에 대한 전 국민적인 관심과 기대는 계속 높아지는 중입니다. 다양한 질병을 예방·치료할 수 있는 첨단 의료 기술에 대한 수요도 점차 커지고 있죠. 탄소 양자점과 같은 의료용 나노소재는 이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큽니다.
의료용 나노 소재를 실용화하기 위해서는 임상 적용이 가능한 수준의 생체 안전성과 적합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탄소 양자점 기술이 실제 환자들의 건강한 삶을 돕는 차세대 의료 기술로 거듭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필자소개
권우성 숙명여대 화공생명공학부 부교수. 2010년 POSTECH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 미국 스탠포드대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거쳐 2016년부터 숙명여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연구 분야는 광나노소재 설계 및 관련 응용 기술 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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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3월, [5년 후, 과학은] 환자 맞춤형 진단·치료의 열쇠 탄소 양자점
[권우성 숙명여대 화공생명공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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