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프린스턴대 수학 박사가 금융에 던지는 화두
2022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있는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는 전 세계 내로라하는 수학자가 모이는 ‘톱스쿨’입니다. 10년 전 이곳에서 수학자를 꿈꾸며 치열하게 공부하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 그는 돌연 직원 7명이 전부인 스타트업에 들어갑니다. 낮에는 우리나라 핀테크 전문가로, 밤에는 구독자 수 10만 명의 수학 유튜버로 살아가는 김일희 디셈버앤컴퍼니 실장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수학 연구하듯 목표를 정하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 기술을 말합니다. 인공지능 투자 서비스 플랫폼인 ‘핀트’도 핀테크 플랫폼입니다. 이 기술의 핵심인 인공지능 엔진 ‘아이작’의 개발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김 실장입니다.
그가 프린스턴대 대학원에 갈 때만 해도 핀테크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공부해 보니 오히려 연구자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학자는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어 해결해야 하는데, 평생 잘할 자신이 없었던 거지요.
졸업 직후인 2013년 지인이 금융 IT 스타트업 디셈버앤컴퍼니를 창업한다면서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했고, 덥석 받아들였습니다. 김 실장은 “재미가 어떤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라 그때그때 가장 재밌는 걸 선택한다”면서, “과거엔 수학이었고, 당시엔 IT가 전자상거래, 미디어, 문화와 활발히 결합하던 때라 금융에서도 뭔가 재미있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엔 직원이 달랑 7명이었고, 구체적인 목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와 동료들은 먼저 목표를 정하기 위해 ‘연구’했습니다. 직원 7명 중 4명이 수학과였는데, 회사 분위기는 마치 수학과 연구실 같았어요. 수학 문제를 풀듯 IT와 금융을 어떻게 융합할지 각자 연구한 뒤, 모여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반복했거든요.
“수학을 전공하면 세상에 없는 문제를 정의하고,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사고훈련을 굉장히 많이 해요. 어떤 내용을 읽어서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공부와는 완전히 다른 훈련이에요. 일종의 창조 행위지요. 그래서 회사 초기에 문제의식을 갖고 목표를 설정할 때 수학적으로 사고하던 훈련이 큰 도움이 됐어요.”
그렇게 맨땅에 헤딩한 지 1년이 흘렀을 때, ‘금융계의 넷플릭스’로 서비스 콘셉트를 잡았습니다. 넷플릭스가 개개인의 취향을 분석해 딱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것처럼, 고객이 돈을 맡기면 인공지능이 고객별 투자성향에 맞게 알아서 돈을 굴려 주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투자회사에서 주로 VIP 고액투자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맞춤형 투자 서비스를 소액투자자에게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고객의 시간과 노력을 확 줄여줄 수도 있고요. 그게 현재의 핀트입니다.
서비스 기술 개발 초기 김 실장은 개발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금융과 코딩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아서 초반에 매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공부에 나섰습니다. 자산관리사 자격증을 따면서 금융 지식을 늘렸고, 퇴근 후엔 인공지능 관련 서적을 사서 독학했습니다.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인 뒤엔 출퇴근 개념도 없이 평일엔 회사에서 먹고 자며 기술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기술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해서 투자하려면, 다양한 시장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세세한 알고리즘을 탑재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김 실장은 고객의 투자 성향, 시장 상황 등을 조합해 문제를 설정하고 어떻게 투자하면 좋을지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전략대로 실제 시장에 투자해보거나 모의 실험, 통계 오류 확인을 하면서 전략이 맞는지 검증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적용했어요.
김 실장은 “수학을 전공한 덕분에 데이터 분석에 ‘푸리에 변환을 이용해보면 어떨까?’, ‘데이터 차원을 조금 낮춰서 분석해보면 어때?’ 같은 신선하면서도 전문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어요.
기술 개발에 나선 지 5년 뒤인 2019년 드디어 핀트가 세상에 나왔어요. 현재는 고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한창 금융계의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거라고 합니다.
“앞으로는 투자뿐 아니라 개인의 저축과 소비에서도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주는, 그야말로 더 세밀하게 개인의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 의사’ 서비스도 만들고 싶어요.”
● 수학으로 구독자 수 ‘껑충’ _수학 유튜브 12 MATH
Q. 자녀를 재운 뒤에 만든 영상으로 수학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운영 중이시라고요.
"네, ‘12 MATH’라는 채널입니다.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 시작했어요. 미국과 한국의 여러 지도 교수님, 동료들이 저를 수학자로 키우기 위해 많이 노력해주셨거든요. 그들의 바람대로 학자가 되진 못했지만, 수학의 가치를 많은 이에게 알려 세상에 조금 이바지하고 싶었습니다.
2022년 7월에 시작했는데 8월 중순에 구독자 수가 1000명, 10월초 5000명, 10월 말 2만 명, 11월 5만 명, 현재 10만 명까지 늘었습니다."
Q. 이렇게 빠른 성장의 비결이 도대체 뭔가요.
"영업비밀인데잔머리를 잘 쓴 것 같아요. 먼저 유튜브 입장에서 생각해봤어요. 유튜브도 광고를 붙일 수 있는 영상을 많이 노출하고 싶을 거예요. 그런데 유튜브에서 크리에이터에게 ‘클릭률’과 ‘시청 지속시간’ 이렇게 2가지 지표를 보여줘요.
이렇게 클릭률은 불특정 다수에게 이 영상이 노출됐을 때 100명 중 몇 명이 이 영상을 클릭하는지, 시청 지속시간은 이를 클릭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영상의 몇 %까지 시청하는지 알려주는 값이에요. 그래서 이 두 지표를 높이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예를 들면 사람들이 제 영상을 클릭하게끔 시선을 끄는 썸네일과 제목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클릭을 해도 ‘낚였잖아? 내 예상과 다른 내용이네?’라는 생각이 들면 금방 끄겠지요. 그러면 시청 지속시간에 문제가 생기니까 ‘보다보면 얻어갈 게 있네’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데 신경썼어요."
Q. 어떤 내용을 다루나요.
"학창시절 제가 수학에 대해 정말 궁금했던 것들을 소재로 쓰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허수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 ‘근의 공식을 대체할 방법은 없는 걸까’ 같은 의문을 해결해주는 거예요. 영상 조회수가 높은 걸 보니 저처럼 수학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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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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