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노동개혁 난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소신을 기대한다

이정현 기자 2023. 3.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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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9시간'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대통령조차 외면하며 위기
노동계는 이 장관 고발, 의견수렴 소홀함 없었는지 곱씹어 볼 필요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개혁이라는 난제에 고전하며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급기야는 양대노총(한국노총, 민주노총)이 '노조 회계장부의 제출을 부당하게 강요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장까지 접수했다.

정부가 3대 개혁(노동, 연금, 교육) 중 우선순위로 꼽는 노동시장 개혁과제 중 가장 공들인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국민적 여론은 차치하고라도, 대통령에게까지 외면 받았다.

윤석열 정부 취임 후 첫 내각에 참여하면서 오롯이 감수해야 했던 30여년 노동전문가로서의 커리어에도 생채기가 난 모습이다. 노동전문가로서 원활한 노-정 관계를 기대했지만, 대통령의 의중만 살피는 국무위원의 처세만 보이고 있다는 노동계 비판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이 장관 발탁은 소위 '깜짝 인사'였다. 초대 내각 구성 당시 여러 인물이 물망에 오르기는 했지만, 단 한 번도 언론 등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외의 발탁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러 정무적 판단 등을 이유로 자질·능력에 대한 일부 비판이 있었지만, 30여년을 노동계에 투신해 왔다는데 정부와 노동계를 이어줄 가교 역할을 할 적임자로 기대를 갖게 했던 게 사실이다.

이 장관 스스로도 소위 보수정권 하에서 국무위원직을 수락하면서 충분히 숙고하고, 고민했을 터다. 하지만 노동계를 대표한 노동전문가로서의 삶과 정부를 이끄는 국무위원으로서의 자리에서 오는 괴리감은 생각보다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는 출범과 함께 노사법치 확립을 기조로 한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 중이다. 소위 기득권 노조에 끌려가지 않으면서 법치를 확립하고, 법이 허용하는 틀 안에서 노조의 정당한 활동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이 장관은 누구보다 대통령의 뜻에 공감하면서 선봉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의 이 장관을 있게 한 기반인 노동계는 노동개혁이란 난제를 풀어갈 열쇠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어 보인다.

노동계에서는 그를 두고 소위 '입신양명 하더니 사람이 바뀌었다'며 비토하는 세력이 늘었다.

최근 양대노총은 ‘노조 회계장부 제출’ 거부를 이유로 과태료를 부과한 정부를 대표해 이 장관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이들은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조합원에게 열람권이 있는 서류를 정부에 제출하도록 요구했다"면서 "1000명 이상 모든 노조에게 조합원 명부와 회의록, 노동조합 결산서만이 아니라 지출원장과 증빙자료 등의 내지까지 제출하라는 노동부 요구는 직권을 남용한 노조탄압"이라고 고발 배경을 밝혔다.

장관 취임 후 노동시장 개혁 핵심 우선과제로 공들여 온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대통령마저 외면한 모양새가 됐다. 여론이야 차치하더라도, 대통령이 소위 개편안을 '반려'한 상황이 되면서 주무부처 수장으로서의 이미지 타격도 불가피해졌다.

특히 일련의 논란 속 이 장관은 '주 최대 69시간'이라는 극단적 프레임을 씌워 일부 왜곡세력이 정부개편안을 호도하고 있다고 방어전을 펴고 있지만, 이마저도 대통령의 "주당 60시간 이상의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는 발언에 허공의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지금 이 장관에게 닥친 시련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그가 가진 노동전문가로서의 식견이나 역량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은 환경적 요인을 탓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노동계 인사는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이 정책적 결정을 하면 국무위원이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 아니냐"면서 "물론 의사결정 전 국무위원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겠지만 그것도 수용하고 안하고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성향에 따른 것이지, 사실상 국무위원 한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반평생을 노동계에 투신해 온 이 장관이 지금의 시련을 딛고, 직을 마친 후에도 노동계의 존경받는 어른으로 남길 바란다. 노동개혁이라는 난제를 풀어가는데 있어 의견수렴에 소홀함은 없었는지, 당초 노동계 인사로서 가졌던 평생의 소신을 잊었던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노동계에 첫발을 들인 1986년 우리 시대 '노동자'를 대변해 야전에서 외치던 목소리도 이제는 정부 안에서 들을 수 있길 기대한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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