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발은 없다…러너들의 선택 ‘슈피팅’ 👟

한겨레 2023. 3. 2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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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커버스토리] 달리고 싶은 봄 슈피팅의 세계로
발 길이·높이·뒤꿈치·회전 등 3D 첨단 분석 뒤
내게 꼭 맞는 쿠션화·안정화·중립화 등 추천
육안으로 테이핑·교정운동 제공하는 전문가도
신 대표가 브랜낙 디바이스로 발 크기와 너비를 측정하는 모습.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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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부족 저질 몸도 봄이면 내처 달리고 싶은 욕구가 솟는다. 야외에서 달리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함께 달리는 모임인 ‘러닝크루’도 어느 때보다 핫한 요즘, 일단 달리자고 마음먹고 나니 장비 고민부터 시작된다.

넓적하고 쉬 피로한 내 발엔 어떤 러닝화가 좋을까? 러닝 동호회를 검색하고 유튜브 러닝화 리뷰들을 기웃거려 본다. 달릴 때 발목 꺾임에 따라 쿠션화, 안정화, 중립화 등 추천하는 신발이 달랐고, 맨발의 기능을 살려준다는 미니멀리스트, 쿠션이 높은 맥시멀리스트, 발뒤꿈치부터 앞발까지 높이가 동일한 제로드롭 러닝화에 이르자, 생초보의 머릿속이 뒤엉켰다. 리뷰 댓글 속 어느 현자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뭘 봐도 모르겠고 뭘 보는지도 모르겠을 땐 전문가를 찾아가자.”

러닝 동호회를 둘러보니 내 발에 맞는 러닝화를 찾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들이 있었다. 마라톤 붐이 인 2000년대 초반부터 러너들의 운동 목적과 달리는 습관에 알맞은 러닝화를 찾아주는 ‘슈피팅’ 혹은 ‘발 분석’으로 이름 지은 서비스가 시작됐다고 한다. 러너들의 성지라는 러닝화 전문 매장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이들이 갈 법한 곳은 아닌지, 러닝 입문자가 발을 들여도 괜찮을지 걱정도 스친다. 궁금증을 해결하고 내가 몰랐던 내 발을 탐색해보기로 했다.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러닝화 전문 매장 ‘플릿러너’의 신승백 대표가 걸음걸이 영상을 분석하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세상에 나쁜 발은 없다

각종 스포츠 브랜드의 러닝화 홍보 문구를 읽고 있으면 신발에 품는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다. 신발 한 켤레로 운동 퍼포먼스가 울트라하게 증가하고 각종 부상과 통증에서 해방되며, 저질 체력을 부스트해 없던 기록도 경신할 것만 같다.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발 분석 전문점 ‘플릿러너’에서 만난 신승백(60) 대표는 귀 얇고 겁 많은 러닝 입문자의 기대와 슈피팅 서비스의 지향을 맞추는 영점 조정부터 시작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면 누구든 조금씩 다 아파요.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내가 뛰려고 하는 거리나 빠르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달리기 몸을 차근차근 키워 나가는 게 첫번째입니다. 신발은 올바른 사이즈도 중요하고, 그에 못지않게 내 발의 움직임 특성과 신발의 특성이 잘 맞아야 해요. 슈피팅은 나를 도울 수 있는 신발을 찾는 과정으로, 의료적인 목적과는 관계가 없어요.”

플릿러너에서 발의 형상을 3D로 스캔하는 볼류멘탈.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슈피팅의 순서는 이렇다. ‘족저경’에 올라 발바닥 아치 형태를 파악하고 ‘볼류멘탈’을 통해 발 형상을 3D(입체) 스캔한다. 이렇게 하면 발 길이와 높이, 뒤꿈치 크기로 세분화한 측정치를 알 수 있다. ‘브랜낙 디바이스’로는 러닝양말을 신은 상태에서 발의 길이와 너비를 실측한다. 발의 크기는 앉아서 잴 때와 서서 체중을 실었을 때가 달라지기 때문에 집에서 자신이 잴 때는 꼭 서서 재야 한단다. 다음은 러닝머신에 올라 달리는 발의 뒷모습을 녹화한다. 발이 공중에서 착지할 때 충격을 분산하며 회전하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회내’(프로네이션)라고 하는데, 발목이 과하게 안으로 돌아가는지 바깥으로 꺾이는지 혹은 중립인지를 분석한다.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러너에게 적당한 러닝화를 추천하게 된다.

내 발은 아치가 낮은 평발에 발목이 안쪽으로 많이 눕는 과회내 타입이어서 발의 아치를 보완해주는 안정화를 추천받았다. 반대로 발목이 바깥쪽으로 많이 꺾이는 과회외 형태라면 착지 시 충격을 덜어주는 쿠션화를 고른다. 세간에 퍼진 정보 중 신발 밑창이 닳은 모양이나 발 모양만 보고 과회내와 과회외를 판단하는 방법이 있다. 평발이 과회내가 될 개연성이 높지만, 막상 뛰는 모습을 분석하면 중립으로 착지하는 러너도 있다고 한다. 정확한 분석은 착지하는 발의 움직임을 보아야 한다.

난 지금까지 운동화 250 사이즈를 신었는데 측정한 결과로는 255를 기준으로, 한 사이즈를 높이거나 낮추면서 맞는 러닝화를 골라야 한다고 했다. 나의 운동 수준, 발의 생체역학적 특성에 맞춰 고른 뉴발란스 봉고5 와이드 안정화를 신어보았다. 신고 온 신발과 달리 아치 부분이 조금 단단한 느낌이다. 러닝머신에서 뛰는 모습을 다시 촬영했더니, 안으로 휘던 발목이 곧게 선다. 이게 뭐라고 마음속에 탄성이 터진다. ‘장하다. 내 발!’

난생처음 몸 가장 낮은 곳에서 체중의 서너 배를 받아내는 내 발의 움직임을 찬찬히 관찰했다. 내 발과 우스꽝스럽게 뛰는 폼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이 적잖이 창피할 줄 알았다. 한데 슈피팅의 모든 과정이 정연하고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입문자로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존중을 받으니 발이 못생겼다고 셀프디스할 마음도 쏙 들어간다. “저마다의 발이 있고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며 흠잡을 것이 아니”라는 신 대표의 말에 오랜만에 발과 화해하는 기분이었다.

1988년부터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 대표는 2002년 플릿러너를 열고 슈피터로 쌓아온 철학과 노하우를 10년 전부터 쌍둥이 아들에게 전수하는 중이다. 러닝화의 진면목은 달려봐야 알기 때문에 신상품이 나오면 소재와 기능, 착용감 등 러닝화 성향 분석을 위해 세 부자가 10㎞씩 달려본다. 신 대표가 2대 슈피터 쌍둥이 아들 영목·영준(32)씨와 함께한 마라톤 대회 기념 메달들이 매장 벽에 가득했다. 나 같은 입문자도 매장을 찾는지 신 대표에게 물었다. “어느 정도 운동 이력이 있는 분들은 목적에 맞는 신발을 골라 가시고, 슈피팅은 대부분 달리기를 시작하고 6개월 이내인 분들이 받습니다. 다녀간 분들이 다음엔 부모님을 모시고 많이들 오세요.” 어쩐지 슈피팅 도중에 부모님 발이 어른어른하더라니. 내 평발은 부모님과 똑 닮았고, 이런 발로 하프 마라톤 대회를 뛰는 아버지 신발은 어땠을까 싶었다. 슈피팅 뜻밖의 효과. 잠자던 효심이 깨어난다.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러닝화 전문 매장 ‘플릿러너’에서 슈피팅을 마친 유선주 객원기자가 발에 꼭 맞는 러닝화를 신어보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플릿러너의 슈피팅은 한 사람에게 30~40분을 집중해서 진행되기 때문에 반드시 네이버 예약을 통해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한다. 늘 3~4주 치가 꽉 차 있으니 한달쯤 여유가 필요하다. 슈피팅 요금 3만원은 추천받은 신발을 매장에서 15일 이내에 사면 신발 가격에서 빼준다. 슈피팅은 기능을 우선하는 추천이다. 디자인이나 컬러 취향을 러닝화 구매 기준으로 둔다면 원하는 신발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신발 매장에 왔으니 신발을 꼭 사야 한다는 부담 없이 슈피팅으로 파악한 내 발의 특성을 참고해 신발을 찾아도 괜찮다.

발을 보면 건강이 보인다

지난 16일 서울 광진구 ‘러너스 클럽’ 광진점의 박만년 대표가 유 기자에게 효과적인 달리기 방법을 조언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오는 4월22일 롯데월드타워에서 123층을 오르는 수직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오래전 읽은 기사가 떠올랐다. 40대 버스 정비사가 63빌딩 수직 마라톤 대회 우승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16일 두번째 발 분석 체험을 위해 찾아간 ‘러너스 클럽’ 광진점 박만년(57)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다 20년 전 기사의 주인공이 그의 형 박생년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형은 63빌딩 수직 마라톤 기록 보유자, 박 대표는 삼일빌딩(서울 종로구의 31층짜리 건물) 수직 마라톤 기네스 기록 인정자다. 가난을 떨치기 위해 마라토너의 길을 택했던 형제는 선수 생활이 끝나고 생업의 방향이 바뀌어도 삶과 달리기를 겹치며 살아갔다. “야학 교사로 마라톤 모임 지도도 하고, 달리기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러너스 클럽에 취직해 2004년 광진점도 열게 되었습니다.” 박 대표의 말이다.

1시간이 걸리는 발 분석 비용은 3만원. 신발을 사면 분석비를 제해주는 것은 다른 지점과 같은데, 광진점은 최신 장비도 보이지 않고 낡은 러닝머신과 발 사이즈를 손수 측정하는 브랜낙 디바이스뿐이다. 예약도 전화로 받는 그야말로 아날로그 스타일의 박 대표는 2천여명의 일반인 달리기를 지도하며 홀로 연구한 자신의 눈을 믿는다.

그의 분석 과정은 고객의 어깨선과 발 모양을 보고 체형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오른 다리가 더 길고 오른 발목 꺾임이 왼쪽보다 더한 것으로 보입니다. 왼무릎 안쪽 거위발건(거위발 모양으로 모여 있는 가지 힘줄)이 약할 가능성이 있네요.” 박 대표의 평가에 재작년 왼무릎이 아파 정형외과를 다녔던 기억이 났다. “몸이 뻣뻣한 타입”이라고 하기에 속으로 ‘허리 굽혀 바닥에 손 짚기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데, 다 알아보진 못하는구나’ 했다. 그런데 잠시 후, 발바닥 아치를 살펴보고 바닥에 접지할 때 평발이 되는 유연성 평발이라 신체도 유연할 거라며 앞서 판단을 정정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유 기자의 발이 편안함을 느끼도록 테이핑을 하는 모습. 곽윤섭 선임기자

내 발엔 안정화인 브룩스 아드레날린 와이드, 미즈노 인스파이어 와이드 모델을 추천받았다. 신발을 골랐다고 끝이 아니다. 앞서 분석한 고객의 신체 문제에 따라 이를 교정하는 운동 놀이를 알려주고 동영상으로 찍어서 집에서도 수시로 연습할 수 있도록 한다. 전체 과정에서 신발에 관한 내용은 30%. 그는 건강에서 신발이 차지하는 비중도 그렇다고 본다. 나머지는 생활 습관 교정 방법을 아는 것이 35%, 실천하는 것이 35%, 배워 가고도 실행하지 않으면 70%가 날아간단다.

신발 매장에서 손과 발에 테이핑을 받고, 생활 습관 교정에 관한 브리핑을 듣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든다. 웬 테이핑이냐고? 박 대표는 “걷고 뛸 때 움직이지 않는 팔과 불편한 발에 테이핑을 해주는 것은 앞으로 생활 습관을 바꿔 나갔을 경우 찾아오는 긍정적인 몸의 변화를 미리 체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트 시식코너에서 먹어보고 사듯, 달라진 몸의 느낌을 알아야 생활 습관을 바꿀 의지가 생길 테니 이를 알려주려 고안한 방법이다. 테이핑을 받고 매장을 걸으니 조금 전까지 움직이지 않던 팔이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양발의 무게가 달라졌다. 물론 이는 일시적인 효과이며 테이핑으로 치료를 기대할 수는 없다.

다리에 힘이 붙는 손바닥 테이핑

러너스클럽 광진점에서 보행 분석을 하고 있는 유 기자. 곽윤섭 선임기자

그가 알려주는 운동 놀이는 비용이 들거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것들이다. “상체를 세워 양손을 엉덩이뼈 상단에 짚고 바닥의 직선에 발뒤꿈치 중앙부터 대고 앞발 중앙을 일치시켜 걷는 ‘모델 놀이’는 걷기와 달리기 자세, 팔자걸음 교정에 두루 좋습니다.” 박 대표의 시범은 참 쉬워 보이는데 따라 하니 금세 몸이 휘청거린다. 손바닥에 붙은 하트 모양 테이핑을 쥐었다 폈다 해봤다. 양팔 중 걸을 때 더 잘 흔드는 쪽 손바닥에 붙이면 힘이 없는 다리에 힘이 붙는다던 테이핑이다. 동행했던 곽윤섭 사진기자가 박 대표에게 “왜 하트 모양 테이핑이냐”고 물었다. 박 대표가 말없이 시선을 두던 매장 유리창 밖으로 길 건너 상점의 하트 네온사인이 빛났다. 조금이라도 더 기억에 새겨질 방법을 찾아 관찰하고 의미를 겹치는, 그의 연구 방식이었다.

“산에 러닝화 신고 가지 마세요” 

러닝화도 ‘티피오’(TPO, 시간·장소·상황)에 맞게 신어야 한다. 운동 목적에 맞는 신발을 찾아 신으면 일단 절반은 성공한다. 러닝화에 대해 긴가민가했던 사소한 질문들을 물었다. ‘플릿러너’ 신영목·신영준 슈피터가 답변했다.

―러닝화 신고 산에 가도 되나요?
“처음 러닝화 고르는 분들이 가장 자주 하는 질문입니다. 산에서는 돌부리, 나무뿌리에 걸리거나 낙엽을 밟아 미끄러지기 쉬워요. 러닝화는 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상에서 발을 보호하는 데 적합하지 않으므로 밑창의 접지력을 높이고 발 앞코를 보호하는 트레일러닝화를 신어야 해요.”

―그럼 트레일러닝화를 신고 일반 러닝 하는 것은 괜찮나요?
“산에 러닝화를 신고 가는 것은 위험하지만, 트레일러닝화로 일반 도로를 뛰는 것은 가능해요. 다만, 트레일러닝화 밑창의 돌기가 아스팔트나 시멘트 길에서 마찰로 닳아 없어지면 정작 산에서 제 기능을 못하게 되니까 권하진 않습니다.”

―러닝 입문 기념으로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신는다는 비싼 러닝화를 질렀는데, 발이 아파요.
“선수들이 마라톤 대회용으로 신는 레이싱화는 속도를 내는 데 주안점을 두는 구조로 입문자에겐 불안정하게 다가올 수 있어요. 안정화나 쿠션화처럼 몸을 보호하는 기능의 러닝화를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안정화는 쿠션화보다 충격 흡수력이 떨어지지 않나요?
“중창(미드솔) 부분 어딜 눌러도 동일한 말랑함이 있다면 쿠션화, 신발 안쪽 중앙이 조금 더 단단하면 안정화로 구분합니다. 아치 부분을 보강한 안정화나 중창 전체가 동일한 소재인 쿠션화 모두 러닝화의 기본인 충격 흡수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안정화라고 해서 쿠션 기능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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